압도하는 외관
상하이 금산 동림사 (上海金山东林寺)
가는 법: 자가용 이용 추천, 인민광장에서 출발 시 거리 63km, 소요시간 약 1시간
입장권: 30위안
공기가 제법 칼칼하다. 겨울의 초입에 아직 붉어지지 못한 단풍과 초록기운을 남긴 은행잎이 우듬지 근처에 까치밥같이 남아있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야 이들도 갈 때를 알고 색을 바꿀 텐데 미적지근한 기온 탓에 오늘 갈까 내일 갈까 하고 있다. 12월 중순으로 접어드는 기온이 10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다. 따뜻한 겨울이 나들이엔 제격이다.
이맘때 한국의 산에 오르면 건조한 낙엽의 바스락 소리가 좋아 밟힌 적 없는 낙엽을 일부러 찾아 밟곤 했다. 산이건 바다건 지대가 평지보다 높은 곳에 고즈넉한 사찰이 종종 앉아있다. 관광지의 예쁘게 광내고 옷 입은 그런 사찰이 아닌, 자연 속에 숨어있어 보일락 말락 하는 수수한 사찰 분위기를 참 좋아한다. 그곳을 천천히 걸으면서 들고나가는 호흡에 집중할 때가 있다. 들숨에 날카로울 만큼 차갑고 깨끗한 공기가 흡수되면, 폐부 깊숙한 곳의 증기 같은 더운 공기가 본래의 자리로 환원된다. 인체와 자연의 기브 앤 테이크 배경엔 사찰이 종종 자리하고 있었다.
상하이 번화가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가량 벗어난 금산구에 아주 독특한 사찰을 발견했다. 어마어마한 면적의 상하이는 한참을 도심으로부터 멀어져 나왔음에도 아직 상하이였다. 이곳에도 나름의 상권이 있고 차와 오토바이가 가로변에 즐비하게 주차된 것을 보면서 한국에서 보아온 자연 사찰은 기대한 것이 무리였다는 것을 금세 짐작하였지만, 이곳만의 특별한 점을 기대하며 입장표 30위안을 지불했다.
사찰 이름이 멋진 글씨체로 적힌 현판 지붕 위의 연꽃 조각이 회교도 머리 위의 그것과 닮았다. 불교 사찰이 맞는지, 혹시 모스크를 찾아온 건 아닌지 잠시 의아해 웃고 말았다. 입장권은 사찰 입장을 위해 샀건만, 사찰은 무료입장이라고 했다. 입장원은 잠시 후 엘리베이터로 올라갈 오불관(五佛冠)을 관람하는 용도라고 했다.
문턱을 넘어 들어가면 뿌연 연기가 자욱하다. 당구채 반만 한 길이와 두께의 향 여러 개에 불을 붙여 두 손에 들고 흔들어대는 사람들이 한 무리가 있다. 연신 허리를 굽히며 기도를 하는 이들의 간절함이 연기를 타고 하늘로 흩어지고 있다.
공간을 지키는 이름 모를 보안관 동상을 비롯해 입구 왼쪽부터 뺑둘러 오른쪽까지 제각각의 방에 제각각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각각의 불상은 자기만의 주관 영역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소원에 따라 그것을 주관하는 불상을 찾아가 무릎을 굽혔다. 웃음기 없는 진지한 얼굴들을 대하는 불상의 미소가 어떠한 종교철학적 메시지를 품은 듯 온화했다.
하늘에 닿을 듯 높게 솟아 오른 '관음각'이라 쓰인 황금문 앞에 섰다. 어마어마한 높이의 문 옆에 부처의 도움을 바라며 수행하는 중생들의 모습이 부처와 같은 주물 형태로 입구를 장식하고 있다. 열린 문틈 사이로 보이는 불상의 모습이 힌두교의 시바신과 닮아 깜짝 놀랐다. 인간 세상 만물을 주관하며 전지 전능함을 나타내는듯한 불상의 손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이전에 각기 다른 분야를 주관하던 불상들과 달리, 이 불상은 인생의 모든 면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진다. 거대한 불상 앞에서 인간의 크기는 한 낱 미물이 된다. 인간은 자신의 미미함을 인정하고 그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문 옆으로 난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입장권을 사용하는 오불관 앞에서 서게 된다. 지대가 높아진 만큼 바람이 세다. 오불관을 두르고 있는 울타리에 소원이 적힌 빨간 천조각이 바람에 흩날린다. 바람이 풀어버린 매듭이 바람에 섞여 날아갈 때, 그 소원은 뜻을 이루고 훨훨 날아가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불상의 머리 부분은 눈을 감고 세상을 통달한 표정으로 중생의 삶을 굽어보고 있다. 코에 자리한 부처상과 이를 보호하는 듯 귀에 붙은 달마 상이 인상 깊다. 불교적 요소를 빠짐없이 모아다가 아낌없이 부어놓은 모양새가 불교 잘알못에게는 다소 벅차기도 하다. 피부의 굴곡 하나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건만, 이해는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
오불관 턱밑으로 아래 건물을 덮고 있는 자줏빛 인조 암석의 재질이 플라스틱이었다는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실크로드 어디쯤에서 만날 법한 복합적 외관에 인류 최대의 골칫거리 플라스틱이 현대 사회를 대표한 채 융합해 있다.
자줏빛 인조 암석 아래로 몇 계단을 내려가면 채식 국수점이 허기진 중생을 반긴다. 버섯국수와 죽순국수를 주문하고 돈을 지불함과 동시에 국수가 나와있다. 식사 시간을 넘긴 터라 조금도 지체할 수 없던 허기가 환호성을 질렀다. 버섯국수에는 표고의 진한 향이, 죽순국수에는 심심한 소금간이 좋았다. 뜨끈한 채수 호로록, 밀가루 면 크게 집어 후루룩.
말이 별로 필요하지 않았다. 사찰을 둘러보는 내내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