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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소리 Nov 30. 2024

카약 클럽(指向轻艇会)

푸른 하늘을 젓다.

상하이의 가을이 깊어간다. 심추(深秋). 

심추의 하늘은 결백한 용사의 심지같이 무한정으로 곧고 무제한으로 청결하다. 밤새 폐부 깊이 고인 숨을 토해내듯 뱉어낸 빈 공간을 푸른 공기로 구석구석 신선하게 깨워준다. 쌀쌀하여 적당히 바삭해진 공기의 감촉이 비강 점막에 닿아 남은 잠을 쫓듯이 몰아낸다. 창문 밖에는 오늘의 날씨를 찬양하는 생명체들의 움직임이 이제 막 시작된 모양새다. 그 사이, 신호를 모르는 누렁이와 검둥이가 짝을 이뤄 자동차 사이를 날쌔게 지나간다. '홉' 하고 숨을 참으며 안녕을 빌어 줘서인지 운전자의 넉넉함이 유기견의 무단횡단을 눈감아준다. 늦잠의 유혹을 물리치고 어디론가로 향하는 이들의 발걸음 혹은 차바퀴가 쌩쌩하다. 어젯밤 알고리즘을 타고 내게도 도착한 단풍철 관광지 리스트가 수락도 없이 화면에 달려든다. 단풍 좋지. 하면서 둘러보는 몇몇 명소의 사진의 눈속임에 이젠 그만 속자고 다짐한다. 사진 배경에 담기지 않은 인파는 실제에서 그 격차를 절절히 드러낸다. 작년 그곳의 인산인해를 나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사람 없는 데는 없다. 상하이 하늘 아래 그런 곳은 없다. 남들은 일터로 나가고 나 혼자만 쉬고 있다는 그런 느낌 어디 없을까. 자연 속에 푹 파묻혀 나른한 햇살을 이기적으로 독차지할 수 있는 곳. 

돌연 스치는 생각이 오늘의 목적지에 대한 힌트를 꼬리처럼 남겨둔 채 사라졌다. 손을 더듬어 꼬리 끝을 가까스로 붙잡고 따라간 곳에 고요한 강이 흐르고 있었다. 


指向轻艇会(Kayak Club) 
가는 법: 상하이 지하철 8호선 沈社公路 2번 출구 도보 950M (Pujiang Country Park 안)
운영 시간: 주말 오전 9시~오후 5시 (오후 4시에 마지막 카약 출발)
비용: 어른 1 + 아이 1 = 158위안


카약 클럽

카약이 좋은 건, 타기 전에 특별히 주의를 요하는 지침이 없다는 것이다. 단단히 죄어주는 노란 구명조끼는 혹시나 하는 걱정까지 붙들어준다. 물 위에 떠있는 카약에 올라타는 것은 은근한 긴장을 유발한다. 무게중심에 따라 좌우로 뒤뚱뒤뚱하다가 전복되는 경우를 몇 번 봐서다. 오늘은 안전에 안전을 더한 격으로 물 위에 떠있는 바지선(?)에 카약을 올려놓고 우리를 태운 후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한 시간 돌고 오면 되지요?" 하는 물음에 "지칠 만큼 타고 오세요." 하는 사장님의 대답이 서비스로 한 개 더 얻은 붕어빵처럼 반갑다. 물과 바람의 속도를 거스르지 않고 유속에 온전히 맡겨보기로 한 시간의 시작과 끝이 더없이 평온하다.



늠름하게 앞자리에 앉아 패들을 좌우로 젓는 딸아이의 선장 노릇이 꽤나 안정적이다. 패들을 높이 들고 저으면 아래로 떨어지는 물방울에 옷이 젖을 수 있다는 것을 본능으로 감지하고 선체에 낮게 붙여 젓는 패들에 흔들림 없는 승선감이 만족스럽다. 어쩜 이렇게 사람이 없지? 너무 좋아서 지를 뻔한 비명은 탁월한 사회성 안에서 의아한 표정으로 멈추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기록하는 한 자릿수의 기온 덕에 오랜 초록은 홍엽이 되어 황홀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뿌리로부터 끌어올려진 영양분이 잎사귀 끝에 더 이상 전달되지 못하도록 잔가지와 나뭇잎 사이에 생겨난 철벽에 이파리는 서운한 마음을 붉게 태운다. 이별의 순간이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몰라 매일 매 순간 더 붉어지는 얼굴로 세상과 인사를 나누는 잎사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간의 회한을 공중에 한없이 발산하며 잎사귀는 낙엽으로 이름을 바꾸며 떨어질 테지. 땅에 흩뿌려진 잎은 다가오는 겨울에 뿌리에 이불이라도 되어줄까 머물러보지만, 이를 알 리 없는 청소부의 갈고리 같은 빗자루는 작은 미련마저 허락하지 않는다. 


가을은 계속 살아갈 생명과 이제 명을 다하고 떠나는 이가 속하는 세상을 철저히 구분하는 계절이다.  


Pujiang Country Park (浦江郊外公园)


기세등등하게 비상을 준비하는 비둘기가 어찌 한 자세 그대로 정지해 있다. 찰나를 노리는 나 같은 이들에 대한 배려인가. 그것도 모르고 급하게 찍어낸 사진이 여러 장. 기둥마다 고난도 동작으로 아슬하게 앉은 비둘기의 모습이 진짜를 너무 닮아 가짜다. 

물길 접힌 곳마다 새롭게 나타나는 장면들이 지금 이 순간을 붙잡는다. 숲의 틈바구니마다 드리우는 머리칼 같은 햇살에 앞에 오는 이의 얼굴은 햇빛의 잔상으로 남는다. 내리쬐는 햇볕에 등허리가 뜨뜻하다. 햇살의 등살에 잠시 다리 밑에서 속도를 낮추면 그 등살도 잠시 주춤한다. 물이 끌어주고 바람은 밀어준다. 물속 깊이 늘어진 수양버들의 가지 틈사이를 가르고 지나다 가지 끝에 뭍은 진흙이 우리 두 사람 위로 검회색 진흙을 결결이 칠한다. 징징대는 아이의 모습에 짖꿎은 나무는 우수수수 수런대며 웃는다. 


생활의 박자가 '조금 빠르게'였다가 '빠르게'로 변했다가 '매우 빠르게'가 되기도 한다. 잠시 내려놓는 시간은 운동 중 숨 고르기 만큼 무척이나 중요하다. 젓가락만 빼고 잠시 내려놓고 싶을 때가 오면 고요한 물의 그 조용한 흐름에 맡겨보는 것이 어떨까. 한 시간 남짓 '느리게', '아주 느리게' 있고 나면 다시 내 박자로 돌아올 때 그 속도가 조금은 가벼워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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