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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소리 Jul 11. 2024

두꺼비와 나

지혜를 담은 침묵

여자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타고 난 성(性)을 가지고 불평해 본 적 없여성인 자체 감했다. 남성 기득권 사회에서 여성을 약자로 규정하는 태도와 경향은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내 살갗에와닿지 않았다. 자아실현에 성의 차이가 있다기보다는 능력의 차만 있다고 보았다. 성평등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본인의 능력 부족을 불평등으로 돌리는 것은 아닌지 의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서 알았다. 세상은 여성에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결혼 전, 장거리를 사이에 두고 시작한 연애의 애틋한 마음과 욕정은 가장 표출하기 쉬운 감정, 즉 분노의 모습으로 자주 드러났다. 후적으로 생긴 온순하고 누긋한 사회적 성격은 타고난 지랄 맞은 성격을 이겨내기 어려웠다. 처음의  부드럽고 유순한 모습은 어데 가고 소리치고 싸우는 나를 대하는 남편은 적잖이 당황했고,  또한 의연하지만은 않았다. 안 하느니만 못한 연애를 했고 지리멸렬한 연애의 종착지는 이별이 아닌 결혼이었다. 남편이 일하는 상하이로 주거를 옮기며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사이에서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사람이 되었다. 연애를 더 잘하고 싶어 결정한 결혼은 얼마가지 못해 이상과 현실의 갭에 몸살을 앓았다. 무거웠을 의 어깨를 토닥일 여유조차 없던 철부지 나에게 그는 길고양이나 새장에서 탈출한 새를 주워다가 안기기도 했다. 남편 외에 정 붙이고 마음 붙일 곳을 찾았으면 했을까. 무미건조한 날이 이어지던 어느 심심한 날, 딸아이가 남편의 분신처럼 나에게 찾아왔다.


여성은 호르몬의 노예다. 임신 후 태반에서 분비되는 프로게스테론이 제 역할을 다 한 덕분에 나는 다시 온순한 여성으로 돌아갔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나를 위해 존재했고 주위의 배려와 친절에 익숙해졌다. 남편은 늦은 밤에도 내가 는 주문을 마다하지 않았다. 문을 닫는 시각에 찾아간 순대집 앞에서 우리 와이프가 임신했는데 순대 1인분만 파시면 안 되겠습니까 묻던 그를 보며 눈물 나게 감동했다. 좋아하는 샤브샤브에 고기를 2인분을 시켜주시던 시집 식구들에 감사하며 맛있게 잘 받아먹기도 했다. 어학원에 함께 다니던 언니가 매일 아침 본인 차량으로 나를 픽업해 주 등하교가 순탄했다.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닌 뱃속의 아기를 위한 관심과 배려인 줄을 알았을 때는 이미 출산한 뒤였다.


확 달라진 삶에 정체성이 흔들렸다. 나는 여자인가 암컷인가 밥통인가 엄마인가. 나를 정의하기 어려워 뜨거운 눈물을 자주 흘렸다. 새벽마다 영아산통에 울어대는 아기를 안고 섬집아이를 무한 도돌이표로 부르며 부르스를 추는 밤이 오래 이어졌다. 생활의 사이클은 온전히 아기에게 달려있었고 조금이라도 내 의사대로 하는가 싶으면 아기는 여지없이 울음으로 징벌했다. 나는 모유를 위해 끊임없이 탕을 마셔야 했다. 탕은 숟갈로 뜨는 게 아니라 마신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온갖 보양 재료를 한데 넣고 고아 진국이 된 그런 것들이 냉장고에 가득했다. 사골곰탕이 되기도, 닭곰탕이기도, 돼지 족탕이기도 했던 그들은 내 몸을 거쳐 모유로 쏟아졌다. 의지와 상관없이 흐르는 젖에 아기는 용케도 밥때를 알고 입맛을 다셨다. 찌르르하면서 채워진 모유는 또다시 찌르르하면서 빨려 나갔다.  


아기에게 젖은 생명이었고 나는 젖을 통해 생명을 나눠주었다. 이 기간을 거치며 여자엄마로 환승한다. 아기의 방긋방긋 웃는 얼굴은 행복이 되었고, 그 행복은 중독성이 심했다. 그 얼굴 좀 보자고 아기의 배를 채우는 일을 반복했고, 홀랑홀랑해진 젖은 임무를 다했을 때의 만족감을 체득했다.

시어른의 모유 중단 요청은 야속했다. 둘째를 바로 보고 싶어 하시는 욕심은 내가 이전의 나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심과 상충되어 무언의 기싸움이 되었다. 남편까지 시월드에 합세한 그 기간 많이 외로웠다. 


친정엄마에게 전화해 자주 하소연 했다. 육아와 가정일 모두 내 적성에 맞지 않고 남편은 바빠 혼자 너무 벅차다는 말들. 엄마는 묵묵히 들어주셨고 마지막엔 늘 똑같은 말씀으로 끊으셨다. 누가 등 떠밀었니.

몇 달간 엄마가 내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딸 때문에 분명 마음고생이 되셨을 것이다. 내가 헤쳐나가야 할 일에 엄마가 도움 줄 방도가 없음을 인정하시고 시간 묘약의 힘에 의지해 혼자 묵히고 성숙하는 시간을 허락해 주신 거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반항심으로 가득 차 식구들 모르게 취업 면접을 참으로 많이 보러 다녔다. 잦은 야근과 출장 요구에 육아와 일은 겸할 수 없다는 것을 터득했고 나 자신과 타협하여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산후조리를 하는 동안 친정에 머물렀다. 햇살이 따스한 날, 마당을 걸으며 평소엔 잘 눈에 띄지 않던 돌두꺼비상이 그날따라 유독 눈에 들어다. 안쪽에 한 마리, 바깥쪽에 한 마리. 자세히 보니 안쪽 두꺼비는 등에 아기 두꺼비를 업고 있었다.

 

엄마 두꺼비를 만지며 그 묵묵한 등허리에 눈물이 났다.


올해는 장마가 유난히 길다.

정원 연못에 정체 모를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밤에만 들리고 비 오는 날 더 심해지는 소리에 온 가족이 어리둥절했다. 아이는 운동기구 소리라고 했고, 남편은 정원에 오리가 있냐고 물었다. 연로하신 부모님 두 분만 사시는 이 정적인 공간에 있을 법하지 않은 소리였기에 더 알 수 없었다.


황소개구리의 울음소리는 온 동네를 시끄럽게 했다. 어느 날은 잠을 못 자 푸석한 얼굴의 이웃집 아저씨가 꼬챙이를 들고 연못을 엉망으로 휘젓고 가기도 했다. 엄마는 맨손으로 한 마리를 잡았다가 미끄러워 놓친 이야기를 아쉬운 마음에 무한 반복 재생하셨고, 무한정으로 듣고 있는 우리도 답답했다. 아빠는 유튜브에배운 대로 막대에 낚싯바늘을 연결하고 돼지비계를 매달아 연못에 드려놓았다. 입에 고리가 걸려 잡혀있을 모습을 생각하니 이미 쌤통이라는 듯한 아빠의 표정에서 어릴 적 꽤나 말썽 부렸을 아빠의 어린 시절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일주일이 지났고 우리 가족은 여전히 속수무책으로 개구리 합창의 습격을 당하고 있다.


개구리가 조용해야 부모님 마음이 편안하고 밤잠을 잘 주무실 텐데.

등에 아기를 업은 아내 두꺼비는 시간의 힘을 믿고 때를 기다리는 성숙한 내면힘에 의지해 침묵하는 길을 택했다. 밖에 나가있는 남편 두꺼비도 직장 스트레스, 과도한 업무에  할 말은 많지만 안 할 뿐이었다. 등에 업힌 아기 두꺼비도 학업에 친구 관계에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우리 가족은 무분별한 말을 흉기로 휘두르는 것을 멈추고 침묵으로 서로를 지켜내는 법을 배웠다. 묵묵하게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쪽을 가기로 했다.


연못의 황소개구리울음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대체 어떤 말을 하기에 밤새도록 멈출 줄 모를까.

귀 기울여 들어주는 이가 없어 더 크게 울어대는 건 아닌지 그 속을 누가 알랴마는 뭐든 지나치면 오히려 원하지 않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을 목 터지게 알려주고 있는 건 아닌지. (아빠의 낚싯대 상시 대기 중)


누구도 들어주는 이 없는 삶이 야속했지만 그 시간 또한 적당한 포기와 단념으로 익숙해져 갔다. 이미 한 말은 또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남에게 아픈 이야기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조용하며 묵직한 사람이 되기로 다짐하말에 조금씩 무게가 생기는 듯했다. 못다 한 수다는 고독을 벗 삼아 내면과 소통하며 해결했다. 돌두꺼비상의 입도 침묵으로 굳게 닫혀있는 걸 보면 소중한 사람으로 이루어진 가정이라는 보금자리는 말하지 않아도 아는 마음과 성숙하고 지혜로운 입으로 지켜내는 것이었다. 고향집 현관도 말없는 두꺼비 가족이 지키고 있어 부모님이 단잠 이루실 수 있듯, 효도는 못하더라도 걱정은 끼치지 말자는 생각늘도 입단속을 소홀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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