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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소리 Sep 03. 2024

번개맨, 당신을 기억합니다.

외로운 국화 한 송이

기사 뜬 거 봤어요?
왜.. 왜?


2024년 7월 27일, 번개맨이 죽었다.




도시에 역병이 돌아 의무 격리를 하던 때는 물론이고, 일상에서 우리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이들이 있다. 배고픈 이에게 밤낮으로 야식과 양식을, 아픈 이에게 육신과 마음의 약을 가져다주는 구급대원인 이들을 나는 배달대원이라 부른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현대인들에게 이들이 우리 삶에 주는 위로와 위안이 적지 않다.


배달대원의 소속에 따라 소비자가 기대하는 속도가 있다.

그중 제일은 '번개 배송'인데 비싼 만큼 당일 몇 시간 내로 받을 수 있어 소비자 만족도가 높다. 배달대원에 대한 기대가 자연스럽게 높아지면서 감사함과 동시에 안전에 대한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10여 년 전 피자배달을 하던 아르바이트생이 '30분 내 배달약속'을 지키려다 시내버스에 치여 숨진 사고가 있었다. 건당 임금을 받는 배달대원들은 건수를 하나라도 늘이기 위해 오늘도 일분일초를 다투며 달린다. 차량 운전자들은 계속해서 좌우를 살피게 하는 이들 오토바이들이 못마땅해 경적을 울려보지만, 이들에겐 자신의 생명 따윈 일 순위에 있지 않다. 쉴 새 없이 들어오는 휴대폰 주문 메시지에 주의를 기울이며 차들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이들 오토바이를 보며 그저 안전을 빌어줄 뿐이다.

당신의 안전을 빈다.


2017년 내가 이동네로 이사온건 울창한 가로수가 한몫했기 때문이다. 한여름 보행자에게, 버스 승차자에게 넓은 그늘을 마련해 주던 잎은 늦가을이청소대원 근심거리가 된다. 누군가에게는 지긋지긋한 일감일지라도 내겐 가을의 낭만이 되어준 이 가로수길을 유난히 아낀다. 나무는 날로 우거져 해마다 가지치기를 해줘도 이듬해 다시 성년의 자태로 듬직한 쉼의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그날은, 아침 뉴스에서 다소 각성된 목소리의 기상 캐스터가 태풍 '거미'의 특보를 전했다. 매년 강해지는 태풍이라지만 태풍 전야는 시원하고 고요했다. 한여름의 열기를 식혀주는 저기압 바람은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처럼 서늘하고 기분 좋게 까슬했다. 왔다고 노크하며 알리듯 태풍은 우리 집 창문을 몇 차례 흔들었으나 우려하던 피해 없이 조용히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번개 배달대원은 오늘도 임무를 위해 달렸다. 바람이 많이 불어 걱정하는 가족과 친구들의 만류에도 일터에 나왔을 그는 '안전운전'을 되뇌며 사거리 정지선에 멈춰있다. 옷깃을 잡아당겨 헬멧의 흐려진 시야를 닦아내고 신호등을 주시하던 찰나였을 것이다.


쩍! 퍽!


한여름 무성하게 뻗은 플라타너스의 굵은 가지가 바람에 못 이겨 몸체를 심하게 흔들었다. 힘에 부친 몸체는 크고 무성한 가지의 어마어마한 중량을 배달대원 몸체 위에 지체 없이 포기해 버렸다. 찰나지만 그는 순간 번개가 내리쳤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영문도 몰랐을 그가 힘없이 쓰러졌을 때 도로는 인적이 한산했다. 뜨거운 숨을 몰아쉬는 오토바이 옆의 그는 한 모금의 숨도 없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숙연함만 남았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숙연함만 남았다.

시(市)에서는 급히 인력을 보내 거침없이 가지를 베어냈다. 평소 이 가로수길을 좋아하는 동네 사람들은 시의 일방적인 벌목에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지만, 그건 아직 소식을 듣지 못해서였다.


예기치 않은 사고와 죽음을 종종 본다. 허나 이를 미리 예상하고 발 빠르게 행동했다면 하는 아쉬움은 뒤늦게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한 마리의 소를 잃은 것은 고통스러우나 철저한 외양간 보수로 나머지 소를 지키려는 모습에 그나마 안심한다. 그러함에도 애석함을 금할 수 없는 것은 천지지변을 둘러싼 책임소재의 부재이다. 피해를 입힌 자는 없 피해를 입은 자만 있다.  안타까운 젊은 목숨을 대체 어디에 대고 물을 수 있다는 말인가.

태풍인가, 나무인가.

시(市) 정부인가, 배달업체인가.

아니면,

소비자인가. 


사거리에 놓인 국화 송이가 외롭게 그를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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