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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소리 Aug 28. 2024

최선의 얼굴

만들어진 진정성

남들 앞에서 우리는 누구나 가면을 쓴다.
[인간 본성의 법칙 - 로버트 그린]



인간 본성 연구에 정통한 분의 말씀을 듣고 나면 안심이 된다. 내면의 다중인격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함께 안정을 찾는다. 승무원 학원이나 스피치 학원이 성업 중이다. 목소리와 첫인상과 같이 오랜 시간 뇌리에 각인될 만한 특성들을 배우기도 가르치기도 하는 것을 보면 TPO*에 맞는 적절한 가면을 선택하고 호의적인 인상을 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 본성에 오랜 시간에 걸쳐 굳어져 왔다. 이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에도 경쟁력의 도구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탈과 춤


우리 조상들도 탈을 통해 사회 비판과 풍자를 삶 속에 녹였다. 탈이 주는 익명성은 그들의 목소리를 높여주는 마이크의 역할을 해주니 탈을 쓰면 이들의 몸짓은 더 가벼워진다. 동작은 더 과감해진다. 탈이라는 가림막이 주는 자유에 마음속 한과 응어리는 어느새 공중으로 분산되고 발산되고 휘발된다.


'인격(personality)'이라는 말은 라틴어 '페르소나(persona)'에서 왔다. 페르소나의 사전적 정의는 가면이라는 뜻인데, 우리는 인생을 거치며 수많은 페르소나를 장착하기도 탈착 하기도 한다. 현대인들에게는 직장에서의 성공을 위한 페르소나, 자상한 가장의 페르소나, 효심 있는 자녀로서의 페르소나, 능력 있는 친구라는 페르소나... 쉴 새 없이 가면을 바꿔 쓰는 중국의 경극이 떠오른다. 모임 자리가 있을 때면 오늘은 어떤 페르소나가 어울릴까 습관처럼 생각해 본다. 나의 사회적 위치를 파악하는 것을 시작으로 어떤 대화 방식과 표정이 어울리는지 모든 것이 계산에 들어가 있어야 안심이 된다. 가면을 성공적으로 갈아 쓸 때 비로소 사회적 동물로서의 성공적인 시작점이 만들어진다. 눈꼬리를 내리고 광대를 올리고 치아는 8개가 보이는 것이 이상적이다. 가식적인 느낌을 빼고 되도록 사람 좋은 듯 크게 웃어낸다.

엘리베이터 거울 앞에서 다시 한번 '아에이오우'.

입꼬리가 경직되고 떨리기 시작했지만 부장님이 캐치하진 못했겠지. 평소의 감정은 은연중에 어느 틈에서도 드러나기 마련. 틈단속 눈빛단속을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사춘기의 문턱에 진입한 탓인지 근래 딸의 표정에 영혼이 없고 목소리에 미소가 없다. 로봇과 이야기하면 이런 느낌일까. 으레 듣게 되는 어른들의 인사성 칭찬에 밝은 표정으로 화답하면 될 일을 뚝뚝한 대답으로 상대를 종종 당황시킨다. 맘에 드는 선물을 받았을 때라도 충분한 감사를 표해야 할 텐데 나는 그것이 미덥지 않아 아이에게 보다 적절한 표현을 가르치고 가면을 골라준다.


"아이들은 사회적 표정이 없어요. 돈을 안 벌어도 되잖아요."
[쓰기의 말들 - 은유]


엄마한테는 함부로 하면서 밖에 나가면 잘도 웃더라?!

친정 엄마에게 평생을 듣던 말을 내가 딸에게 그대로 하는 소리에 상당히 겸연쩍다. 대체 내가 어디가 어때서? 하던 목소리는 어느새 엄마에게 인정하는 목소리가 되어버렸다. 편한 이들에게 보여주는 얼굴과 이해관계에서 나오는 가면이 과연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내면의 내가 밖으로 백 프로 표출되면 세상은 나를 감당할 수 있는가? 나는 과연 그런 모습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가? 이것은 나에게 진정 이로운 모습인가?    

탈 속의 맨얼굴

요 며칠 궂은비에 홍수가 나 논밭이 침수가 되는 일이 뉴스에 흘러나온다. 농민들의 한숨이 더 해가는 계절이다. 이재민들은 근처 대피소에서 기약 없는 복구 소식만 기다리고 있다. 작년에는 높으신 분들도 와서 들여다보고 가셨는데 매년 반복되는 홍수라 정치인들도 이슈화에 기대가 없는지 대피소가 썰렁하다. 대피소에서 나오는 딸아이의 친구들을 마주쳤다. 달콤 새콤한 레몬맛 아이스티에 마라맛 뿌셔뿌셔에 행복한 표정이다. 아이들의 생그러운 인사에 현실감이 사라진다. 괜찮니?라는 물음에 올해도 토마토가 망했대요~

웃으면서 할 수 없는 말이 너희의 천진한 표정에 겹쳐지니 의아하지만 금세 그들의 아이다움에 웃음 짓는다.

 '그래. 어른들에게 다 맡기고 너희는 밝아라.

연기 따위는 해야 될 때까지 미루고 사회적 표정 또한 그 순한 얼굴에 드려놓지 말아라. '



싫은 것을 싫다고 할 수 있는 용기


오래간만에 친구와 친구의 딸을 초대하여 식사를 했다. 부모가 타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지라 방학에만 잠시 상하이에 와서 지내는 친구 아이는 표정과 말투에서 어른들의 관심을 갈구하는 마음이 짐작되어 측은하다. 아이의 주양육자인 조부모는 훈육과 교육보다는 먹고 자는 일차원적인 양육에 중점을 맞춰 아이를 키운다. 대화하거나 행동하는 모습에서 그 또래 아이들이 할법한 정도의 성숙함은 보기 힘들었다. 작년에는 내성적이어서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했던 수줍음 많던 아이가 올해는 180도 바뀌어 어른에게 수다도 걸고 대화에도 꽤나 적극적이다. 난 한 발짝 물러나 그것이 무엇에 기인한 것인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내 아이는 자신과 결이 맞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특별히 좋아한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겠지만, 아이는 가면이 얇고, 어떤 때는 투명이 되기도 하기에 호불호가 선명하게 눈에 띈다. 그만큼 보는 이로서는 당황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딸은 친구 아이의 아기 같은 행동을 공주병이라고 해석했다. 선머슴 같은 내 딸과 공주 같은 친구 딸. 어울릴 수 없는 간격 때문이었을까. 식사 자리의 이어지는 대화에서 내 아이는 이미 맥반석 오징어처럼 비비 꼬기 시작했다. 그 마음을 모를 리 없는 나는 애써 모른척하며 아이가 여러 상황에 처해보는 경험을 이어가도록 내버려 둔다. 그 속을 알 리 없는 내 친구는 아이들을 손잡게 하여 사진을 한 장 찍는다. 내 딸은 그 애와 손을 잡기 싫어 카메라를 향해 눈도 입도 웃을 수 없다. 표정을 짓다 말고 그 짧은 순간에 울음이 터져 나온다. 난감한 순간이 또 이렇게 급작스레 다가온다. 이때 필요한 건 순발력.


순발력 약체로 태어나 얼마나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가까스로 넘겼다. 가면을 가르칠 수도 가식을 교육할 수도 없는 노릇에 오늘도 육아는 갈팡질팡한다. 

삼겹살도 세 겹인데 어찌 인격이 하나일까. 영혼이 순수해서 영원히 하나일 것만 같은 단일 가면과 상황 바꿔 쓰는 사회성과 적응력이 뛰어난 다중 가면의 진정성 부족 사이에서 나는 어디에 기우는가. 무엇을 기준으로 적당함을 정당화할 있을까. 타인의 가면을 보는 시선은 어디까지 내가 허용하고 감당할 수 있을까.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도량을 넓혀야 할 이유다.



*TPO: 의복을 경우에 알맞게 착용하는 것 ( Time, Place, Occa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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