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학교 홈페이지 올라온 학교 광고 영상을 보았습니다. 지난 학기에 광고 촬영이 있다고 아이들 사이에 떠들썩하던 일이 그간 편집을 마쳐 완성이 되었군요. 음악과 아이들의 창의 교육을 중시하는 학교의 가치관이 같은 교육 목표를 가진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온전히 가 닿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번 광고 촬영의 배경에 대해 설왕설래하던 결과물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학부모 입장에서 안도와 걱정이 동시에 드는 것을 솔직하게 전합니다. 우선, 우리 학교가 지난해 음악 교육에 집중하면서 학생들이 악기 연주와 생활 속에서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 큰 동기 부여가 되었음을 느낍니다. 학생들이 봄철의 콘서트를 통해서도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맘껏 뽐내 숨겨진 재능을 계발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행사에 흡족한 마음으로 함께 했습니다.
광고 속 학교는 밝고 즐겁고 티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허나, 광고 뒤의 속사정을 아는 자로서는 상당한 불편함 있었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광고 속 인종차별로 보이는 메시지가 행여 학생들에게 은연중 전달되지는 않았을까 상당한 우려의 마음이 듭니다. 원래는 아시아 학생을 메인 모델로 결정했다죠. 학교를 대표할 만한 아이를 선정해야 했고, 한 아시아 학생으로 선생님들 입이 모아졌다는 소식을 후문으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돌연 학생 모델이 금발의 백인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순간, 우리의 교육이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가를 고민했습니다. 학교를 대표할 만한 퍼포먼스도 인성도 고려하지 않고, 서양 학생을 간판으로세운 소식에 한숨과 허탈한 웃음이 났습니다. 학교의 가치관이 여기에 집중해 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과 실망감도 적지 않았습니다.
인종차별의 문제에서 약자인 동양인의 시선에서도 백인이 국제학교의 대표 이미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이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국제화되고 다양성이 있는 학교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싶으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외부 학부모들에게 다국적 학생을 교육하는 교육의 메카라는 이미지를 주고 싶으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차별을 거부하면서도 차별을 학습하여 우리 자신에게 적용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너머를 봐야 합니다. 기존의 경직된 생각만 팽배한 캠퍼스는 더 이상 원치 않습니다. 이번 일이 학생들에게 문화적 사대주의를 심어준 것은 아닌지, 동양인의 수준을 스스로 평가절하하고 과소평가하는 태도로 전달되는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등장하는 흑인 학생의 이미지도 그렇습니다. 왜 그리 우수한 학생이 배경이 되어야 했는지요. 흑인이기에 차별받고, 교육받지 못하고, 백인과 한 자리에 앉지 못했던 그 과거를 다시 우리가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번 모델 교체 사건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참으로 어렵습니다. 우리 학교의 백인을 제외한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기성세대로서 민망하고 미안할 뿐입니다.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보기 좋은 명분 아래 모호한 정체성으로 뒤범벅되어 사실을 또렷이 보지 못하는 구시대적 생각들에 아이들을 동참시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백지와 같이 깨끗한 아이들에게 인종차별과 같은 폭력적인 그림이 남겨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학교는 무해한 곳이어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고민했습니다. 어쩌면 아이들은 별생각 없는지도 모르겠지요. 예민하여 민감하게 반응하는 날 선 학부모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복기할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저는 아시아 대표였지만 검은 머리와 노란 피부로 그 자리에서 밀려난 제 딸에게 아직도 설명할 말을 못 찾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어른, 무해한 학교가 되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학부모의 생각을 지나치지 마시고 들여다보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24.10.17
우리 것이 제일 좋은 것이여! 하는 국뽕도,
한국인은 우리 농산물만 먹어야지! 하는 신토불이도,
피부가 어두운 아이를 낳은 어미가 겪는 손가락질도,
외국 명절을 무분별하게 쫓아가는 코스튬 쇼핑도,
다 이 쪽 아니면 저쪽으로 치우쳐서 그렇다.
지구촌 시대가 시작된 지 수십 년이 흘렀다.
흑과 백 사이에 여러 농도의 회색이 있는데, 그것이 국제화고, 그것이 지구촌이다. 회색 물결에 유연하게 서핑하는 법을 어른이 먼저 배워 아이들에게 전수해줘야 할 텐데 아직도 물가에서 허덕이고 있으니 큰 일이다.
독자를 한 분으로 정하고 쓴 글에 양해를 구합니다. 한 분을 표적하고 쓴 글이지만 우리가 공통으로 공유하는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정관념과 편견의 대물림이 이제는 멈춰져야 합니다. 한 세대를 먼저 사는 어른으로서 한 마디를 하는 것으로 역할을 다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외침이 될 수는 있다고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