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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소리 Oct 16. 2024

기쁨 채집

지금을 붙잡아

살만한 세상이다. 여름엔 복숭아도 달고, 가을엔 계화향이 쏟아지고, 고슬고슬한 바람도 느끼고, 물 위의 빗방울도 볼 수 있고. 모처럼 동행자가 있는 기쁨 채집에 설렌다.

동행한다는 건 상대의 시간과 내 시간을 섞는 것.

해뜰참부터 너를 깨우지 않았다. 내 시간에 굳이 너를 맞추지 않고, 네 시간에 내가 맞추지도 않는다. 그저 각자 시간과 안배에 맞게 살다가 연락이 닿으면 되는 것으로 우리의 만남이 인위적이지 않다.


(띠링)

걷니?


친구는 만나자는 말을 그렇게 했다.

지난 봄 야생화를 한 다발 꺾던 네 나쁜 손이 이 가을 계화꽃을 똑똑 끊고 꽃잎을 털어 주머니에 쓸어 담는다. 계화나무를 통째로 뽑아다 고향집 정원에 심고 싶다는 네 입에서 계화 향이 났다.


한국에선 목서 꽃이라고도 하고 색에 따라 금목서, 은목서라고 한다.


요즘 상하이는 계화가 황홀하다. 공원 어디에든 무릉도원이 따로 있을까 싶을 만큼 진귀한 향내를 만난다. 이 좋은 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연이 주는 로또 복권 당첨권을 포기하는 사람들이다. 지금을 붙잡아 즐기는 사람들이 진짜 부자가 아닐까. 나는 오늘 진짜 부자가 되었다.


지금을 붙잡아 즐기는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꽃밭을 누비며 꽃가루로 경단을 빚는 꿀벌.

쿨톤 화이트의 환한 깃털에 눈이 부신 고니 가족과 초대 손님 오리 한 마리.

가을을 만나러 새장에서 탈출했을 화려한 머리 장식의 인디언을 닮은 후투티.

빗 속에도 개구리 왕눈이를 기다리며 피웠을 색색의 수련.

한 번 쓰다듬은 손에 영원할 것 같은 로즈메리 향취.

같은 온도의 우리가 공유하는 같은 온도. 일 년 중 제일 사랑하는 온도다.


우주 만물 속에 가득하신 님, 그 숨결이 귓가에 속삭이는 말씀을 듣는다. 나는 신이지만 네 안에 있고 너는 사람이지만 내 안에 산다. 너는 나를 다 알지 못하지만 나는 너를 속속들이 알고 네가 품는 생각까지도 알고 있다. 한시도 네게서 눈을 떼지 않는 나를 너는 아느냐? 꽃잎 한 장도 내 사랑 안에 머문다는 것을.

<거기에 사람이 있었네, 반숙자>


배롱나무 가지 끝에 핀 연분홍 꽃에 씨앗이 맺혔다. 애교 가득한 작은 씨앗 주머니 안의 수많은 날개.

툭 터져 멀리 날아가 앞으로 이어질 수많은 가을을 약속한다.



농농한 계화 향에 물든 후각이 맹물같이 싱거운 공기 속으로 다시 돌아왔다. 빈 손은 아니다.

꽃을 보던 그 예쁜 눈을 가지고 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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