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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소리 Oct 22. 2024

누가 나 좀 좋아해 주라.

너만의 일은 아니야

소녀들에게 소속감은 중요했다. ‘이상한 애’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무리에든 속해야만 했다. 나는 무리 안에서 존재감을 느꼈고 존재 가치를 확인했다. 중심에서 인기를 누리는 인싸(인사이더)가 되는 것은 누구나의 한결같은 소망이었다.


진옥이는 전교생이 다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 얘의 자리는 쉬는 시간마다 찾아온 친구들로 둘러싸여 웃고 떠드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나도 진옥이가 좋았다. 진옥이의 선한 미소가 좋았고, 어색하고 순수한 손짓이 좋았다. 무엇보다 진옥이가 제일 좋았던 건 착한 마음씨와 남을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진옥이가 좋으면서도 주변의 친구들의 벽을 뚫지 못해 애가 닳았다. 틈날 때마다 기회를 노렸고, 기회가 날 때마다 우린 놀았다.

진옥이는 내게 단점이 없다고 했다. 난생처음 그런 칭찬에 나는 더 좋은 친구가 되고 싶어 안달했다. 혹여 실망시키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그러던 그 아이가 어느 날부터 내게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같이 놀지만 예전 같지 않았고 우리 사이에 찬 바람이 드나들었다. 비슷한 시점에 다른 아이들과도 미묘한 거리가 생겨났다. 이유를 알고 싶어 많은 날을 고민했지만 알 길은 없었고, 직접 물어보자니 거리감을 인정하는 꼴이 될까 그럴 수도 없었다. 애써 괜찮은 척 치밀어 오르는 설움을 꾹 참으며 상처를 쌓아가는 날들이 그 후로 이어졌다.


체육시간에 운동장으로 나가는 길, 쉬는 시간에 매점으로 달려가는 길, 그리고 방과 후 하굣길에 같이 갈 친구를 찾아다녔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었고, 무리 안에 들지 못하는 혼자라는 기분이 나를 잡아먹을 듯했다. 마치 우정을 과시하듯, 진옥이를 중심으로 모인 애들은 졸업사진 촬영에서 서로를 꼭 끌어안고 지나치게 친밀함을 연출했다. 빈틈을 노려보아도 내가 들어갈 틈은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다른 무리의 은따를 찾아 포즈를 취하며 웃었다.


새로 산 참고서가 없어졌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온 교실을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는데 진옥이 무리 중 한 친구의 서랍에 내 연두색 참고서가 보이는 게 아닌가. 흔히들 사는 출판사 참고서가 아니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담임에게 익명으로 요청한 SOS는 무심하게도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나는 내 감정에 솔직할 수 없어 쩔쩔맸고 범인의 당당한 태도에 주눅 들었다. 선생님에게 실망하고 아이들 속에서 무력해졌다.




도청 소재지 근처의 작은 기차역이 새롭게 보수 정비하여 문을 열었다. 근처의 농협 창고는 미술관이 되고 도서관이 되어 기차 여행객과 타지 관광객의 스폿이 되었다. 전시도 구경할 겸 들어간 역사 입구에 손님을 반기는 목소리가 오목조목하게 준비한 팸플릿을 가지가지 챙겨주셨다. 기차역이라기보단 전시관 같은 기분이 드는 곳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농산물을 나르는 교통 중점 역할을 했다는 히스토리를 둘러보며, 벽에 깨알같이 적힌 역에 관한 상식을 읽었다. 깊숙이 들어간 곳에는 한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이 있었는데 누구든 부담 없이 빈백(bean bag)에 누워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때마침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하여 털썩하고 빈백에 몸을 파묻었다.  


"옛날에는 역을 역참이라고 했는데, 역참과 역참 사이의 거리를 일컫는 단어로 '일참' 혹은 '한참'이라고 했습니다. 보통 한참은 30리, 즉 12km를 뜻하니 그 거리가 가깝지 않았지요. 그래서 우리는 오래 걸리는 시간과 거리를 '한참'이라고 부르게 되었어요."


조용한 곳에 에코를 울리며 설명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고개를 꺾어 바라본 그쪽에 시니어 도슨트 한 분이 관광객을 상대로 안내를 하고 계셨는데 남색 베레모를 쓰고 파란 앞치마 같은 안내복을 입은 그분의 얼굴이 낯익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목소리와 매칭해 보니 그 시절의 담임 선생님이 확실했다. 퇴직하시고 소일하시는 듯했다. 눈이 마주쳤고, 그날의 무력함이 떠올다. 샤프심처럼 힘없던 그 시절이 기억나기 전에 고개를 다시 책장으로 회피했다.




동년배 여성을 만나면 아직 어렵다. 이유 없이 미움받을까 말을 최대한 아끼며 시간을 기다린다. 자연스레 파악하고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린다. 구태여 나를 알리고자 애쓰지 않게 되었고, 성급하게 다가서지 않는다.

한국 여성의 90% 이상이 은따를 경험했다는 기사를 최근 접했다. 왜 때문인지를 고민하던 답답한 시간 동안 문제의 원인을 내 안에서 찾고자 했다. 돌아보니, 나 혼자만의 일은 아니었던 듯하다. 친구를 독차지하고 싶어 하는 여자 아이들의 심리와 거기서 야기되는 질투의 감정이 여자들 사이에는 비일비재하니까.


어딜 가나 열 명 중 두 명은 나를 싫어하고, 일곱 명은 관심 없고, 한 명은 나를 좋아한다.

<내가 엄마들 모임에 안 나가는 이유, 강빈맘>


꽃같이 예뻤던 나이에 어떤 화초보다 시들어 있던 그 시절의 나를 측은하게 돌아본다. 나를 보듬어 줄 한 마디를 찾으려 세상의 숱한 책장을 넘겼던 날들이 평생처럼 길었다. 마침내 마주친 한 마디가 주는 단순함이 내게 값진 의미로 다가왔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아니면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오늘도 이 질문은 부단히 나를 체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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