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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소리 Nov 09. 2024

귤 나는 계절

중국인이 귤 고르는 방법

조생귤

바야흐로 귤 철이다. 입동이 지나니 부인할 수 없는 겨울인데 깊어져 가는 가을을 겨울에 붙이기엔 아직 서운하다. 사랑땜이 아직 진행 중인 가을을 조금 더 잡고 있다가 천천히 놔주기로 한다.

내 마음과 달리 시장에는 이미 급하게 나온 얼굴들이 있으니, 바로 겨울철 단골손님 귤이다. 그간 귤도 여러 형태로 많이 변화되어 왔다. 미국 수입 선키스트 오렌지를 처음 맛보며 고급스러운 달콤함에 감동하던  때가 있었다. 시대의 흐름과도 맞물려 오렌지는 그 귀하고 사치스러움을 부잣집 젊은이들에 빌려주기도 했었지. 꾸준한 연구와 개발의 결과로 토종 귤과 접목, 계량하여 귤은 한라봉이 되고 천혜향도 되었다. 새콤함보다는 달콤함에 집중한 맛과 향의 인기는 고고한 가격과 비례했다.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과일은 제철 토종 귤이다. 엄마는 조생귤이라 했고, 옛날 우리 할머니는 밀감이라고도 했던 그것이다. 탱글하고 풍만한 살집을 가까스로 둘러싸고 있는 얇은 껍질의 작은 몸집은 박스를 열면 사방으로 튕겨나갈 듯 탱그럽다. 박스째 사다 놓아도 하루 이틀이면 동이 났다. 바가지에 한가득 담아 아랫목에 누워 끝도 없이 까먹으면 손도 얼굴도 노란 귤이 되었다.



브랜드명이 유명해지면 물건 그 자체의 명칭이 되기도 했다. 크리넥스가 그렇고, 아이패드가 그렇다. 내겐 귤은 칠십리감귤이다.


"아, 칠십리감귤 먹고 싶어!"


상하이는 제주보다 더 남쪽에 있는 고로, 진작부터 귤이 나오기 시작했다. 여름 더위가 가시기 시작하면서 나온 청귤은 그 외모에서 풍기는 새콤함에 혀뿌리가 자극되어 침이 돈다. 부지런한 이들은 청귤을 박박 씻어 청귤청도 만들어 청귤차도 마시겠지. 집 안에 과실수가 있는 농가 주택엔 귤나무도 있는 집도 있다. 정원의 귤나무에서 수확한 소박한 얼굴들이 종종 할머니 손에 이끌려 길바닥 상점에 나온다. 꾸깃한 비닐봉지의 입구를 아래로 접어내려 주황의 반짝이는 얼굴들이 행인을 유혹한다. 할머니의 수고가 안타까워 몇 알 집어 담아 집으로 왔지만 어쩐지 좀 싱겁고, 단맛보다 신맛 위주다. 담아주는 대로 받아온 내 실수다.


중국인들은 수고를 사서 한다.

땅콩 한 근을 살 때도 한 알 한 알의 모양과 색깔과 질감을 확인하며 봉지에 담는다. 두 손으로 쓸어 담아와서 집에서 씻으며 썩은 것을 골라내는 나와는 정반대다.


청과시장에서 인위적인 광으로 범벅이 된 귤이 한 무더기다. 껍질을 만져보면 알 수 없는 액체가 끈적함을 엷게 남기고 말라있다. 가구에 시너를 바르듯 귤에도 누가 장난질을 해놓았다.

가구에 시너를 바르듯 귤에도 누가 장난질을 해놓았다.


안 쪽 매대에 자연스럽고 은은하게 윤나는 귤을 찾았다. 길거리 상점이 아닌 청과점에 파는 귤은 만지면 참 보드랍다. 이것은 귤을 수확하여 상자에 옮겨 닮기 전에 일일이 특수 장치 안에서 굴려지며 눌지기 때문인데, 덕분에 맛은 더 달콤해진다. 맛없는 귤을 손바닥에 혹은 탁자 위에 굴려주면 당도가 높아진다는 스펀지(KBS의 호기심 실험 프로그램)의 실험이 여전히 온 국민을 굴리게 한다.

안 쪽 매대에 자연스럽고 은은하게 윤나는 귤을 찾았다.


막연히 고르던 귤,

중국인처럼 제대로 한 번 골라 볼까.


1. 귤의 껍질이 부드러운 것을 고른다. 껍질이 뻣뻣한 귤은 즙이 적거나, 신 귤일 확률이 크다.


2. 옆모습을 비교했을 때, 꼭지 부분의 껍질이 평평하거나 살짝 들어간 것을 고른다. 튀어나온 것은 당도가 낮고 껍질이 두꺼울 가능성이 있다.

평평(좌) 뽈록(우)

3. 귤의 사면을 부드럽게 눌러보았을 때 탄력이 느껴지고 껍질이 얇은 것을 고른다.


4. 귤의 암수를 구분한다. 암컷은 바닥 중심에 작은 동그라미가 있다. 사이 튀어나온 조직이 있기도 하다. 반면, 수컷은 그냥 작은 하나다. 일반적으로 암컷이 당도가 높고 즙이 많다고들 믿는다. 실제 이 표시는 생물학적 암수를 뜻하는 것이 아닌, 꽃이 떨어지고 열매가 만들어지면서 생종류의 흔적일 뿐이다. 맛에 관한 과학적 근거는 없다고 하지만 실제로 암컷 귤이 시장에서 환영받는 것은 사실이다.

암(좌) 수(우)


귤의 암수에 관한 정설(?)은 중국인 사이에선 거의 진실로 통한다. 하여, 귤이 산처럼 쌓인 매대에 귤의 배꼽을 살피는 소비자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어디든 영리한 소비자 위에 영악한 판매자가 있다. 수컷만 남는 매대의 해결책으로 몇 해전부터 스티커가 등장했다. 연지 같은 스티커가 정확히 배꼽을 덮고 있다.

빨간 연지 같은 스티커가 정확히 배꼽을 덮고 있다.




플러스)

귤을 까지 않고도 조각 수를 맞출 수 있는 법;

꼭지를 손톱으로 떼어내면 과육으로 영양이 전달되는 관다발의 단면이 보인다. 그 개수가 바로 귤 조각의 수.

비밀은 꼭지에 있다.


주의)

관다발의 개수를 세다가 현기증이 날 수 있음. (돋보기 필수)

때로는 조각의 수와 관다발의 수를 타협하는 유연성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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