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소리 Nov 13. 2024

너에게 호랑이 기운을

음양(陰陽), 그리고 상하(上下) 

소화력이 다소 떨어지고 허약한 체질 탓에 매년 보약을 지어먹었다. 평소 음양과 균형에 대해 이해하는 만큼 식생활과 실생활에 적용하려 노력했고, 의식적으로 돼지고기보단 소고기를, 수박보다는 오렌지를 선호하기도 했다. 한의사 선생님이 진맥을 보고 처방을 할 때에도 나는 어떤 음식이 내게 좋은지 부단히 물었고, 선생님은 "바다는 무엇을 품을지 고민하지 않아요. 바다는 모든 것을 받아들여서 바다가 된 거랍니다."라는 다소 철학적인 답변을 주셨다. 음양에 너무 심취하여 적절한 영양 섭취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우려한 현답이었다. 그 순간 그 말씀도 일리가 있어 여러 날 곱씹어보긴 했으나, 결국 내가 오래 적응한 음양 법칙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음양(陰陽)은 천지 만물의 모든 것을 이루며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기운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믿는 사상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모든 환경을 이 음양을 가지고 해석한 것은 물론, 세계의 만물은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양분된 개념이기는 하나, 음양이 서로 공존하면서 균형을 이루며 조화를 통해 세계가 유지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두 가지 기운 중 한쪽으로만 지나치게 치우치면 만물의 균형이 깨지면서,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게 되니, 살아가는 데에도 문제가 발생한다고 한다.
이 두 가지 기운 중 한쪽으로만 지나치게 치우치면 만물의 균형이 깨지면서,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게 되니, 살아가는 데에도 문제가 발생한다고 한다.
음양에서 음은 달, 한기, 밤, 어둠, 음지, 뒷면, 북쪽, 여성(-) 등을 상징한다. 반대로 양은 해, 열기, 낮, 빛, 양지, 앞면, 남쪽, 남성(+) 등을 상징한다. 한 쌍이 되는 대립/보완관계는 모두 음양으로 분류 가능하다.

[나무위키]


중국에 와서 살아보니, 이곳은 음양이 일상생활이자 종교이고, 이 믿음은 삶 깊숙이 녹아들어 있었다. 비교적 따뜻한 성질의 식재료는 찬 성질의 식재료와 함께 궁합을 맞췄고, 이들이 먹는 모든 산해진미는 음양 철학의 개입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매년 11월에 산란기를 맞는 상하이 민물 털게(大甲蟹)는 음양의 법칙에 의해 반드시 암수 한쌍을 먹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그리고 게의 찬 성질을 중화할 요량으로 생강을 다져 넣은 흑초를 반드시 곁들인다. 거기다 따뜻하게 덥힌 황주까지 곁들이면 음양의 두 기운이 균형을 이루고 우리 몸에서 유익하게 공존하게 된다. 


같은 이유로, 겨울철에 찬물을 마시거나 수박을 먹는 등의 행위는 거의 금기시되며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다. 겨울에도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우리 집 식구들을 보며 혀를 내두른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최근 조석으로 부는 시원하고 쾌청한 바람에 몸의 열을 빼앗길까 겨울 모자를 둘러쓰고 겹겹이 껴입은 모습들이 굉장하다. 몸은 절대적으로 따뜻하게 유지하고 한 줄기의 냉기도 파고들지 못하게 꽁꽁 방어하는 중국인들이다. 


음양과 비슷한 논리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상하(上下)다. 상하를 논하기 전에 우선 간단히 알아둘 중국어 단어 몇 가지를 나열한다. 


아침 早 

오전

오후

저녁 晚


이는 하루 시간을 뜻하는 개략적으로 뜻하는 단어들로, 보통 시간 앞에 붙여 쓴다. 네 단어에는 공통적으로 상(上)이나 하(下)가 들어가는데, 이는 때때로 음양과 비슷한 개념으로 쓰이는 재밌는 경우가 있기에 다뤄본다. 


몇 해 전 투병하느라 문병을 당하는 일이 잦았는데, 살뜰히 돌봐주고 살펴주는 이웃들에게 감사함을 평생 빚진 시간이기도 했다. 이들은 이른 아침에 양손에 과일과 우유와 간식을 들고 현관문을 두드렸다. 평일에 출근하기 때문에 주말 오전에 시간이 나서 들렀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특별히 그 시간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며칠 전, 편찮으시다는 친구 아버지의 문병을 가려던 참에 다른 친구의 연락을 받아 함께 가게 된 일이 있었다. 시간은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으로 친구는 시간을 재촉했고, 우리는 급하게 과일 상자를 들고 어르신 댁에 11시 45분쯤 도착했다. 12시 전에 도착해서 다행이라며 숨을 몰아쉬는 친구의 모습이 의아했다. 


환자의 기력이 다시 예전처럼 솟아나고 병이 속히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병문안을 한다. 문병을 가는 시간은 上이 들어간 시간에 하는 것이 중국인 사이에서 통하는 배려라고 한다. 上이 들어가는 시간, 즉, 아침, 오전, 저녁은 괜찮지만 下가 들어간 오후는 기운의 하락을 의미하기에 문병에 적합하지 않은 시간이다. 그날 우리의 11시 45분은 오전이었기 때문에 애매하고 어색할 뻔한 핑계를 찾지 않아도 되었다. 기도가 온전히 전달된 것 같아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문화를 깊이 알지 못한다면 예상치 못한 오해와 민망한 배려가 생길 수 있다. 상대를 위하고 기도하고 축복하는 마음이야 어디 다를 수 있겠냐만은 한걸음 더 이해하는 것으로 찝찝한 선물은 피할 수도 있다. 내 마음이 네 마음과 같을 거라는 생각만으로 생겨나는 오해가 이 세상엔 생각보다 많다. 




작가의 이전글 마음이 아프지 않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