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클로즈> 리뷰
그 무엇으로도 규정되지 않는 관계들이 있다. 아니, 그 무엇으로도 규정되지 않기를 바라게 되는 관계들이. 서로만의 언어가 생긴 후에는 굳이 정의를 고르고 골라 관계를 가둬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당신 그리고 나'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언제까지나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혼란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욕구는 본능과도 같고, 결국 한 쪽은 갇힘이 주는 안온함을 원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균열은 관계 바깥에서 던진 돌이 일으키기도 한다. '너희는 무슨 관계야?'라는 물음이나 '너희는 이런 관계처럼 보여.'라는 정의는 둘만의 견고한 세계를 흔들고,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간다.
영화 <클로즈>는 살아가며 한 번쯤은 맞닥뜨릴만한 이 균열을 가장 정념이 풍부한 청소년기 남자 아이를 주인공으로 보여주고 있다. 총 48관왕, 60회 노미네이션이라는 역사를 쓰며 5월 개봉을 앞둔 <클로즈>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청소년기의 정열과 아픔을 감각적으로 펼쳐놓는 마법 같은 작품이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한다. 형제처럼 친밀했던 두 소년, 레오와 레미는 중학교에 진학한 후부터 관계를 의심 받게 된다. 그 시선이 불편해진 레오는 레미를 서서히 밀어내기 시작한다. 레미는 서운함과 슬픔, 분노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터트리고 몸싸움까지 벌이지만, 그들의 관계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 한다. 그리고 어느 날, 레오는 친구 레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영화 후반부는 그 사실을 마주하고 받아들이고, 또 레미를 기억하는 이들과 기억을 나누는 과정으로 이뤄져 있다.
레오와 레미는 일상의 전반을 공유한다. 영화는 둘만이 구축한 세계관에서 둘만의 규칙 하에 놀이를 하는 레오와 레미를 비추며 시작한다. 그들의 세계는 분화되지 않았고, 분화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함께일 때 더없이 충만한 상태인 것이다. 만발한 꽃밭을 내달리는 둘은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간을 기꺼이 공유하는 관계처럼 보인다. 취미 생활을 함께하고, 밤에는 같은 침대 위에서 잠에 든다. 둘을 갈라놓을 건 영영 없을 것만 같다.
그러나 계절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이제껏 함께 살아가는 게 중요했다면, 중학교라는 새로운 환경에 놓인 그들에게는 살아남는 게 중요해진다.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도태되지도 않는 것, 집단 내의 확실한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 타인으로부터 세계를 분화하는 것... 레오의 앞에는 막중한 과제들이 쏟아진다. '너희 사귀니?라는 질문에 그냥 친구라고 말하는 것뿐만으로는 그 과제를 이행할 수가 없다. 그래서 레오는 레미를 밀어내는 선택을 한다.
둘의 갈등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학교에서까지 크게 몸싸움을 할 정도로 사이가 틀어진다. 레미는 레오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고, 대화를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그렇게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던 도중, 바다로의 현장학습에서 돌아온 레오는 맞닥뜨리기 어려운 현실 앞에 선다. 레미는 더 이상 이곳에 없어. 울먹이는 엄마의 말에 레오는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난다.
레미의 죽음을 알게 된 후에도 레오의 일상은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레미의 죽음은 오직 '징후'로만 남아있다. 그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발화하는 이는 영화 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처참히 부서진 문고리, 갑작스레 우는 어른들, 선생님에 의해 둥글게 모여 앉은 아이들, 무언가를 정리하듯 짧게 다듬은 머리카락, 남아있는 것은 흔적뿐인 빈 방... 영화는 아이의 죽음을 아주 세심히 다루고 있고, 그게 이 작품의 큰 매력이다. 많은 서사를 닫아놓고 묘사를 덜어낸 것 역시 이와 궤를 같이 한다고 느낀다.
레미가 떠난 후에 아이들은 교실에 모여 그를 추억하는 시간을 가진다. 선생님의 질문에 레미와 그리 가까이 지내지 않았던 아이들은 짧게 애도의 말을 내놓는다. 그 자리가 가장 불편한 이는 다름 아닌 레오이다. 레오는 아이들이 모르는 레미의 모습을 너무나 많이 알고 있다. 그것을 그 세계 바깥의 아이들과 나눠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고 느꼈을지 모른다. 결국 영화 후반에는 '네가 그 애에 대해 뭘 아는데?'라고 역정을 내는 레오의 모습도 등장한다. 아직은 레미의 죽음을 나눌 수 없는 단계인 것이다. 자신이 레미를 밀어냈었다는 사실을 아프게 품고 있는 레오에게 레미의 죽음은 아주 개인적인 아픔이 될뿐이다.
이 맥락에서 영화가 아이스하키 장면을 사용한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레오가 아이스하키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레미에게서 멀어져 다른 그룹, 특히 주류 남자 아이들 세력에 포섭되기 위함에 있었다. 훈련 중 그를 보러 찾아온 레미를 본체만체 하는 것도 아이스하키는 레미의 영역이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는 레미의 죽음을 기점으로 역할을 달리 한다. 그의 죽음에 대해 침묵하던 레오가 감정을 발산하고, 부상과 함께 마음껏 아파하고 눈물 지으며, 고통을 표출할 수 있는 창구가 된다. 레미의 영역 바깥에도 레미의 흔적은 있다. 우정이란 건, 사랑이란 건 어쩌면 그런 것이다.
경기로 인한 부상에 울고 붕대를 감고 다시 푸는 과정은 레미를 떠나보내는 과정과 함께한다.
레미가 사라진 자리에 레미의 엄마, 소피와의 관계가 피어난다. 영화 내내 등장하는 꽃은 이러한 관계의 속성에 대한 은유로도 읽힌다. 레오는 일상 곳곳에 피어 있는 레미의 흔적과 죄책감을 애써 외면한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자신이 레미의 죽음에 원인이 되었을 거라고, 그를 모질게 밀어냈다고 고백한다. 레오의 고백에 차에서 내리기를 명령하며 그를 잠시 밀어내던 소피였지만, 그는 곧 레오를 안아준다. 남아 있는 자들은 떠난 자를 기억할 수밖에 없다. 이 경험에 '함께'라는 조건은 그만큼이나 중요하다.
영화 <클로즈>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관계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우리 모두 일상의 안쪽에 덤덤히 묻어놓았던, 닫아두었던 기억들을 갖고 있다. 그것을 조심스레 꺼내놓고 고백하고 나누려는 소박한 시도가 이 영화로 완성되는 기분이다. 피고 지는 것의 필연성과 애틋함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올해 5월 개봉하는 영화 <클로즈(Close)>의 관람을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