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하루 5분, 명화를 읽는 시간> 리뷰
좋은 예술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이 난감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거대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해진 답이 없다는 속성에 있을 것이다. 답이 없다는 것은 곧 그 무엇도 답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좋은 예술'의 정의는 상이하고, 이를 일깨워준 작품에 대한 경험 역시 모두 다르다. 이는 예술이 솎아내지 않은 가지를 끝없이 내뻗고도 영생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 풍성함은 분명 부정(不定)의 속성에 뿌리 내리고 있다.
누구나 예술에게 '간택된' 운명적인 순간을 경험한 적 있을 것이다. 간만에 휴대폰에서 시선을 거두고 거리를 걷는데, 우연히 눈에 든 벽화 한 점. 그 앞에서 한참을 서 있던 기억이라든지, 카페에서 흘러나온 음악이 하루 종일 간지럽게 맴돌던 기억, 혹은 서점에서 집히는 대로 펼친 책의 글귀 한 줄이 하루를 지배하고 결국 책상 앞에까지 붙고 만 기억 같은 것. 그야말로 날아온 무언가에 '퍽'하고 맞아 '억'하고 빠져들게 된 순간들.
많은 이들이 '좋은 예술'이란 이렇게 한 눈에 봤을 때 느낌이 딱 오는 것이라고 인식한다. 정말 좋은 작품은 그 의미를 하나하나 꿰어 보지 않아도 좋은 지 안다는 것이다. 운명이 가져다주는 마법 같은 환상이 좀처럼 잊기 힘든 탓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시간을 들여 알고 스스로 노력해야만 그 의미가 축적되는 예술의 영역도 분명 존재한다. 그들의 가치 또한 폄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가 산적해 온 의미들은 그 시대를 살지 않은 우리에게는 의지를 갖고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내가 미술관을 방문할 때 꼭 오디오 가이드나 도슨트 관람을 신청하는 이유이다.
대표적인 예시로 현대 미술의 경우가 있는데, 이들은 외견상으로는 그 가치를 파악하기 어려워 종종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언제까지 운명을 기다리고만 살겠는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이상 응당 운명을 개척할 수 있어야 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 사는 우리에게는 배우고 익히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만 비로소 보이는 예술도 의미 있을 테니 말이다. 책 <하루 5분, 명화를 읽는 시간>은 잠시 잊고 있었던 '알아야 더 잘 보이는 예술'에 대해 상기시키는 교양서이다.
회화의 색과 붓터치는 서적으로 치자면 활자와도 같기 때문에 그들의 의미를 공부하는 것은 마치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과 같다. 알수록 눈이 뜨이는 것은 당연하다. 내제적 분석은 물론, 작품을 둘러싼 외적 배경까지 알고 그림을 마주하면 '예술로 인한 운명적인 순간'을 만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그로 인해 삶이 조금은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긍정하는 내 입장에서는 책 <하루 5분, 명화를 읽는 시간>은 분명 이러한 의미에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하루 5분, 명화를 읽는 시간>은 '내 방에서 즐기는 반전 가득한 명화 이야기'라는 부제목이 붙어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미술관 관람의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요즘, 이 책이 작은 선물처럼 다가오는 이유이다. 작품이 가진 고유성, 즉 색이나 질감 등을 살리기 위해 다분히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배려 넘치는 책이기도 하다. 이를 받쳐주는 깔끔한 인쇄 상태와 디자인, 구성이 매력적이다.
책의 콘셉트는 하루에 5분 정도를 투자해 다양한 명화를 감상하고, 그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엿보는 것이다. 이 의도를 고스란히 체험해보기 위해 자기 전 약 5분에서 10분 정도의 시간을 들여 읽어 보았다. 회화 하나에 한 페이지가 채 안 되는 분량의 설명을 더한 구조라 자기 전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았고, 소소하게 지식을 쌓아가는 느낌에 충만해지기도 했다.
미술사에 관심이 많아 관련 서적을 자주 읽곤 하는데, <하루 5분, 명화를 읽는 시간>은 분명 입문자에게 좋은 책이다. 명화를 보는 것과 읽는 것은 분명 다른 문제이고, 후자는 어느 정도의 연습과 의자가 필요하다. 이 책은 그것을 흥미롭게 다져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아쉬운 점이라고 하면 제목, 모델, 관점 등의 테마로 인해 장이 나누어져 있어서 명화 감상에 매우 중요한 요소인 당대의 역사성을 관조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분명 많은 양의 작품을 다루려면 포기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고, 오히려 단편적인 설명만을 곁들인 것이 매력인 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 입문자에게는 어려울 수 있는 사조가 자주 등장하고, 이를 역사적으로 관조할 수 있는 설명이나 각자의 특징은 설명되어 있지 않아 아쉬웠다. 첫 장에 간단한 연표와 함께 책에 소개된 주요 명화들의 시간적 순서를 표기해주었더라면 조금 더 내용이 풍성해질 것 같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 중 하나는 뭉크의 <절규>에 얽힌 이야기였다. 그림의 제목 <절규>는 인물의 상태를 묘사하는 것이 아닌, 절규하는 주변의 자연으로부터 귀를 막고 있는 사람을 묘사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그제야 너무도 익숙했던 이 그림의 배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연을 이루는 역동적인 선, 하늘과 물의 영역이 마구 뒤엉킨 듯한 표현 등은 인물에 묻혀 지워지곤 했었는데 말이다. 자연이 몸을 뒤틀며 지르는 끔찍한 비명마저 들려오는 듯 하니, 하나의 그림이 시대를 건너 여전히 '명화'로 평가 받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이렇게 나는 '내가 개척한 운명' 속에서 새로운 경험의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모르는 이가 없을 법한 아주 유명한 명화들, 이를 테면 위의 '절규'나 '모나리자',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등의 반전 이야기를 서술한다. 이 명화들의 이미지적 익숙함에 경도된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들은 더 이상 지겹도록 봐 온 평면 위의 그림이 아니게 된다. 정지된 것처럼 보였으나 이들은 시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도 끝없이 꿈틀대며 오늘 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러 시사점을 던진다.
회화보다 영상에 익숙한 우리 세대에게 '멈춰진 것의 미학'을 깨닫는 일은 분명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미술관은 아직 어렵기만 하고, 어쩐지 부끄러운 기분에 말하지 못했지만 모두가 명화라고 일컫는 작품의 매력을 실감하지 못했다면 입문용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 아침에 10분을 짬 내어 스트레칭을 하고, 한 끼는 꼭 건강식으로 챙겨 먹는 것이 유행이듯,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하루 5분을 투자해보는 건 어떨까.
원문(아트인사이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3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