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생애를 깊숙이 들여다 볼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은 놀랍게도 향수다. 향수는 기본적으로 고향을 그리워 하는 마음, 즉 직접 경험하고 누렸던 것들을 회상하며 느끼는 시름을 말한다. 경험해본 적도 없는 시공간을 살아온 인물에게서 그것을 느낀다는 건, 그렇기에 모순이다. 그 감정의 원인을 가늠하자면, 그들이 꼭 내 주변의 누군가를 닮아서도, 유년시절의 무언가를 떠올리게 해서도 아니다. 그건 오히려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현실적인 유토피아 처럼 보이기 때문에 느끼는 경외와 맞닿아 있다.
문득 지나간 것들을 그리워하고, 지나간 시절의 선택을 후회하고, 현재를 괴로워하는 인물들을 보며 나는 그들의 그 시름조차 이미 한참 과거의 것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허무하기도, 무력해지기도 한다. 내가 살아가는 시공간 역시, 내 생애 역시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이미 과거완료가 되어버릴 것이다. 내 삶 역시 누군가의 향수어린 시선에 머물게 될까.
영화처럼 극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에게 심심한 나의 삶을 빗대어보며 문득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옥균의 생애를 따라가며, 뮤지컬 <곤 투모로우>를 관람하며 내내 든 생각이다.
뮤지컬 <곤 투모로우>는 갑신정변을 이끌었던 주역, 김옥균의 생애를 다루는 역사극이다. 뮤지컬 하면 떠오르는 것은 화려한 조명과 무대장치, 빛나는 의상과 화장을 덧입은 배우들 정도이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서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 화려함은 이국성을 기반으로 한다. 그렇기에 <곤 투모로우>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뮤지컬이라는 장르는 한국 역사를, 한 조선인의 삶을 어떻게 담아내고 재현할지 궁금해졌다.
<곤 투모로우>는 혁명에 실패하고 망명해 이곳저곳을 떠돌던 김옥균이 여러 미수 사건을 걸쳐 실제로 암살당하는 생애 후반부를 다루고 있다.갑신정변과 이를 삼일천하로 끝낼 수밖에 없었던 실패한 혁명가 김옥균은 역사 교과서에서 익히 봐온 얼굴이었다. 그러나 무대 위의 김옥균은 그 이상의 입체성을 보여주었다. 노래와 춤으로 처절한 정념을 아낌없이 풀어놓는 김옥균을 통해 그의 인간성을 보다 풍부히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정훈과 김옥균, 그리고 고종의 삼각관계(?)에 대한 긴장감 있는 묘사였다. <곤 투모로우>를 한 마디로 묘사하면, '역사는 휘몰아친다'는 것이다. 역사는 폭풍우 같고, 파도 같고, 거대한 눈사태 같다. 세 주연을 비롯한 각 인물들의 작은 선택과 행위가 맞물리며 이 휘몰아치는 역사를 만들어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고종에 의해 김옥균을 암살할 목적으로 떠난 한정훈은 곧 그에게 감화되어 암살을 망설이게 된다. 한정훈이 거사를 미룰 만큼 김옥균은 성숙하고 매력적인 사상가로 묘사된다. 또한 그는 고종에게도 잊을 수 없는 얼굴이다. 자아를 지우고 허수아비가 될 것을 요구당한 고종은, 과거 자신의 기둥이 되어주었던 김옥균의 암살을 지시하게 되고 이야기는 파국으로 빠져든다.
김옥균이 꿈 꾼 것은 위로부터의 혁명이었다. 그는 일찍이 장원 급제한 인제였고, 젊은 나이에 다양한 요직을 맡아 나랏일을 돌봐왔다. 그 자신이 기득권층이었지만 기득권 층의 이득만을 노린 개혁을 도모한 것은 아니었다. 기득권층인 자신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이유는 아마 실질적이고 즉각적인 개혁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에게 붙은 실패한 혁명가라는 오명은 그를 무력하게 했지만, 그 작은 꿈은 젊은 날 자신을 닮은 청년 한정훈에 의해 다시 조금씩 빛나기 시작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청국으로 떠나는 갑판에서 한정훈과 김옥균이 대화하는 장면이었다. 정말 배 앞머리처럼 꾸며진 무대장치와 푸른 파도, 점차 가까워지는 육지의 이미지는 노도처럼 넘실대는 그들의 정서를 생생히 전해주었다. 한정훈이 파리에서 배워 온 춤을 알려주고, 둘이 그것을 함께 추는 장면은 처음으로 인간 한정훈, 김옥균을 마주한 느낌을 자아냈다. 운명이 갈라놓은 사이가 아니었다면 그들이 손을 맞잡고 역사에 어떤 반환점을 찍었을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문외한인 분야라 그런지, 뮤지컬스러운 문법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꽤나 소요되었다. 인터미션 이전까지는 다소 집중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인터미션 이후 장면부터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는 화려한 장면들이 다시금 '휘몰아치'는 덕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이건 아직 뮤지컬 관람객으로서의 내 태도가 여물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감상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곤 투모로우>는 눈과 귀가 즐거운 작품이었다. 배우들의 호연은 당연하고, 특히 무대 장치를 현명하게 사용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무대와 관객 사이에 얇고 투명한 스크린을 내려 다양한 영상 효과를 활용한 것은 작품 몰입에 큰 도움을 주었다. 앙상블은 매 장면마다 다른 시공간과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관객을 과거 조선으로, 외딴 섬으로, 파리로, 일본으로 생생히 이끌었다. 막이 내리고 공연장을 나설 때, 무엇보다 귓가에 맴도는 것은 그들의 꿈 같은 합창이었다.
김옥균의 생애는 내게 분명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굳은 신념을 갖고 무언가를 바꿔 보려는 사람들, 그러나 현실의 벽에 부딪혀 무력하게 쓰러지고 마는 사람들, 고립되고 외면 당해 존재를 숨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차례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건 비단 어떤 위대한 사상가의 외딴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삶이란 것이 꼭 삼일천하 같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아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을 때 항시 꺾이기를 반복하는 삶들이 역사를 이루고 현재의 우리를 이뤄왔다. 그 삼일천하에 이끌린 한정훈 같은 누군가가, 그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뒤따라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선택을, 행동을 멈출 수는 없는 일이다.
뮤지컬 <곤 투모로우>는 10월 22일,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된다. 삼연을 맞이할 정도로 이미 팬층이 두꺼운 작품이라고 들었다. 한국의 정서를 듬뿍 담아낸 뮤지컬인 만큼, 꼭 놓치지 않고 관람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