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평범하게 살고 싶은 소망들을 자주 마주하는 듯싶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평범함의 기준이 모두 제각각이라는 것, 그리고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을 요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 심어져 있는 정상성 신화가 평범함의 기준을 드높이는 동시에, 그것의 답답함을 아는 젊은 세대의 경우 각자 평범함의 개별화를 이뤄내고 있다고도 느낀다.
평범함은 신화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나 역시도 나의 보통됨을 점검해보게 될 때가 있다. 이 나이에 이 정도의 경험은 해 봐야 할 텐데, 이 나이면 이 정도의 성취는 해야 할 텐데 같은 생각은 SNS로 가늘게 이어진 인연들의 소식으로부터 끝없이 흘러나온다. 이것이 나를 잡아 먹을 정도로 해로워질 때는 어플을 지우고, 밍숭한 맛이 매력인 내 생활로 침잠하는 것이 최선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주어진 일을 해가면 스스로에게 보통의 나를 돌려준다. 그것은 나만의 '보통'이며, 어떠한 기준선에 맞춰 정의내린 것이 아니다. 그 나만의 보통을 지키는 게 내 과업이 되었다.
영화 <보통의 카스미>는 연애와 사랑에 관심이 없는 카스미를 주인공으로, '보통'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신중히 질문하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반가운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보통의 카스미>를 관람할 가치가 충분했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미우라 토코의 첫 단독 주연작이기 때문이다. 역시나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배우였다. 보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워진 표정의 미우라 코토의 연기가 관람 내내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이 작품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살면서 연애 감정을 느껴본 적도, 성적 끌림을 경험한 적도 없는 카스미를 주인공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즉, 지금껏 충분히 가시화되지 않았던 에이섹슈얼 여성을 전면적으로 내세웠다는 점에 있다. 그렇다고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혼란해하는 내용도, 이에 대한 내외적 갈등을 주된 묘사로 삼은 것도 아니다.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니지만, 단순히 연애할 정신이 없어서 유예하고 있는 상황도 아니다. '누군가에게 이상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스스로를 에이섹슈얼로 명확히 정의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카스미이다. 그는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잘 안다. <보통의 카스미>가 취한 시선은 그렇기에 특별해진다.
카스미는 꽤나 피곤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스스로를 잘 정립하고 있는 카스미의 호수는 잔잔할 것을 허락받지 못한다. 여기저기에서 날아온 돌이 그의 일상을 흔든다. 엄마는 어떻게든 카스미를 결혼시키기 위해 혈안이고, 멋대로 맞선을 잡아오는가 하면, 여동생은 카스미가 레즈비언이기 때문에 연애와 결혼에 관심 없는 채를 한다고 오해하고, 뜻밖의 고백을 거절하면서 소중한 친구를 잃기도 한다. 아무리 솔직한 말로 고백을 거절해도("난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아."), 꼭 그런 거짓말까지 해야 겠냐는 불신의 답이 돌아온다. 덕분에 카스미는 바다를 바라보며 모래사장에 멍하니 앉아있는 순간이 가장 편안하다 느낀다. 카스미를 보통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말없는 파도 뿐이다.
그러던 중 나타난 중학교 동창 마호는 이름 그대로 마법 같은 인연이 되어준다. 마호의 도움으로 카스미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조금씩 익숙해져 간다. 유치원 교사로 취직한 카스미가 아이들 앞에서 보여줄 그림 연극 <신데렐라>를 자신만의 버전으로 각색하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카스미표 신데렐라는 모든 여성의 꿈과 목표가 왕자와 결혼하는 것으로 동질화된 상황을 이해하지 못 한다. 그리고 자신의 외모만을 보고 청혼하는 왕자에게 "난 당신과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하고 일명 사이다 멘트를 날려 준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카스미의 그림 연극을 보던 학부모와 선거 운동을 위해 방문한 정치인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해야 했다. 그는 '다양성도 좋지만, 일단 기본적인 것과 옳은 것을 가르친 이후에 다양성을 말하는 게 옳은 수순 아니겠냐'고 카스미를 꾸짖는다. 다양성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기본적이고 옳은 것이 되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을 분노케 하는 말이다. 카스미가 주변인들과 관계 맺고, 때로는 부딪히는 상황들은 이 녹록지 않은 현실을 잘 보여준다.
카스미는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을 뿐, 마호를 비롯한 친구를, 자신이 돌보는 아이들을,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을 충분히 사랑할 줄 아는 다정한 마음결의 소유자이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자기 자신을 사랑할 결심을 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길 줄 안다. 마호를 만난 이후, 보다 적극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카스미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인물인지 영화의 따뜻한 시선이 말해준다.
극중에서 카스미는 톰 크루즈가 출연한 영화 중 <우주전쟁>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다. 다른 영화들에서는 무언가를 향해 달리는 톰 크루즈가, <우주전쟁>에서 만큼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달리기 때문이다. 그것이 꼭 자신의 모습과 닮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카스미는 의식적으로 자신이 언제나 도망쳐왔다고 느꼈지만, 나는 카스미가 '보통이 아닌(것 같은)' 자신을 '보통들의 세계'로부터 의도적으로 분리시켜왔다고, 그것이 카스미만의 배려였다고 느꼈다.
그러나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새로 들어온 교사가 자신과 같은 사람임을 깨달은 카스미는 또 한 번 변곡점을 마주한다. 정적이던 카메라는 카스미의 뜀박질을 따라 함께 위 아래로 가감없이 흔들린다. 용감한 영웅 같은 '보통의 톰 크루즈'처럼 달리게 된 카스미는 활짝 웃는다. 그 끝에서 마침내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카스미만의 보통을 지닌, 보통의 카스미를.
나 역시 연애 감정이나 성적 끌림에 둔한 사람이다. 많은 이들이 품고 있을 녹음 짙은 첫사랑의 기억이나, 아린 짝사랑의 아픔 역시 그다지 떠오르는 게 없다. 나는 언제나 타인보다 내가 궁금했고, 나에 대한 궁금증을 줄여가지 않는 이상 타인에 침잠하기에는 이르다고 여겼던 것 같다. 이런 나도 분명 나의 보통됨을 의심해본 적이 수백 번이다. 그러나 내가 그 무엇도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 나 역시 '보통의 나'를 어엿한 나로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카스미의 등장이, 화내고 구르고 소리치면서도 자신의 보통됨을 외칠 수 있게 된 그녀의 성장이 너무도 반가웠다.
이런 이야기가 자꾸만 나왔으면 좋겠다. 영화 <보통의 카스미>를 꼭 극장에서 만나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