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 말 좀 들어줘> 리뷰
개인적인 감상일지 모르지만 최근 대중들이 ‘나’를 대입해 볼 수 있는, ‘나’를 대변한다고 느끼는 영화 속 캐릭터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런 목마름을 시원하게 해결해준 작품을 오랜만에 만났다. 캐릭터 작법의 거장이라 불리는 마이크 리는 80대에 들어선 노장 감독의 저력을 보여주겠다는 듯 그 장점을 효과적으로 밀어 붙인다. 바로 나이와 성별, 국적을 넘어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작품 <내 말 좀 들어줘>를 통해서이다. 우리는 모두 일정한 관계 속에 놓인, 그러면서도 동시에 개체라는 섬에 갇힌 외로운 존재라는 점에서 말이다.
주인공 ‘팬지’는 언제나 두통을 호소하는 예민하고 날 선 인물이다. 마트, 병원, 길거리, 주차장 같은 일상적인 공간에서도 팬지는 끊임없이 말싸움을 일으킨다. 문제는 필터링이라고는 찾아도 볼 수 없는 그의 언행이다. 지나친 피해의식 때문인지 팬지는 ‘물건 찾는 걸 도와드릴까요?’, ‘진료 봐드릴 테니 누우시겠어요?’ 등의 일상적인 말에도 '내가 그런 것도 못 하는 바보천치로 보이냐'는 등의 공격적인 반응을 보인다.
가족들과의 관계도 나을 건 없다. 아들 모세스와 남편 커틀리는 팬지가 늘어놓는 끝없는 불평불만과 잔소리가 익숙하다는 듯, 굳은 표정으로 그저 침묵을 지킬 뿐이다. 그런 팬지를 유일하게 보듬는 건 여동생 ‘샨텔’뿐이다. 다정하고 유쾌한 성정의 샨텔은 직장인 미용실에서 손님들과, 가정에서는 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샨텔의 딸들 역시 가족에게만큼은 숨기는 작은 비밀과 실수들을 안고 있기도 하다.
영화 후반부, 샨텔과 팬지의 차이를 갈라놓은 원인이 조금 드러난다. 어머니 날을 맞아 어머니 묘지에 찾아간 자매지만, 팬지는 간단한 헌화조차 거부한다. 자신을 나무라는 샨텔에게 팬지는 어머니가 너만 아꼈고 자신에게는 언제나 가혹했다며 오랜 트라우마를 쏟아낸다. 그 영향으로 자신은 인생의 모퉁이마다 바보같은 선택을 해야만 했고, 그것이 지금의 비극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이다.
영화 <내 말 좀 들어줘>의 원제는 ‘Hard Truths’이다. 풀어서 설명하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냉혹한 진실을 뜻하는 말이다. 한국 개봉을 위해 ‘내 말 좀 들어줘’로 제목을 바꾼 것은 사실 꽤 독특한 선택이다. 어찌 보면 친절하고 논리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말을 진심으로 경청했을 때 우리는 냉혹한 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는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이를 수용하며 편안해지는 단계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되기 때문이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해보겠다.
우선 영화가 보여주는 ‘냉혹한 진실’은 무엇일지 생각해보자. 성격들은 제각각이지만,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냉혹한 진실을 외면하거나 모르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팬지는 세상은 생각보다 나에게 더 우호적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그렇다. 이상해 보이지만 팬지에게는 수용하기 어려운 냉혹한 얘기이다.), 샨텔은 자신이 누군가의 트라우마일 수 있다는 사실을, 커틀리는 자신이 징벌처럼 아내를 그저 견디기만 하는 동안 아내가 자기 자신과 주변 세상을 좀먹고 있다는 사실, 모세스는 언제까지나 삶의 모든 면을 외면한 채 자신을 방임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외면 중이다.
물론 인물들에게는 환경적인 압박과 트라우마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들의 결점이 오직 그들의 잘못으로 귀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어쨌거나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하나. 바로 ‘말 좀 들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진심이 들릴 때까지 때로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샨텔이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처음으로 팬지의 진심에 다가선 것처럼 말이다. 샨텔은 누군가의 공백과 침묵까지 들어주며 기다리고, 커틀리는 징벌로써 끔찍한 시간을 견디기 보다 아내의 진의를 집중해 들어보고, 모제스는 귀를 막은 헤드셋을 벗고 세상의 소리를 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팬지는 무엇보다 자신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나의 내면에 다가서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타인과의 관계를 통하는 것이다.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나를 보고, 또 사고하고 돌봐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의 제목 ‘내 말 좀 들어줘’는 팬지의 외침인 동시에,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담은 말을 들어 달라는 그 주변인들의 애원이기도 하다. 팬지는 타인이라는 실을 엮어 자신을 듣는 수밖에 없다. 조금 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면, 어쩌면 이런 자기 중심적인 목적 없이 순수히 타인만을 들어주는 인간으로 성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화의 결말 역시 인상적이다. 커틀리는 일 하다 그만 허리를 크게 다치게 된다. 동료가 그를 부축해 집에 데려오고, 윗층 침실로 올라가 팬지를 부른다. 갑자기 찾아온 동료에 놀라 또 거하게 화를 낸 팬지는 커틀리의 소식을 듣고도 복잡한 표정으로 침실을 지킨다. 과연 팬지가 커틀리를 도우러 내려갈지, 그 작은 호의의 표시로 ‘들어줌’에 가까워질 수 있을지 기대된다.
반면, 영화 내내 정처없이 거리를 떠돌던 모제스는 광장에 앉아 있다 문득 자신에게 간식을 건네는 친구를 만난다. 어색하게 간식을 건네 받으며 헤드폰을 내린 모제스는 무언가 더듬더듬 말한다. 세상을 들어주기 시작한 것이다. 젊은 모제스의 변화를 통해 우리는 일말의 희망을 본다. 관계가 우리를 들어주는 인간, 더 진화한 인간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내 말 좀 들어줘>는 느긋한 톤 앤 매너 속에 질 높은 밀도를 채운 인상적인 작품이다. 꽉 채운 대사가 피곤할 때쯤, 가벼운 위트와 느릿한 시선, 인상적인 빛의 사용으로 관객을 환기하는 노련함도 지녔다. 놓치지 말고 극장에서 만나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