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대디로 산다는 것(125)

아빠가 좋아요? 할아버지가 좋아요?

by 시우

아이가 감기에 걸렸다, 반 친구가 감기에 걸렸는데 거기서 다들 옮아서 콧물을 훌쩍거리고 있다 이비인후과는 지금 성수기다 아침 일찍 병원에 가지 않으면 한시간 넘게 기다려야 해서 힘들어 보이는 아이를 깨워 대충 씻기고 안아 들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이미 병원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다섯 명의 의사 선생님이 계시는데 각 대기인원이 20여 명이다 진료신청을 해두고 아이 손을 잡고 근처 카페로 간다


"20명이면 대충 삼사십분 정도 걸리니까 카페에서 따듯한 거 한잔 마시면서 기다려봐요."


"아이스티 먹고 싶어요."


"오늘은 안 돼요 감기 걸렸는데 찬 거 먹으면 더 안 좋으니까 오늘은 달콤한 차 한번 먹어봐요."


얼어 죽어도 시원한 걸 좋아하는 공주님이지만 이번은 아빠가 양보를 못한다 카페에 들어가 따듯한 유자차 한잔을 시킨다 달달하고 새콤하니까 아이도 좋아할 거라는 생각을 한다 유자차를 한잔 시키고 앉아있는데 아이의 전화가 울린다 나는 주말에 전화 한 통 안 와서 시계로 쓰고 있는 핸드폰인데...



"할아버지?"



아이가 전화를 받는다 전화 너머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강아지 오늘 쉬는 날인데 뭐해요?"


"아빠랑 커피 마시러 왔어요."


"아침부터?"


"병원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기다리느라 카페 왔어요."



뭘 만들길래 저렇게 집중했을까?



아이는 조잘조잘 할어버지랑 통화를 한다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손녀랑 통화해서 기분이 좋으신가 보다



"아빠한테 이야기해서 오늘 놀러 갈게요."


"그래 점심 먹고 올 거니?"


"아빠한테 물어볼게요."


수화기를 나에게 건넨다 빨래를 돌려놓고 나와서 병원 끝나고 바로 갈 수가 없다 점심 먹고 나서 데려가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는다


"할아버지가 좋아요 아빠가 좋아요?"


괜히 심술이 나서 물어본다 아빠는 못하게 하는 게 많으니까 왠지 할아버지를 더 좋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이는 고개를 슬며시 돌리며 대답한다


"아이 둘 다 좋아요 아빠랑 할아버지 둘 다."


"거짓말! 할아버지가 더 좋잖아요 장난감도 사주고 싫어하는 소리 하지도 않고."


"아니에요! 둘 다 좋아요."



아이는 내 입을 막는다 그리고 그때 타이밍 좋게 유자차가 나왔다, 티스푼으로 살살 저어서 설탕들을 잘 녹여본다, 어느 정도 녹은 듯싶자 찬물을 살짝 부어 온도를 낮춘다 내가 한 모금 마셔보고 아이 앞으로 잔을 옮겨주자 아이가 티스푼을 들어 살짝 떠서 마셔본다



"어때요?"


"따듯하고, 달콤해요."


"천천히 마셔요 아직 우리 차례까지 좀 남았을 거예요."



달콤한 맛에 반했는지 티 스푼으로 계속 떠먹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곰곰이 생각해 본다, 잔소리하는 아빠 옆보다 어쩌면 장난감도 잘 사주고 잔소리도 안 하는 할아버지가 더 좋을 텐데.


할아버지 집에 가도 저녁밥만 먹으면 아빠한테 가야 한다고 전화해 달라고 할아버지한테 닥달한다고 들었다 아빠한테 이야기해 줄 테니 자고 가라고 해도 아빠 혼자 있어서 안된다고 굳이 가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눈가가 시큰했는지 모르겠다 아빠의 잔소리가 사랑으로 느껴지진 않을 텐데 그래도 아빠가 자기를 많이 좋아하는걸 잘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이제 자기 옆에는 아빠 밖에 없다는 걸 알아서 그런 걸까?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티스푼으로 차를 마시는 것에 열중이다 나도 모르게 한마디 툭 던진다


"그래가지고 언제 다 먹고 병원 갈까요? 다 안 식었어요?"


"이렇게 먹는 게 더 맛있는 것 같단 말이에요."


"그래요 그래 마음대로 드십시오 공주님."


오늘은 좀 더 느긋해져 보자, 마음의 안정을 찾으면서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는 연습을 한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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