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대디로 산다는 것(23)

답변서 제출

by 시우

답변서 제출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서 마음이 심란하다, 나는 결국 변호사님을 선임하여 일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아내에게 소 취하하고 협의하자고 내 협의조건을 줬는데 아침까지 읽지 않는다 장인에게도 문자를 보내 후에 서로 얼굴 붉히지 마시자고 아내에게 문자 보냈으니 같이 확인하시라고 문자를 금방 읽긴 하셨는데 아내가 반응이 없는 것 보니 부모이신 분들이 관심이 너무 없으신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아내가 처가에 가는걸 나는 매우 싫어했다, 부모니까 말리지 못하겠지만 거기 다녀오면 아내는 며칠씩 이상했다 다른 남편들 이야기를 했다 장모님이 어디 누구 남편은 이번 명절에 뭐 해왔다더라, 누구는 이번에 어디로 이사했다더라, 회사가 좋아서 뭐가 얼마나 나왔다더라, 물론 내가 다른 집 남편들보다 무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들과 비교하는 삶이 얼마나 불행 한지는 잘 알고 있다


내가 아무리 잘하고 한만큼 벌어도 나보다 더 잘 버는 사람은 언제나 더 많았다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시험을 봐도 분명 나보다 잘 보는 사람도 많은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대학생 때부터 나를 기준으로 삼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돈을 버는 것도 작년보다 올해가 더 많이 벌게 된 걸 감사해했고, 퇴근하여 자격증 공부도 조금씩 하며 1년에 하나씩 따니 그거 나름도 성취감이 있어서 좋았다 애초에 비교라는 게 좋지 않다는 걸 살아오면서 알았던 것 같다


아내는 장모님의 말이라면 다 들었다, 옳든 아니든 언제나 자기가 힘들 때 자기편이 되어주는 엄마는 든든한 방어막이었다. 잘못한 일은 집고 넘어가야 발전이 있을 텐데 그런 건 없다, 받을 수 있는 것에는 입을 다물고 고맙단 소리를 하지 않는다, 하기 싫은 것은 도망치거나 회피한다, 책임을 물으면 엄마 뒤로 숨어 버린다, 첫 번째 가출도 그렇고 두 번째 가출도 그렇고 아내와 통화를 하려고 하면 옆에서 장모님의 목소리도 같이 들린다, 내가 뭔가를 말하면 옆에서 장모님이 이렇게 말해 뭐라고 그러냐? 그리고 그 소리가 수화기로 들리자 나도 모르게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당신은 당신 생각이 없어서 장모님이 불러준 대로 읊어?"


'끊어. 끊어 얼른.'


장모님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린다 한숨이 나온다 나이가 30대 중반의 여성이 아직도 본인 생각을 본인의 기준을 정하지 못하고 남의 말에 휘둘린다, 본인의 기준을 만들지 못하고 엄마에게 물어본다 엄마가 하는 말이 오직 자신의 기준이 된다 당신의 엄마는 당신 인생을 책임져 주지 못한다 그걸 왜 모르는 걸까


1653045323423.jpg 아내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


나도 이 이혼판에 뛰어들면서 서로 흙탕물을 튀기며 싸우게 되겠고 내가 기다린 4개월의 시간은 이렇게 싸우기 싫었었기 때문에 변호사님과 상담사님이 먼저 진행하자는 말도 좀 기다려보자는 말로 미루고 미루며 아내 마음에 변화가 오길 바랬던 건 나만의 희망사항이었던 것 같다 비어있던 약정서 마지막 란에 이름과 사인을 하고 봉투에 봉한다 이렇게 까지 하고 싶진 않았던 몇 가지 부분도 추가한다 덜 상처 입으려고 마지막까지 기다렸던 것이 결국에는 더 상처받게 되겠구나 싶다


부모님이 오셔서 그냥 추가적인 부분은 안 하셨으면 하신다고 하지만 내가 그랬다 그럼 결국에는 본인들 잘못에 대해서는 느끼는 것이 없을 거라고 그래도 한 장 받아보고 불똥 튀어보면 그 뒤에는 좀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것 아니겠냐고 대답했다 그리고 아내에 대해서도 아이 생각을 해보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음에도 여태껏 한 마디도 안 한다는 게 너무 책임감 없는 것 같고 이혼한 후에 얼마나 먼 미래까지 생각해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 양육비 지급하면서 책임지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게 옳다고 말씀드렸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문제였는지 잘 모르겠다.


최악을 피하려고 기다렸던 게 최악의 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불면증이 도진다. 새벽 2시~3시 악몽을 꾸지도 않는데 깨서 다시 잠들 수가 없다, 옆에 누워있는 아이를 본다 아무 걱정 없는 듯 자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고 발로 찬 이불을 다시 한번 덮어준다

겉옷을 하나 더 걸쳐 입고 거실로 나온다 불 꺼진 거실에 홀로 앉아 멍하게 있게 된다 한 사람의 남편으로 한 아이의 아빠로 벽을 마주칠 때마다 뛰어넘고 부수고 앞으로 가는 것만 생각하며 살아왔다, 젊은 나이지만 뒤돌아보면 다시는 못 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했던 것이고, 같이 좀 살아보자고 했던 것이고, 제발 좀 도와달라고 했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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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찌 밥먹이기


이제 법원을 몇 번 가야 할 일만 남았다, 죄가 있다면 받게 될 것이고 죄가 없다면 별일 없이 지나가지 않겠는가 나는 이 상황을 지내오며 가슴을 얼마나 졸였는지 모른다 아내를 배려해 혹시나 내가 사람으로서 어떤 잘못한 것들에 대하여 모르고 지나갔거나, 혹은 내가 소위 말하는 나쁜 사람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 속에 지내온 시간들이 결국엔 상대방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는 것 을 느꼈기에 참으로 허탈할 뿐이다


행복하고 싶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상처에서 벗어나고 싶다 나약해지는 정신만큼 나를 컨틀롤 하기 힘든 건 없기에 더 단단해지고 싶지만 나도 인간이다 그러기에 때로는 아프다, 힘들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율리우스 시저의 말처럼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이제는 시간만이 답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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