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기억(1)

도서관

by 시우

외근 나오면서 지나가는 길이 낯이 익어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8년 인가 9년전쯤 너랑 같이 다녔던 도서관 길이 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던 너, 나는 회사에서 외근을 나올 때면 항상 너에게 전화를 해서 점심 같이 먹자고 불러내곤 했었다


시골이 너희 집이라 집으로 내려가면 일자리도 별로 없고, 네가 그렇게 가버리는 게 왠지 모르게 너무 아쉬워 억지로 도시 생활을 권유를 했었다.


"거기 내려가 봐야 일자리가 구해지나? 그냥 여기서 자취라도 하면서 일 알아보는 게 낫지 않겠나?"


"내가 무슨 돈이 있어서 여기 있는데, 부모님이 내려와서 과수원 농사일이나 도우면서 공부하라 하시는데 고시원도 계약기간 끝났어."


"그건 걱정 말고 이력서 쓰던지 공부를 하던지 어찌 되었든 일만 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 취직해서 갚아라"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그녀의 얼굴에 물음표가 가득했지만 차마 네가 집에 가는 게 싫어서 라는 낯 뜨거운 말은 하지 못하겠더라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28만 원짜리 방을 구했다 꼼꼼한 척 집주인 아주머니에게 관리비 포함이지요?라고 묻자 아주머니가 웃는다


"물세 전기세 모두 포함이니까 걱정 말고, 여자 친구 집 구하는 거야?"


"네 저는 근처 살고 종종 보러 올 거예요."


"그러다가 나중에 보면 꼭 같이 살고 있더라, 아직 어린 거 같은데 조심하고."


알듯 말듯한 얼굴 표정을 뒤로 한채 아주머니는 열쇠를 쥐어주고 5층으로 올라가신다


이제 그녀의 방이 될 조그마한 5평짜리 방을 쓸고 닦는다, 말이 풀옵션이지 에어컨도 없고 냉장고도 작은 것 하나뿐이다 노란 장판에 밋밋한 흰색 벽지가 맘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녀가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는 매우 기뻤다.


"미안하게 왜 이런데, 결혼한 거도 아닌데 이렇게 받아도 되나?"


"미안하면 빨리 취직해서 갚으면 되지, "


아니면 결혼하던가, 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다가 삼켜진다. 대학 졸업을 6개월 정도 남겨둔 나는 차마 거기까지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 뒤로 월세를 내주려고 일자리를 구했다, 최저 임금 수준이지만 근무 강도도 낮은 편이고, 무엇보다 외근이 많아서 종종 그녀의 모습을 보러 오기가 좋았다. 회사에서 차도 줘서 내 일만 마무리되면 퇴근해서도 차를 사용할 수 있었다.


외근을 나와서 종종 혼자 밥 먹기 싫으면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뭐해? 도서관이야?"


"응 공부하지, 외근 나왔어?"


"어 밥 먹을래?"


"그래 좋아."


서둘러서 도서관으로 차를 몰고 간다, 그녀는 내가 올 시간에 맞춰 도서관 앞에서 나에게 손을 흔든다. 가난했지만 즐겁고 행복했던 것 같다, 5천 원짜리 도서관 도시락을 먹고, 편의점에서 커피 두 개를 사들고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서로 웃던 기억, 따스한 햇살이 비추던 그날, 너의 웃는 표정이 사진처럼 머릿속에 아직도 박혀있다.


'빵빵.'


뒷 차의 클랙슨 소리에 물속에서 건져지듯 현실로 돌아온다. 모처럼의 추억에 가슴 한편이 아려오는 듯하다


그녀는 지금 없다, 그때 내가 내준 월세를 갚아 주겠다던, 취직해서 맛있는 거 사주겠다는 그녀는 멀리 떠났다, 다시 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그녀를 닮은 아이만이 내 곁에 남아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어떤 글을 하나 읽었다, 그 사람과 헤어짐이 아쉬운 건 그 사람과의 아름다웠던 추억이 남겨져 있어서 놓기 힘든 거라고, 친구도 비슷한 말을 했었는데 그 말이 딱 맞는 듯하다. 우린 분명 싸우고 밀어내고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그랬음에도, 아주 오래전 그날의 기억 한 조각 때문에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한쪽에 대 놓고 창문을 살며시 내려 본다, 그날 같은 햇살이 내 얼굴을 포근하게 덮지만, 마냥 따스하지 많은 않다.


생각이 참 많아지는 하루가 될 듯싶다.

오늘도 그날의 추억을 안주 삼아 술을 한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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