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기억(2)

어린이날의 추억

by 시우

본 글은 제가 활동하는 카페에도 올라가있는 글입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30여년 전쯤 지금의 나처럼 아버지도 나를 홀로 키우셨다, 서울 국군 통합병원(그 당시는 영등포에 있었던 것 같다) 근처에 2층짜리 단독주택의 2층에 세들어서 살았던 기억이 나는데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나를 맡기고 아침 일찍 신림까지 지하철을 타고 일을 다니시고 저녁 늦게 들어오셨었다, 아침 일찍 나가시고 저녁 늦게 들어오셔서 어차피 얼굴 한번 보는 게 힘들었지만, 저녁에 들어오셔서 자고 있던 내 이마를 차가워진 손으로 쓰다듬어 주신 기분 좋았던 느낌만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어린이날이 뭔지도 몰랐던 가난한 시절, 일을 나가시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집 앞에 있는 구멍가게로 손을 이끄신다, 장난감이란 걸 사기에도 돈이 부족했던지 할머니는 주머니 속 쌈짓돈을 꺼내 초코파이 두 상자를 사주신다, 내가 과자를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박스를 뜯어보면 고무줄로 날리는 비행기가 한 개씩 운 좋으면 두 개씩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나의 유일한 어린이날 선물이었다, 초코파이는 동내 아이들과 나눠먹고 차도 별로 다니지 않았던 골목길에서 비행기를 고무줄로 걸어 날리는 재미로 하루를 보냈던 날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안쓰럽고 불쌍한 날이었는데 30여년이 지난 지금 내 딸에게 똑같은 상황을 주고 있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 아내가 집을 나갔고 아내 없이 맞는 첫 번째 어린이날이다, 3개월 동안 아이 안부조차 물어보지 않는 게 과연 엄마로서 할 짓인지 참 어이없고 황당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혹여 니 탓 아니냐며 오히려 나를 다그친다, 차라리 내 탓이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다 그랬다면 아내를 이해라도 하겠다 싶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뭐가 그리 맘에 안 드셔서 이렇게 까지 하는지가 너무 궁금하다


'3개월 넘게 나가 있는 동안 아이 한 번도 안 찾고 너도 참 대단하다.'


그 카톡을 보낸 지가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답장은 없다, 말도 안 되는 소장에 답변서를 제출하고 기일이 잡히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아이는 그냥 엄마가 할머니 집에서 지내는 줄 알고 있다 언젠가는 이야기해줘야 하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 나는 벌써 어린이날 선물을 준비해 뒀다, 아이의 할머니(새어머니)와 할아버지는 지난주에 오셔서 같이 손을 잡고 장난감 가게에 다녀오셨고 나는 봄을 맞이하여 예쁜 신발 한 켤레와, 아이가 좋아하는 슬라임 세트를 준비했다 분명 어린 시절의 나보다는 훨씬 좋은 선물이긴 하지만 나는 언제나 아이 앞에선 하염없이 부족한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양은 하얀것 아니였어???



유치원에서도 회사에서도 아이를 혼자 키우는 사람이라는 편견 어린 소리를 듣기 싫어서 무던히 노력한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부모님과, 이혼에 관련된 몇몇 지인 외에는 아무도 눈치 채지도 못했다, 아이도 이혼가정의 그늘이라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밝게 잘 자라고 있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소릴 하는 사람들이 태반이 넘지만, (심지어 나의 새어머니조차) '아 너는 아빠 혼자 키우는 집 애지?' 라는 소리를 듣게 하기 싫어서라도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아이 밥도 잘해서 먹이고, 반찬도 만들어 먹이고, 같이 쿠키도 굽고, 씻겨주고, 공부도 같이하고, 책도 읽어주고, 손잡고 산책을 나가고, 아이가 말하면 언제나 잘 들어주려고 노력하고, 언제나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다


아버지는 나이가 드셔서 인지 죄책감이 많으신 것 같다, 내가 이혼한 게 본인이 했던 것처럼 같은 전철을 밟게 하는 것 같다고 사실 이혼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이혼하는 확률이 높다는 통계도 있지만 내가 이혼한 건 아버지 탓이 아니다, 나와 아내 잘못인 거지, 어린 치기에 세상 풍파 다 이겨낼 듯 한 결혼 이었지만 현실과 이상은 역시 너무 달랐던 것 같다


"공주님 선물 맘에 들어요?"


"네! 감사합니다."


어린이날 선물



선물을 받고 좋아하는 아이를 꽉 안아준다 볼에 뽀뽀도 해준다 품 안에서 꺄르륵 거리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세상 우울한 것들 모두 사라지고 행복해진다 나의 어린이날은 왠지 안쓰럽고 슬펐지만, 내 아이의 어린이날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날로 만들어 주리라 다짐한다, 가정마다 각기 다른 이혼의 모습이 있고 가지각색의 사연들로 홀로 아이를 키우는 집들이 많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게 인생살이에 불필요한 일은 아니지만 아이의 입장에선 누가 잘못했던지 간에 부모의 잘못으로 인해 불행해진다면 과연 우리 부모들은 어떻게 얼굴을 들고 살아야 하겠는가, 아이의 투정에도 '네 아빠만 아니었으면.' '네 엄마만 아니었으면.'이라는 핑계를 대기보다는


'우리 공주 (왕자)님 힘들었어? 이리 와 안아줄게 그래도 아빠가(엄마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라고 이번 어린이날에는 한번 보듬어 주는 게 어떨까란 생각을 해본다


나는 젊은 시절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 아이를 키우면서 아 이런 이유로도 세상을 사는 힘이 되는구나 싶은 것도 느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이야 예쁘고 말 잘 듣고 그래서 그러지 좀 크면 다르다고 우스갯소리로(?)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국 그것마저도 사랑하는 게 부모가 아닌가 싶다, 우리 부모님들처럼 말이다


앞으로의 어린이날은 아빠와 딸 둘의 시간이 되겠지만 남 탓이 되지 않게, 남 탓으로 돌리려고 하지 않게 노력해야겠다, 내가 다니는 성당에서 하는 말처럼 모든 게 내 탓이고 내 탓이기에 나와 아이의 상처를 보듬고 살아가야겠다. 그리고 저녁에 잠들기 전에 아이 손을 잡고 물어봐야겠다 오늘이 어떤 어린이날이었는지, 아이의 조그맣고 앵두 같은 입에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 었다고 해주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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