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님의 우선순위
며칠 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이가 베개를 들고 옆으로 온다 그날따라 몸이 안 좋긴 했었는데 아이의 표정을 보아하니 꼭 아빠 옆에서 자야겠다는 의지가 보이길래 못 이기는 척 이불을 펴준다 손님이라도 오면 주려고 사둔 이불을 이렇게 쓰게 될 줄이야, 집에 오자마자 세탁을 해서 햇볕에 잘 말려서인지 따듯한 냄새가 올라온다 이불을 깔아주고 아이를 눕히고 토닥토닥해 준다
"공주 오늘은 무슨 일 때문에 아빠랑 자려고 하시는 걸까?"
"그냥요 내일 쉬는 날이니까 오늘은 같이 자요."
취침등을 켜두려다가 공주가 잠들지 못할까 그냥 불을 끄고 누워 토닥토닥 가슴을 두드려 준다 밖에서는 찬바람이 부는지 휘잉~ 하는 겨울바람 소리가 매섭게 들린다
얼마나 토닥토닥을 해줬을까? 아이가 살짝 내쪽으로 돌아 누우면서 입을 땐 다
"아빠 나는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요 1등이야."
"와 진짜? 아빠도 공주가 1등이야."
"그리고 엄마가 2등이야, 할머니랑 할아버지도 2등이고."
말문이 갑자기 턱 하고 막혔다 한참을 보지 못한 엄마가 아직도 2등이라니, 내가 그러든지 말든지 아이는 계속 입을 연다
"외할머니가 3등이야 외할아버지는 잘 모르겠어요."
"공주가 그러면 그런 거지, 그런데 말이야 공주가 말 한 사람들 전부 다 공주 사랑해 아빠만큼 알지?"
"응 알아요."
그날 하루 뭔가 힘들 었었는지 잠들기 전까지 계속 소곤소곤 조잘거린다, 나는 그 소리를 멍하니 듣다 생각에 빠지게 된다, 아이는 지금 괜찮은 걸까 괜찮은 척을 하는 걸까? 전자면 좋겠지만 후자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는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 버렸다 누군가는 초등학교 5학년까지 응석을 부린다던데 우리 집 공주는 응석도 응석이 아니다 아빠가 힘든 거 같으면 알아서 멈춰버린다
이혼은 진작 끝이 났는데 아이와의 봄은 아직도 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한참을 조잘거리다 잠든 아이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어 준다, 머리가 많이 자랐다 내일이나 모레쯤 미용실 예약을 해야겠다 세수할 때 대충 했었는지 볼에 뽀얗게 각질이 올라와있었다 자는 아이 얼굴에 수딩 젤을 발라준다 하루 종일 고생했을 다리를 조물 조물 거려준다
갑자기 다시 추워진 날씨에 재난 문자가 들어온다 일어나 보일러 온도를 더 올린다 가스비가 걱정이 되긴 하지만 아이가 아픈 것보단 나으니까, 아이의 손수건을 한 장 빨아와 옷걸이에 걸쳐 놓고 방 안의 습도를 조절해 본다
아빠에겐 안좋은 추억이고 기억인 엄마가, 여전히 공주의 마음속엔 2등이라도 자리 잡고 있다 그걸 탓 할 수도 없고 되려 미안할 뿐이다 아이 입장에선 어른들 사이의 문제로 가족이 쪼개져 버린 것 일 테니까 그래도 어떤 관계는 떨어져야 한다고 이야기 해줘야 겠다 싶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공주의 내일은 오늘보다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더 따듯햇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