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대디로 산다는 것(222)

무지개 다리

by 시우

어제 아침에 네가 그래서 그렇게 박스를 긁었었구나, 나는 그냥 그게 아침마다 박스를 탈출하고 싶어 칭얼거리던 너라고 생각했다 22년 4월 초 홈플러스 마트에서 분양되어 우리와 같이 살기 시작했는데 나는 네가 그래도 편하게 잘 지내서 3년 정도는 우리 곁에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2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둥지 안에서 그렇게 가버렸을 줄이야 그럴 줄 알았으면 그날 아침에 네가 박박 박스 긁는 소리에 콧잔등이라도 한번 만 저주고 갈걸 그 생각이 들었다


다른 집 동물들은 아프면 찍찍 쥐소리라도 내서 나 아프다고 그런다는데 주인을 닮아서인지 아프단 소리도 한번 안 하고 그냥 참고 견딘 건지, 아니면 그냥 이제 나이가 들어서 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조용하게 가버린 건지





며칠 전에 공주랑 네 밥 챙겨주면서


"이제 2년 되어서 할머니 햄스터야 언제 우리 곁을 떠날지 모르니까 집에 오면 한 번 더 봐주고 먹이도 잘 주고 물도 잘 줘."


라고 했었는데 그게 이렇게 급작스럽게 찾아올 줄이야


아직 이별을 잘 모르는 공주는 너의 죽음을 그냥 슬픔 정도로 표현했지만, 나는 가슴 한편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너는 여기 지내면서 행복했었니? 매일 저녁 먹이를 주면서 등을 쓰다듬던 내가 귀찮지는 않았니? 일이 주에 한 번씩 갈아줬던 화장실 모래는 쓸만했니? 우리 집에 처음 와서 네가 우리에서 탈출해 냉장고 아래로 기어 들어갔을 때 내가 조그만 빗자루로 꺼내려고 애썼을 때 많이 짜증 나고 싫었니?


'우리 집에 와서 공주랑 나랑 지내는 동안 어땠니?'





햄스터는 외로움을 타지 않는 동물 이래서 그냥 밥 주거나 날이 좀 쌀쌀하거나 할 때만 너에게 다가가 인사하고 터치하고 볼에 해바라기 씨앗을 잔뜩 물고 있을 때는 볼도 한번 건들어보고 그랬었는데 화내지 않았던 거 보면 괜찮았던 거지?


아마도 나는 이제 더 이상 애완동물을 키우지는 못할 것 같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공주하나 키우기도 힘든데 그래도 너는 많이 힘든 것 없이 잘 지내줘서 고마웠어 가리는 것 없이 부족한 우리 부녀옆에서 잘 지내줘서 고마웠어 하늘나라에서도 잘 지냈으면 좋겠어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는 친구로 만나자 물론 지금도 친구였지만 서로 말이 잘 안 통했었잖아


2년여 동안 우리 가족으로 부족한 감정적인 외로움을 많이 채워줬던 너 덕분에 그래도 힘들었을 때 잘 넘기고 살았던 것 같아 너도 이제 그곳에서 편히 쉬길 바라 좁은 박스 안이 아니라 넓은 곳에서 말이야


더 쓰고 싶지만 눈물이 자꾸 나서 더 못쓰겠다 고마웠어 그리고 그곳에서도 잘 지내길 바라



2024년 1월 30일

소중했던 작은 친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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