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아지트
어린 시절 나는 책상에 이불을 얹어 조그마한 나만의 아지트를 만들어 그 안에서 놀곤 했었다 흡사 텐트 같은 느낌의 아지트였는데 요즘 아이들은 그걸 알까 싶어 공주에게도 물어본다 종종 숨바꼭질을 할 때에면 꼭 장롱 속에 숨어 버리는 공주였기에 혹여 그런 아늑한 공간이 내 어린 시절처럼 느껴지는 게 같을까 싶기도 하여 궁금함을 억누르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공주 아빠는 어렸을 때 책상에 이불 같은 거 얹어 놓고 속에 쏙 들어가서 만화책도 보고 잠도 자고 그랬었는데 공주는 그런 거 해보고 싶어요?"
"그게 뭐예요?"
"예전에 우리 집 거실에서 텐트 쳐놓고 안에서 과자도 먹고 티브이도 보고 그랬던 것처럼 하는 거예요."
"한번 보여주세요."
공주의 말에 장소를 물색해 본다, 우리 집은 책상 아래 공간이 개방형이기 때문에 이불을 얹어 놓아도 뻥 뚫려 있을 수밖에 없다, 주변을 둘러보다 적당한 장소를 찾는다, 바로 장롱이었다 장롱을 이용해 공주만의 아지트를 만들어 주기로 한다, 봄맞이하면서 이불은 다 빨아 두었으니 깔끔하고 공주가 눕거나 앉아있을 곳에 이불을 두툽 하게 깔아 주고 겨울이불 하나를 장롱 위에 얹어둔 이불 사이로 밀어 넣어 공주가 들락날락 거려도 빠지지 않게 고정을 해준다 텐트 입구처럼 말이다, 텐트보다 어설픈 얼기 설기한 모양인데도 공주는 그게 퍽 맘에 들었나 보다
"와 이거 좋아요. 여기가 이제 제 아지트입니다."
공주는 그 뒤로 인형들과 수면등을 들고 장롱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안락해 보이는 공주만의 아지트에서 동화책도 읽고, 유튜브도 보시고 깔깔 거리는 소리가 내 방까지 들린다 가만히 아이의 아지트로 찾아 들어간다 내가 보기에는 좁디좁은 공간 안에서 뭐가 그리 재밌고 신나는지 하긴 어린 시절의 나도 주말에는 그 안에서 빠져나오질 않았던 기억이 난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공주가 장롱 안에서 나온다,
"아빠 안에서 과자 먹어도 돼요?"
"아.. 과자는 좀 개미 생기면 이불도 다시 다 빨아야 하구, 나무 상할 수도 있어서 안돼요 과자는 밖에서 먹고 들어가요."
"잉 아쉽다."
아지트답게 먹을 것도 자유롭게 다 해주고 싶지만, 청소하기가 너무 힘들다 아빠의 마지막 저항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언제 질릴지 모르겠지만 아이는 한동안 신나게 지낼 것이다 그게 참 고맙고 미안하다 누군가는 아이에게 빚을 내서라도 경험시켜주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잘했던 건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살았던 것이고 나만의 기준이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이의 생각이 어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가 나를 다른 아빠들과 비교한다면 퍽 슬플 거 같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