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사는 게 원래 그런 거래요
어느 평온한 일요일 공주와 거실에서 뒹굴거린다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무겁다 출근이 스트레스라 툭 내뱉는다
“아 회사 가기 싫어 공주도 학교 가기 싫지?”
공주는 한숨을 푹 쉬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학교 가기 싫어요.”
“그래도 어쩌겠어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게 있잖아.”
잠시 생각하더니 공주가 말한다
“그러니까요 아빠 사는 게 원래 그런 거래요.”
그 말에 웃음이 빵 터졌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 입에서 ‘사는 게 원래 그런 거’라는 말이 나올 줄이야 한참 아이 같으면서도 가끔 어른스러운 면을 보이는 공주님
이렇게 지내면서 좋은 게 더 많을지 싫은 게 더 많을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는 되도록 좋은 게 더 많았으면 한다
예전에도 한 번 말한 적이 있지만 공주가 너무 일찍 철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머리를 쓰다듬다 보니 벌써 눈을 찌를 정도로 많이 자랐다 목에 수건을 둘러주고 앞머리를 반듯하게 잘라줬다 자꾸 하다 보니 제법 실력이 느는 것 같다 동네 미용실에서는 앞머리만 잘라도 3천 원, 5천 원은 받던데 이렇게 조금씩 아끼는 것도 괜찮다 싶다.
감기가 심하게 와서 병원에 다녀왔다 목이 붓고 머리도 지끈지끈 아파서 약을 먹었는데 약 기운 때문인지 비실비실 이불속으로 다시 기어들어가곤 했다 그 아픈 와중에도 아이 간식은 챙겨야지 싶어 억지로 일어나 마스크를 쓰고 간식을 준비하고는 다시 쓰러지듯 누웠다
그러면 공주는 내 이마에 조그만 손을 몇 번이나 짚어보곤 내가 잠들면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가 숙제를 했다
공주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 있다
‘사는 건 원래 그런 게 아니야’
이혼 가정이라는 상황을 아이에게 괜스레 변명하고 싶었지만 그런 말이 아이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싶어 삼켰다 사는게 분명 이상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우리는 또 그렇게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