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대디로 산다는 것(5)

상대방의 마음에서 이해해 보기

by 시우

혼인생활 진술서를 쓰면서 마음이 점점 차분해져 간다, 19년도부터 아내와 주고받은 메시지를 찾아봤다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별일 없었다고 믿었던 우리 사이는 조금씩 갈라지고 있었다, 냄비 물이 천천히 끓어가면 개구리가 자기조차 모르게 익어 죽는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상처 주고 죽여가고 있었다. 그저 그날의 사건은 화약고가 터질 방아쇄 였을 뿐이었다.


구체적인 우리의 사연을 이야기 하기는 좀 그렇지만 나는 약속이란 지킬 때 그 가치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지킴으로서 완성돼야 하는 것, 나는 너무 그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나 보다 나는 내가 내뱉은 말들과 약속들을 지키기 위해서 지금껏 노력해 왔고 뱉은 말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어겨본 적이 없다(진짜로 못할 거 같으면 못하겠다고 확실하게 말한다) 우리 가족들 굶기지 말아야 해, 적게 버니까 아껴야 해, 내가 많이 벌지 못하니 아이 보면서 힘들 아내 도와줘야 하고 집안일도 도와줘야 해, 회사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다니면서 자격증 하나라도 더 따야 해, 해내려는 게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일이 별로 없던 아내가 지키지 못한 약속들과 실수들이 눈에 많이 띄었나 보다

분명 아내가 결혼 전에 밀했던 것처럼 같이 노력해서 살아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내가 같이 힘써 도와주길 바라는 마음에 기대를 너무 많이 한 것 아닌가 싶다, 나는 하는데 너는 왜 못해?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자격증도 따고, 아이 등 하원도 시키고 집안일도 돕는데 너는 일 자리 구하는 거 하나 제대로 못해? 이런 생각들이 문제들을 일으킨 것 같고, 아내는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음에도 책임감 없이 약속들을 너무 쉽게 봤던 것 같다 그리고 아내 대신 많은 일들을 하면서 그로 인하여 감정적으로 점점 예민해져 가는 나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도 짐작이 갔다


아마 나는 아내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거 같다 단순히 '실수였어' '몰랐어' '어쩌라고' '원래 이런 사람인데' '네가 좋아서 한 거잖아' 이런 말보다 '자기 혼자 일하게 해서 미안해', '고생하지', '우리 가족 위해서 힘내 줘서 고마워', '여보 이건 내가 할 수 있어 너무 무리하지 마',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같은 작지만 사소한 고마움의 표현 말이다.


아내의 생각은 이제 중요한 게 아니다, 어쨌든 이혼을 하겠다고 나갔고 아이는 나에게 두었고, 차를 새로 뽑았고, 주소지를 옮겼고 이제는 모든 걸 본인이 원하는 대로 다시 시작하겠다는 게 아내의 의지이고 나는 아직도 아이와 아내와 같이 이 위기를 극복하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이것들에 대해서 이제는 그만 미련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일만 남은 것 같다.


우리는 서로 다른 곳을 봤다, 나는 가족을 위한다고 적당한 목표치를 설정해 나 혼자만 열심히 목표에 다가가고 못 따라오는 아내를 닦달했고 아내는 가족과 본인의 자아실현이나, 목표 달성보다는 지금 본인이 가능한 범주에서만 살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아내랑 싸울 때 종종 그런 이야기를 했다, 약속을 했으면 지키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고 못 지켰으면 미안하다고부터 말해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니냐고 아내는 나에게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인데 어쩌냐고 그랬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었었다, 아내는 거짓말한 게 아니었다 아내가 잘 못하는 것 중 하나일 뿐이었다 다만 내가 나의 기준으로 아내와 다른 사람들을 비교하며 그걸 인정하지 못한 것뿐이다(아내가 잘했다는 게 아니라, 그런 사람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다)


사회 보편적인 기준에서 보자면 아마도 나의 기준이 보통이겠지만, 사람 사이에 보통이란 게 사실 어디 있겠는가, 사랑해서 부부로 만나서 살아가는 와중에 서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야 차고 넘치겠지만 그것도 결국 그 사람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은 것 같다 이제 알았다고 해도 너무 늦었겠고 이것을 가지고 다시 싸우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왜냐 나와는 다르게 살아온 사람이니까


내 지인은 '그 정도도 못하면 결혼을 왜 했어? 결혼을 안 했어도 할 건 했어야 했어, 너를 만나서 안 한 게 아니라 그냥 걔라서 안 한 거야 그리고 네가 너무 많이 해줘서 그래'라고 하긴 했지만 말이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결혼을 더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랑이라는 콩깍지에 씌어 그 사람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근대 그건 신이 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살아본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확실한 기준들을 가지고 서로 만나려고 하나 보다, 아무리 개차반 같은 성격이라도 이해해 줄 수 있을 만큼의 돈, 아무리 화가 나도 참을 수 있는 외모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현실적으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그랬던 건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55세 은퇴를 꿈꾸고 그전까지 24평 정도 되는 새 집을 청약 당첨돼서 사고 싶었고, 지금 끌고 다니는 15년식 경차를 새 소형 SUV로 바꾸고 싶었고, 아이를 대학 보내고 졸업시키고 결혼시킬 정도까지 모으고, 아내와 은퇴해서 바다가 근처에서 살며 손잡고 종종 낚시도 다니고 적당히 지낼 수 있을 정도로 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혼자 버는 게 아니라 아내도 같이 벌어준다고 했었으니 어려운 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당분간은 아이를 돌보며 내 마음을 더 냉정하고 차분하게 정리해 봐야겠다, 이번만큼은 나 혼자 생각하는 게 아닌 아이와 아내를 한 번 더 생각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카트 밀어 주는 공주님


결혼도 인생의 중대사였고 쉬운 마음으로 결정했던 건 아니었지만, 헤어짐 역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무리가 좋은 이별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냐만은 아이라는 연결고리가 있는데 마지막만큼은 나쁜 기억으로 끝내지 않기를 간절히 빌어 본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건, 부부 사이에 참지 말고 이혼하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인생살이가 있는 것처럼 부부의 인연이 여기까지인 집도 더 나아갈 수 있는 집도 있는 거니까, 다만 아직 그 인연의 끈이 남아있다면, 섣부른 선택과, 올곧지 못한 생각으로 놓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 나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불교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고 부부의 연을 맺으려면 천 번의 생을 살아야 한다고 했단다, 물론 전생의 원수가 부부가 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진짜 원수라면 서로 사랑에 빠지는 게 말이 되겠는가?


변호사님에게 혼인관계 진술서를 보냈다, 약정서는 나중에 보내겠다고 지금 당장 어찌해 보려는 건 아니고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말도 했다. 내가 해야 할 일도 마무리해야 하고 내가 느낀 게 있는 것처럼 내 아내도 뭔가 느끼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오랜 시간동안 틀어져 버린 마음이 제자리를 찾기는 힘들것이고 나도 이 관계가 회복되리라고 장담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내가 아내를 이해하려고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생각했던 것처럼, 아내도 나와 아이를 생각해볼 시간이 충분히 남아있으면 좋겠다


대단원의 마무리 같은 맺음이지만 끝은 아니다,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제 진짜 싱글 대디로 산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쓸 차례가 온 것 같다


나와 아이가 살아가는 이야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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