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함께 자라는 우리들의 이야기.
흙을 만지고, 물을 주고, 기다리는 시간. 식물과 함께 자라는 우리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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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하면 식물 하나쯤은 키우고 싶어진다. 누구나 혼자 살면서 화분 하나쯤 선물 받았을 테다. 인스타그램 보면서 ‘나도 초록 정글 같은 방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을 거고. 근데 솔직히 말해보자. 그 화분, 지금 살아 있나? 나는 부모님 집을 나오던 날 엄마한테 화분 하나를 받았다. 거실 창가에 20년 넘게 있던 그 화분. “이거라도 키워봐.” 엄마가 건넬 때 흙이 묻은 손을 닦지도 않았다. 그 손때 묻은 초록 잎들을 원룸 창틀에 올려뒀다. 잘 키워야지. 한 달 후, 잎이 노랗게 변했다. 물을 줘도 시들었다. 회사 일에 치여 며칠씩 잊었고 어느 날 보니 줄기가 축 늘어져 있었다. 죽어가고 있었다. 엄마한테 전화할 수 없었다. “네가 뭘 제대로 해?”라는 말이 들릴 것 같아서. 아니, 사실은 “괜찮아, 식물은 원래 어려워”라고 말해줄 게 뻔해서 더 전화할 수 없었다. 화분을 버리지 못하고 베란다 구석에 뒀다.
엄마의 20년을 한 달 만에 죽인 딸. 그래도 뭔가 키우고 싶었다. 이번엔 내 돈으로, 내가 고른 걸로. 꽃집에서 제일 키우기 쉽다는 스투키를 샀다. “물도 한 달에 한 번만 주면 돼요.” 나한테 딱이었다. 책상 옆에 두고 매일 봤다. 물 주는 날을 달력에 표시했다. 이번엔 진지했다. 몇 달 후, 새잎이 나왔다. 작고 연한 초록색. 손톱만 한 크기. 내가 키운 거였다. 엄마 화분은 아니었지만, 이건 내 거였다. 퇴근하고 방문을 열 때마다 책상 위 초록이 보였다. “잘 있었어?” 중얼거렸다. 혼자 사는 게 외롭지 않았다. 스투키 옆에 하나씩 늘었다. 몬스테라, 산세비에리아, 다시 스킨답서스. 이번엔 내가 처음부터 키우는 거. 베란다 구석의 엄마 화분은 결국 버렸다. 손이 떨렸다. 쓰레기봉투에 넣으면서 많이 속상했다. 20년 산 식물을 한 달 만에 죽인 딸. 명절에 집에 갔을 때 엄마가 물었다. “너 화분 잘 키우고 있어?” 엄마집 거실 창가, 텅 빈 자리를 보면서 “응, 잘 키우고있어.” 거짓말은 아니었다. 지금 내 방엔 초록이 7개 있으니까. 엄마 화분은 못 살렸지만, 다른 아이들은 잘 키우고 있다. 창가는 식물로 가득하고 독립이 서툴렀던 나도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어쩌면 엄마도 처음엔 그랬을 거라고, 이제 생각한다. 식물 마스터로 성장한 김지은 29세
헤어진 사람이 두고 간 고무나무가 거실 창가에 있다. “잘 키워보자”던 그 사람은 떠났는데 화분은 남았다. 베란다 구석으로 밀어뒀다. 물도 안 줬다. 죽으면 버리지 뭐. 근데 이 아이는 질겼다. 일주일, 이주일, 한 달. 시들었지만 죽진 않았다. 볼 때마다 짜증 났다. 너도 좀 깔끔하게 정리되면 안 되냐고. 두 달쯤 지났을 때 엄마가 집에 왔다. “이게 뭐야, 식물 학대네.” 물을 주고 갔다. 며칠 후 또 왔다. 또 물을 줬다. “엄마, 그냥 놔둬. 어차피 버릴 건데.” “버릴 거면 지금 버려. 이렇게 반쯤 죽여놓지 말고.” 엄마 말이 맞았다.
그 날 저녁, 물을 줬다. 2주에 한 번씩. 그 사람이 알려준 주기대로. 의무감이었다. 몇 달 후 새잎이 났다. 크고 선명한 초록색. 그 사람이 보고 싶어 했던 그 잎. 근데 이상했다. 기분이 좋았다. 그 사람 생각이 났는데 아프지 않았다. 그냥 ‘잘 자랐네’ 정도. 화분을 거실로 옮겼다. 창가 햇빛 잘 드는 곳에. 잎을 닦았다. 이젠 그 사람 화분이 아니라 내 화분이었다. 물 주는 날도 내가 정했다. 놓는 위치도 내 맘대로. 친구가 물었다. “이거 전 남친 거 아니야?” “응, 근데 이젠 내 거.” 거짓말 아니었다. 1년쯤 지났을 때 창가를 봤다. 허리까지 자란 고무나무. 화분은 무성하게 자랐는데 사랑은 갔다. 이별은 정리되지 않는 게 아니라 천천히 자라나는 거였다. 그 사람 없이도 나는, 그리고 이 화분은 잘 자라고 있었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최우정 29세
2년 전 봄, 주민센터 게시판에서 본 ‘주말농장 분양’ 안내문을 보고 덜컥 신청했다. 회사와 집만 오가는 삶이 숨 막혀서였다. 모니터 대신 흙을 보고 싶었다. 처음엔 상추, 방울토마토, 고추모종을 심었다. 손가락만 하던 것들이 어느새 내 무릎 높이까지 자랐다. 매주 토요일 아침, 차를 몰고 1시간을 달려가는 게 귀찮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도착해서 흙을 만지는 순간, 그 귀찮음은 증발했다. 잡초를 뽑고, 물을 주고, 빨갛게 익은 방울토마토를 따 먹는다. 입안에 퍼지는 단맛 속에 흙과 물과 햇빛과 내 시간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가을엔 고구마를 캤다. 흙 속에서 통통한 고구마가 모습을 드러낼 때, 옆 텃밭 아저씨가 말했다. “이 맛에 주말농장 하는 거죠.” 맞다. 귀찮음 따위는 식물이 자라는 기쁨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3평 남짓한 작은 땅이 내 우주가 됐다. 자칭 주말 농부 김진호 3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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