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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축구할래요? #운동하는여자

책 만드는 출판 노동자 이지은의 운동과 사랑에 빠진 이유.

by Singles싱글즈

WRITER 이지은

책 만드는 출판노동자. <편집자의 마음> <취미로 축구해요, 일주일에 여덟 번요>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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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축구할래요? #운동하는여자


나다워도 괜찮아


곱게 자랐다. 엄마는 딸인 나를 애지중지했다. 내가 당신처럼 피부가 까무잡잡하지 않기를 바라서 우유를 섞거나 인삼 달인물로 목욕을 시키고, 명품까지는 아니어도 유명 브랜드 옷이 아니면 입히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엄마의 노력 덕분인지 나는 또래보다 하얗고 매끈한 아이로 자라났다. 지나가던 어른들이 내게 “너 정말 인형 같다. 어쩜 이렇게 피부가 좋니” 하고 말을 걸면 엄마는 자연스레 우유와 인삼 물으로 목욕시킨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듣는 이가 놀라워할수록 엄마는 자신의 유별남을 자랑스러워 했다. 엄마는 지금도 종종 “내가 너를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는데”로 시작하는 말들을 늘어놓고는 한다.


엄마의 뿌듯함과는 달리 막상 내 머릿속에는 당시의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 깊이 남아 있다. 엄마는 아파트 상가 2층에 있는 피아노 교습소에 나를 데리고 가 학원 등록을 시켰다. 내게 그럴듯한 취미를 선물하고 싶었던 것 같다. 문제는 내가 진득하게 앉아 있는 성격이 못 됐다는 점이다. 피아노 교습은 지루했다.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똑같은 곡을 반복 연습하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지금도 하품이 나온다. 내가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동안 남동생은 도장에서 태권도를 배웠다. 흰색 도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동생이 부러워 엄마에게 “나도 태권도 배우고 싶다”고 졸랐으나 엄마는 “여자애가 무슨”이라는 말과 함께 내 요구를 묵살해버렸다. 당연하다. 인삼으로 목욕까지 시키며 애지중지 키운 딸아이 얼굴에 상처라도 나면 어쩔 것인가.


그때나 지금이나 엄마는 내게 사랑만 주는 존재이지만, 그 사랑이 내게 필요했는가 묻는다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엄마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준 것이 아니라 ‘엄마가 바라는 딸’의 전형적인 형상이기를 바랐다. 하얗고 보드라운 피부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인형 같다”고 외모를 칭찬해주는 아이. 주름이 깔끔하게 잡힌 밝은색 원피스를 입고 많은 관중 앞에서 피아노 연주곡을 치는 아이. 엄마의 단호함 덕분에 나는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얼굴을 가지고 자라났지만 이는 잘 성장했다는 훈장이 아니라 아무것도 시도해보지 못한 증거로 느껴졌다. 가끔 생각한다. ‘어린 시절에 태권도 같은 운동을 경험할 수 있었다면 내 삶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운동으로 땀을 쫙 뺀 후에 들이켜는 물 한잔의 맛을 일찌감치 알았을 테고, 대련을 통해 상대의 호기로움에 회피하지 않고 주저 없이 맞서는 용기를 배웠을 것이다. 그때 운동을 접했다면 나도 알지 못했던 운동 재능을 발견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일을 업으로 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일 수도 있다. 바깥에서 땀 흘리며 돌아다니는 것보다 집에 가만히 누워 있기를 좋아하고, 경쟁을 무서워해 ‘질 것 같다’ 싶으면 아예 도망가버리고, 여전히 운동 머리가 없어 몸만 고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하나의 가능성을 직접 경험해본 후 마음을 접는 것과 아예 시작조차 하지 못한 채 포기하는 것 사이의 간극은 구만리다.


내 몸을 통해 실패해본 경험이 없던 나는 자연스레 ‘남들이 바라는 나’를 지향하게 됐다. 사춘기 이후부터는 대중 잡지나 ‘공영’ 방송에 비치는 연예인들의 몸과 나의 몸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세상의 기준에 따르면 내 몸은 모자란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다. 내 손도 다른 여자애들 손처럼 얇고 작았으면, 내 다리도 곧고 길고 말랐으면, 내 몸도 비율이 이상적이었으면, 내 목소리도 가늘었으면…. 거울 속 몸을 가만히 들여다볼수록 바라는 게 점점 늘어났고, 늘어나는 콤플렉스만큼 나는 불행해졌다.


몸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것은 풋살을 시작하면서부터다. 바라는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에 생겨난 격차로 현기증을 느끼던 어느 순간, 무기력과 우울에 빠졌다. 삶에 의욕을 잃고 온종일 바닥에 가자미처럼 붙어 있던 나를 딱하게 여기던 친구 하나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 요즘 축구 배우는데 같이 하실래요? 몸만 오시면 돼요. 신발도 빌려주고, 초보 반 첫 수업은 무료예요.” 온 나라가 ‘레드’에 중독돼 있던 2002 월드컵 때조차 축구를 공‘ 하나 놓고 22명이 90분 동안 뛰어다니는 게임’ 정도로 여겼던 나다. 그럼에도 혼자 있기 싫어서 흔쾌히 수락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이 운동에 한껏 매료돼버렸다. 정신없이 달렸더니 머릿속이 깨끗해지고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횡단보도 파란불이 깜박거려도 뛰어 건너가기보다는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내가 이토록 숨이 턱 끝까지 차도록 달리다니. 티셔츠가 흠뻑 젖도록 땀을 흘렸는데도 기분이 상쾌할 수 있다니, 이거… 엄청나잖아? 이토록 재미있는 걸 지금까지 남자들만 한 건가? 뒤늦게 접한 세계에 눈이 2배로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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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강도 운동을 취미로 삼으니 내 두꺼운 다리가, 큰 손이, 걸걸한 목소리가 더는 단점으로 보이지 않았다. 두꺼운 다리는 몸을 튼튼히 지탱하는 기둥이 되고, 큰 손은 골키퍼로서 작은 키를 보완해주고, 걸걸한 목소리는 필드 위의 동료들에게 내가 여기에 있다고 알리는 스피커가 돼준다. 그러니 지금의 나를 ‘곱고예쁘게’ 변화시킬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버리니, 내 몸의 개성들이 눈에 드러났고, 이후로는 내 건강과 취미를 위한 몸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됐다.


엄마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엄마의 그 고운 딸은 피부에 든 멍 자국들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다. 지금도 내 몸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바라는 몸이 ‘남들이 봤을 때 아름다운 몸’이 아닌 ‘내가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몸’이라는 데 차이가 있다. 이제 나는 다른 것들을 바란다. 내 몸과 다리가 더 튼튼해 풋살장을 마음껏 뛰어다녔으면, 내 목소리가 더 커서 친구들의 귀에 쏙쏙 박혔으면, 마르고 작은 몸이 아닌 크고 단단한 몸을 가졌으면.


게다가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호흡을 맞추어 뛴다는 건 낯선 경험이었다. 그전까지 피트니스, 요가, 필라테스 등 수많은 운동을 취미로 삼았지만 팀 운동은 처음이다. 타인과 손을 마주 잡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춤마저도 벨리댄스를 택할 정도로 접촉을 극도로 꺼렸다. 축구할 때의 나는 달랐다. 상대의 날 선 기세에 나 또한 몸싸움으로 답하고, 친구가 위험에 빠지면 얼른 달려가 도와야 하는 게 축구니까. 전방 압박을 할 때 혼자 달려가면 반드시 실패한다. 내 압박을 피해 옆 사람에게 공을 돌리면 그만이니까. 반드시 동료와 동시에 압박해야 한다. 30여 년간 운동마저도 혼자 하는 게 일상이던 나는 이제야 협업을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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