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수영하는 딸. <오춘실의 사계절> 저자 김효선
WRITER 김효선
<오춘실의 사계절> 저자. 인터넷 서점에서 한국 소설을 파는 사람. 퇴근하면 책 읽고 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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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그만둔 엄마에게 수영을 가르쳐주며 함께 헤엄친 이야기를 <오춘실의 사계절>이라는 책으로 엮어냈다. 그날 이후 엄마는 책으로 연결된 내 친구들을 차례차례 딸 삼고 있다. 10명의 딸과 함께한 최초의 북토크는 북‘ 스위밍’ 현선의 기획으로 늦여름 잠원 한강공원 수영장에서 열렸다.
“우리 친구들을 보면 인사하듯 엄마는 ‘이게 누구야!’ 하고 꼬리를 흔들며 영진에게 다가가겠지. 그렇게 영진은 엄마를, 엄마는 영진을 또 좋아하게 될 것이다”(257쪽)라고 나는 겨울에 썼다. 엄마는 정말로 영진과 만나자마자 우선 포옹했고 영진의 친구인 주미의 옆에 앉아 주미가 주는 김밥을 한 알씩 먹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책의 마지막 문장에서 열어둔 대로 엄마에겐 정말 삶이 한참 남아 있었다. 엄마는 고개를 완전히 젖히고 하늘을 보며 컹컹 웃었다. 늦여름 수영장엔 노을이 오래 머물렀다. 우리는 현수막을 걸고 같은 티셔츠를 맞추어 입고 각자의 ‘오춘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돌아온 답을 낭송하듯 읽었다.
책이 나온 후 엄마는 다른 듯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여전히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에 같은 수영장을 갔고, 아직 자유형에 도전하지 못했다. 물에 얼굴을 담그는 게 싫어 자유형을 못 하는 엄마는 누군가 하는 헤드업 자유형을 보고 와서 나도 저 수영을 하면 되겠다고 눈을 반짝였다. 헤드업 자유형엔 강한 허벅지 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평평하게 물에 엎드려 눕는 감각을 알기 전엔 상체를 약간은 세우되 완전히 세우면 또 안 되는 헤드업 자유형의 미세한 몸 가누는 법에 대해 알기 어렵다. 저게 더 힘든 거라고 알려주니 엄마는 금세 또 헤드업에 대한 야심을 내려놓았다.
배영을 집중 연습한 엄마는 배영만큼은 이쁘게 잘했다. 사람들은 보통 본인 성질머리대로 물을 잡았다. 흐물흐물한 엄마는 물도 소담하게 잡았다. 나이 든 세 여자는 팔을 한 번 밀고 다음에 어깨를 힘으로 밀며 글라이딩 연습을 했다. 엄마는 글라이딩을 혼자 배웠다. “나 저렇게 하고 있지?” 엄마는 한번 물어보고는 몸을 밀어 나아갔다. 오춘실 씨는 늘 내가 가르친 것보다 멀리 나아갔다. 모든 걸 손에 쥘 수도 없고, 손에 쥐지 않았다고 일이 잘못되는 것도 아니라는 걸 나는 엄마의 글라이딩 덕분에 배웠다.
<오춘실의 사계절>은 7월 31일에 출간됐다. 8월 2일 토요일에 오랜만에 수영장에서 만난 전도사 회원님은 눈 수술을 해 한동안 수영장에 오지 못했다며 못 본 사이 엄마 발차기가 좀 나아졌다고 칭찬했다. “소망의 발차기로 나아가세요!” 엄마는 이 말처럼 부웅 나아갔다. 한여름 수영장엔 더위를 피해 폐장까지 여유를 즐기려는 회원이 많았다. 엄마는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면 입을 크게 벌리며 재잘재잘 떠들었다. 퇴근 전 씻고 나가려는 샤워장 청소 담당자에게 엄마는 30년 청소 경력자로서 뼈로 익힌 교훈을 전달했다. “천장 닦으라고 하면 못 한다고 하세요. 넘어져서 다치면 나만 손해예요.” 과연 수영장 천장엔 어쩔 수 없이 곰팡이가 자라고 있었다. 엄마도 시키는 대로 의자를 밟고 올라가 벽을 닦다 넘어져 양쪽 팔목에 철심을 박은 적이 있었다. 오후 3시 햇살이 통창으로 쏟아졌고 하늘색 수영장 물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이 시간의 물색을 보며 황홀해하는 것과 엄마가 하는 말을 엿듣는 건 모두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엄마는 2번의 잡지 인터뷰를 했고, 5번의 북토크를 했다. 엄마랑 자주 수영장 벽에 붙어 대화하던 어르신은 어느 날 입장하며 “오춘실 씨!” 하고 불렀다. 신문에서 책을 봤다고, 이제 엄마 이름을 알게 됐다고. 엄마는 그분과 재잘재잘 “나 정말 힘들게 살았어요” 하고 한참을 떠들었다. 엄마가 ‘왕딸’로 포섭한 수영장 회원님이 “어머님, 살이 왜 이렇게 빠지셨어요?” 하니 요즘 바빠서 그렇다고, “검색해보세요. 오 춘 실의 사계절” 하고 노래하듯 말했다. 그 옆에서 나는 너무 창피해서 “엄마 제발…” 하고 발을 굴렀다. 책 표지를 본 회원님은 휴대전화 화면과 실제의 엄마를 번갈아 들여다보며 “어? 어!” 하고 즐겁게 놀란 목소리를 냈다. 샤워장에서 우연히 말을 섞다 “혹시…책?” 하고 물어보신 회원님껜 내가 나서서 “네! 오춘실! 오춘실!” 하고 발가벗은 채 엄마 자랑을 했다.
북토크 다음 아침마다 엄마는 “내가 잘 살았으니까 사람들이 날 보고 싶다고 불러주겠지?” 하기도 했고, “나 말실수 한 거 없지?” 하기도 했고,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야?” 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불쑥 “역시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온순해” 하고 혼자 뭔가를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요점만 간단히 말하지 못하는 엄마는 동생 얘기를 하다 “걔가 송파 사는데요” 하기도 했고 술을 줄여 내 간수치가 좋아졌다는 TMI를 남발해 사람들을 웃겼다. 이런 엄마의 부산스러움을 받아들여주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 나도 엄마처럼 마음을 놓았다. “엄마 북토크 가서 말하는 거 무서워?” 하면 “얘기는 두렵지 않어. 청소가 두려워” 했다. 엄마는 염려하고 안도하면서 꼬불꼬불 나아가고 있었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밸일이 다 있다” 하면서 즐겁고 분주하게 살며 수영한다.
엄마의 삶의 사계절과 수영장의 사계절 풍경을 나란히 놓은 책의 구성을 좋게 봐주신 분이 많았다. 수영장에서 우리는 계절을 몸으로 느꼈다. 봄이 지났고 여름이 됐다는 건 입수할 때의 기분으로 알 수 있다. 물이 더는 차게 느껴지지 않고 싱그럽고 딱 좋다고 느껴지는 날. 그날부터 여름이다. 지구는 나날이 뜨거워지고 밖의 일로 땀에 절었던 몸은 차가운 수영장 물에 닿으면 어느새 차분해진다. 태국어에서 차가움은 긍정적인 뜻이라는 설명을 여행 가이드에게 들은 적이 있다. 항시 더운 남쪽 나라 사람들이 자주 쓰는 짜이옌(Jai Yen, Cool Heart)이라는 말은 냉담한 마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지글지글 끓는 심장의 온도를 낮춰 평정을 찾으라는 뜻이라고 했다. 높은 습도, 스콜, 열대야. 찜통 같은 여름이었다. 만두처럼 습기 찬 엄마는 수영장 가는 여름 길목마다 혀를 내밀며 “동남아네. 동남아야” 했다. 나는 <오춘실의 사계절> 여름장에 해마다 서울시의 열대야 일수가 드라마틱하게 늘어가는 것, 우리의 밤이 해마다 심각하게 더워지는 것에 대해 썼다. 2025년 서울의 여름은 열대야 일수가 46일로 역대 1위였던 지난해 기록(39일)에 7일이나 추가하며 1908년 관측 이래 최다 기록을 찍었다. 우리의 여름이 이토록 혹독하다면 우리에게도 ‘짜이옌’이 필요한 것이다. 마음을 차게 해야 할 때마다 우리는 수영장에 갔다. 수영장에선 휴대전화를 만질 수 없으니 이메일도 없고 뉴스도 없다. 나는 기꺼이 세상과 연결을 끊었다.
수월하고 평이한 결과보다 열심히 무리해서 만들어낸 탁월한 결과가 더 좋았다. 늘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잘하고 싶었다. 그 마음을 식혀 차가운 심장을 만들기에 수영장은 더없이 좋은 공간이었다.
열심히 / 하지 / 말고 / 몸 생각해서 조심히 하라고 엄마 친구인 회원님이 말해주셨다. 나는 이 말의 고유한 리듬을 휴대전화 일기장에 적어두었다. 꼭 열심히 (쉬고) 하지 (쉬고) 말고 하며 다시 읽는다. 그러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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