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60cm. 고작 1평 남짓한 요가 매트 위에서 찾은 자유와 행복.
WRITER 최은정
영화 산업에 종사하다가 지금은 프리랜스 영상 PD로 일하며 요가 지도자 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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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요가원에 가던 날, 입구에 붙어 있던 요가 예절 3가지. 1. 수련 중 핸드폰 무음, 2. 수련 시간 엄수, 3. 타인의 매트를 밟지 말 것 다른 건 당연해 보이는데 마지막 규칙이 좀 의아했다. 어쩌다 살짝이라도 매트를 밟으면 안 되는 건가? 어차피 매트 뒤쪽은 발만 닿는 부분인데. 하필 그날은 좁은 공간에 20명이 넘는 사람이 빽빽하게 매트를 깔고 앉아 있었다. 화장실이나 탈의실을 가려면 촘촘히 깔린 매트 사이를 겨우겨우 피해 다녀야 하는 일이 피곤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 각자의 매트가 얼마나 신성한 공간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180×60cm의 고작 1평 남짓한 공간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수없이 호흡하며 구르고 넘어지며 단단해진 각자의 시간들. 그 땀의 시간이 녹여진 매트는 한 사람의 요가 세계가 담겨 있는 무엇보다 소중한 공간이란 걸 깨달아버렸다.
요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체지방량 평균 이상에 골격근량 평균 이하인 전형적인 허약형 체질. 몸에 근육이라고는 씹는 운동을 하는 저작근밖에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운동을 싫어하던 나였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체육 시간에는 양호실을 찾았고, 점심시간에 친구들끼리 모여 하는 피구도 싫었다. 뭐든 땀이 나는 건 질색이었다. 그래도 허약형에 마른 비만형 체질이라는 진단을 받고 나니 싫든 좋든 운동을 하기는 해야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과격한 운동은 싫으니까 요가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간판에 ‘몸과 마음을 만들다’라고 쓰여 있는 따뜻한 요가원을 찾았다. 상담도 없이 네이버 예약을 통해 맞는 시간대 수업의 1회 체험권을 끊었는데 그게 하필 아쉬탕가 시간이었다. “처음 오신 분은 혹시 전에 요가를 해보셨나요?” 선생님의 질문에 가끔씩 여행 다니며 듣던 원데이 클래스나 호텔에서 하던 아침 요가를 떠올리며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혹시 샤워 시설이 있냐고 묻자 선생님은 조용히 웃으셨다. 요가원을 둘러보니 매트 보관대와 작은 탈의실 말고는 빈 방처럼 아무것도 없었고 7월 한낮의 무더위에 에어컨조차 꺼져 있었다. 시작하기 전부터 혹시 더우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땀이 많은 편이 아니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요가가 시원한 스트레칭 정도일 거라고 짐작하고 온 나에게 아쉬탕가는 매 순간 충격이었다. 아쉬탕가는 정해진 순서에 맞춰 한 호흡에 한 동작 씩 이어나가는 전통 요가다. 유연성은 물론 팔과 코어의 힘, 근력이 필요한 동작이 많아서 호흡과 함께 제대로 수련하면 금세 열이 오를 정도로 강도 높은 수련이기도 하다. 수련 시간이 되자 모든 사람이 매트 앞에 서서 합장을 하고 눈을 감았다. 매트 위에 앉아 있던 나도 눈치를 보며 따라 일어섰다. 왠지 모를 엄숙한 분위기에 옆 사람 호흡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해지니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옴 찬팅으로 시작하겠습니다.” ‘그게 뭐죠?’ 물을 새도 없이 낮고 깊은 진동 같은 울림이 실내를 가득 채웠다. 나는 실눈을 뜨고 사람들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모두 두 눈을 감고 입술을 닫고 옴-소리를 내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나, 운동하러 온 건데 잘못 온 건가? 평범한 요가원이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산스크리트어 구령은 더 당황스러웠다. 마시는 숨에 두 손 위로 우르드바하스타아사나, 내쉬는 숨에 정강이 사이로 이마를 가져가며 웃타나사나, 다시 마쉬는 숨에 허리 펴고 아르다웃타나사나, 내쉬는 숨에 내려가서 차투랑가단다아사나… 각각의 동작에 대한 설명도 없이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구령 소리에 열심히 눈으로 앞에 선 숙련자들을 보고 따라 했지만 제대로 완성한 동작은 없었다. 어떤 동작은 시도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힘들어 보였고 비슷하게 흉내낼 수 없을 만큼 어려워 보였다. 산스크리트어 구령이 외계어처럼 들리긴 했지만 고고하게 동작을 이어나가는 숙련자들처럼 나도 처음에는 어색하지 않은 척 애써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호흡이 단단히 꼬이며 숨이 가빠졌고 나중에는 요가원에 거의 내 소리만 들릴 정도로 숨소리인지 곡소리인지 토하듯이 신음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불만을 가질 틈도 없이 1시간 수업은 빠르게 흘러갔고 수업이 끝나갈 때쯤에는 온몸이 땀으로 샤워한 듯 젖어 있었다.
내 생애 실내 공간에서 그렇게 많은 땀을 흘려본 건 처음이었다. 속도를 조절해가며 타던 러닝머신과는 차원이 달랐다. 땀샘이 열리고 땀구멍이 커진 것처럼, 매트가 미끄러울 정도로 내 몸은쉴새 없이 땀을 뿜어냈다. 정신없는 1시간이 흘러가고 드디어 내가 아는 유일한 아사나 이름이 나왔다. 매트 위에 편안하게 누워서 사바아사나! 그날 나는 몸이 땅속으로 꺼지는 것 같다는 말이 무엇인지 완전하게 이해했다. 가쁜 숨이 진정되고 호흡이 제 속도로 돌아오기 시작하자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몸이 이완되는 것을 느꼈다. 심지어는 땀이 식는데 땀이 났던 피부가 보디로션 바른 것처럼 촉촉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바아사나는 온몸에 흐르는 에너지를 느끼며 잠에 빠져들지 않고 의식을 온전히 깨워내야 하는 어려운 자세다. 보통 수련 마지막에 이 자세를 취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잠에 든다. 나도 3분 남짓한 시간을 누워 있으니 어느새 의식이 사라지고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가 청명하게 울리는 싱잉볼 소리에 기분 좋게 의식이 돌아왔다. 다시 매트 위에 바르게 앉아 두 손을 가슴 앞으로 합장하고 두 눈을 감았다. 시작처럼 옴 찬팅을 하는데 처음보다 분명히 깊어진 울림을 느꼈다. 이어서 샨티-샨티-샨티- 하고 평화를 의미하는 만트라를 부른 후 수련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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