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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 Feb 26. 2024

손잡이 잘 잡아주세요. 출발할게요.

버스기사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고생하세요.

버스에 올라타 카드를 찍었다. 전철 공사가 한창인 이곳은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신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무수히 많은 건물들의 공사가 진행됐다. 엄청난 소음과 먼지가 날리더니 어느새 하나 둘 제 모습을 완성했다. 대기를 나르던 먼지들이 사라지고 나자 이제는 건물주의 브랜드를 담은 페인트 냄새가 대기를 채웠다. 입주를 앞두고 새집증후군을 걱정하던 사람들은 들뜬 마음으로 건물 안으로 보금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신도시라는 불리는 아파트 군락촌의 출근 시간은 몹시 치열하다. 구도시에 비해 교통 및 편의시설의 인프라를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 도의 행정업무 속도가 건설사의 이익 창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보통의 출근시간에 맞춰 각자의 사무실로 이동하기 위한 직장인들의 이동이 몰릴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룬다.




루틴대로 시간을 확인하고 버스정류장으로 나간다. 입춘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침은 어둡다. 아침도 저녁도 없는 대한민국 직장인의 삶에 내 수저도 하나 올린다.


아침부터 이리저리 몸이 밀리는 것이 싫어서 버스 회차역(종점)을 이용한다. 조금 더 걸어야 하지만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아도 되니 몸과 마음이 편하다. 버스앱에서 알려주는 시간대로 버스는 제시간에 도착했다. 카드를 찍고 자리로 가서 앉았다.


"손잡이 잘 잡아주세요 출발할게요"


기사님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기사님의 옆모습이 보이는 자리에 앉았던지라 운전 중인 기사님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덩치가 제법 있어 보이는 30대 후반 정도의 남성이다. 살집이 제법 있는 얼굴 위로 투블록이지만 너무 짧지는 않은 헤어스타일의 단정한 모습이다. 웃음기를 찾을 수 없는 굳어 있는 표정과 무뚝뚝한 목소리는 전형적인 직장인의 아침 모습과 다를 게 없다.


버스에서 정류장을 알리는 친절한 여성의 안내 목소리가 나온다. 정차를 위해 버스의 속도가 줄어든다. 기사님이 버튼을 누르자 좌우 방향 지시등이 켜지며 깜빡깜빡 소리를 낸다. 앉아 있는 몸이 앞으로 크게 쏠리지 않은 채로 버스가 정차한다. 이내 문이 열리고 승객들이 탑승했다. 출근시간이라 내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승객들이 모두 승차하고 버스가 출발한다. 기사님의 버튼을 눌러 좌우 방향의 시그널을 멈추고는 이내 다시 그 특유의 중저음으로 크게 외친다.


"손잡이 잘 잡아주세요 출발할게요"


10분 정도의 전철을 타는 동안에 루틴이 반복됐다. 비상 신호등을 켜고 버스를 정차. 승객이 탑승을 완료하면 버스를 출발시키면서 안전을 위한 무뚝뚝한 멘트 발사.


버스는 원래가 차체가 크기 때문에 관성에 대해 더 예민하다. 그러니 급발진과 급정거, 방지턱에 더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버스를 운전중인 기사님의 무뚝뚝한 표정과 목소리를 볼 때 기사님의 성격이 특별하게 자상하거나, 대인관계에 적극적인 찐 E형은 아닌 듯했다.


가끔 운전을 할 때 나는 방향 지시등을 잊곤 한다. 사실은 능동적인 망각이다. 중지와 약지로 툭 내려치거나 올리며 될 간단한 일인데도, 그것이 영 귀찮다. 그런데 사실 교통사고 측면에서 본다면(과거의 업무 기억을 살려) 방향 지시등 사용만으로도 상당한 사고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게다가 버스의 정차 시에 사용하는 비상신호등 시그널은 버스 안의 승객 뿐만 아니라, 버스를 따르는 후행 차량에게도 매우 중요한 시그널이다. 사고위험이 현격하게 줄어든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중지, 약지를 잘 쓰지 않는다. 귀찮기도 하고 운전에 자신이 있다는 불필요한 자신감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버스는 약 2분 내외의 시간마다 자리한 정류장에 정차한다. 수동 기어와 클러치를 조작해하면서 비상 지시등을 켜고 끄고, 승객들이 자리에 서서 손잡이를 잡는 것까지 확인해야 한다. 그러니 실제로 버스 기사님들의 이런 반복 루틴을 만나 보기가 쉽지 않다. 안전운행이 그들의 중요한 일 중 하나라고 하지만, 어려운 근무 여건 속 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


사고처리 부서에 있을 때 많은 버스기사님들을 만났다. 누군 과실이 많은 가해자였고, 누구는 과실이 적은 피해자이기도 했다. 면담 때 들었던 그들의 근무여건은 결코 좋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각종 민원을 시작으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 상대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심하고, 교대 근무를 하다 보니 생활은 불규칙했다. 하루 종일 도로 위에 있다 보니 감정은 예민해질 수밖에 없고, 도로를 달리며 마시는 먼지나 매연은 기관지의 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가끔 버스를 타면 화가 나서 터지기 직전인 기사님들이 있다. 급출발이나 급정거가 너무 위태로워 보인 적도 있다. 그런 행동들을 응원할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들의 노고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오늘 아침에 만난 무뚝뚝한 버스기사님의 목소리가 너무 좋았다. 무심한 듯 툭 뱉으며 외치는 그 목소리에서 배려심을 느꼈다. 높낮이가 없는 그의 목소리는 어느 안내방송에 못지않는 친절함이 느껴졌다. 무표정에 숨어 있던 그의 책임감이 좋았다. 고집스러울 만큼 같은 멘트와 톤으로 알려주는 그의 단순함에 감사했다.


최근 얼마전 부터 뉴스를 잘 보지 않는다. 도대체가 눈 가리고 아웅하는 편가르기 정치 기사도 보기가 싫고, 이제는 무엇이 진실인지도 모르겠는 대국민사기 소설도 보기가 싫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경제가 돌아간다.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세계를 주도하고 있고, 트렌디한 문화가 전해지고 있다. 그런 것들이 소수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일 수 없다.


오늘 우리는 조금 더 스스로를 격려하고, 칭찬해도 좋을 거 같다. 묵묵히 걸어가며 우리들의 발걸음으로 지탱하는 이 사회에 조금 더 자신을 가져도 될 것이다. 어렵고 힘들도 투정스런 월요일일지 모르지만, 나는 오늘 조금 더 기분 좋게 일해보려고 한다. 모두 버스기사님 덕분이다.


버스기사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안전 운전하시고, 건강 관리도 잘 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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