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한가운데에 있다. 앙상한 가지들 사이의 바람길을 채우는 싱그러운 연둣빛이 온 산을 덮고 있다. 겨우내 칼바람을 견뎌내고, 몸을 얼게 만들었던 설빙을 버티어 낸 힘이다. 여름의 풍성한 초록빛 모습과는 또 다른, 참으로 싱그러운 연두 빛이다. 어린아이 같다. 밝게 웃는 것 같아 참 좋다.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들이지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비바람을 고 한 계절을 풍성하게 만든 잎이며, 꽃이며, 과일까지도 모두 내어준 그들은 묵묵하게 다시 겨울을 감내한다. 반복되는 자연함은 다시 스스로를 풍성하게 만든다.
봄에 산을 올랐다. 봄의 연두는 보고 또 보아도 참 신비롭다. 아름답다. 겨울의 황량함을 견딘 보상이겠지. 풍파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뿌리를 가지고 싶다. 불혹을 훨씬 넘었지만 여전히 가볍다. 나이와 지혜가 꼭 비례하는 것만은 아니다. 전 날 흥에 겨운 술자리에서의 여운이 후회로 남는다. 흥겨움이 짙었던 분위기만큼 말도 많아졌다. 촉매제인 술 때문이다. 말이 많은 후에는 늘 마음이 무겁다. 술만큼이나 많이 먹은 나이임에도 내 입은 제 맘대로 중력의 법칙을 무시한다. 입이 바빠서는 좋을 것이 없다. 말하는 것도, 먹는 것도. 의식하는 선에서 그친 탓이다. 의식이 단단한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누구는 좋았고 누구는 싫었겠지만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군대에서 공을 찬다. 늘 자기 자랑으로 주변사람을 질리게 하는 회사 선배의 얘기만큼이나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남들에겐 같은 소리다. 하물며 그것이 자랑이라면 더욱이 더. 빈바람이 불기 때문이다. 모두 허풍이다. 경청이 다다익선이라면 말은 다다익해(害)다. 내 얼굴에 빛을 내고 싶어 침을 튀기며 노력하지만, 밝은 빛에 눈살을 찌푸릴 뿐이다.
봄의 기운을 담듯 그렇게 포근한 봄바람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얼어붙었던 너와 나의 마음에 살랑이며 따듯한 바람을 일렁이고 싶다.
"봄날의 들판을 네가 혼자 거닐고 있으면 말이지. 저쪽에서 벨벳처럼 털이 부드럽고 눈이 또랑또랑 귀여운 아기 곰이 다가오는 거야. 너와 아기 곰은 서로 부둥켜안고 클로버가 무성한 언덕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온종일 노는 거야. 어때 멋지지?"
"아주 멋져'"
"봄날의 아기곰 같이, 그만큼 네가 좋아."
<상실의 시대> 중에서 -무라카히 하루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