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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 Nov 02. 2023

줄탁동시(崪琢同時)

4 day - 부모 vs 학부모


'줄탁동시'라는 말이 있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알 안에서 쪼는 것을 '줄' , 알을 품는 어미 새가 밖에서 쪼아 깨뜨리는 것을 '탁'이라 하는데, 제자와 스승이 뜻이 맞아야 함을 의미하는 사자성어이다. 새끼 새가 알을 깨고 나오려고 씨름할 경우에만 도와주는 것이다.  새가 '줄' 하지 못하고 나오면 성장이 지체되듯, 아이 또한 자발적으로 자기가 꿈꾸는 것을 하지 못하고 부모의 욕심대로 따라가면 결과적으로 성장의 지체가 일어난다.

데미안 변학수 옮김. 역자 해설 중 발췌


모든 사람은 고유하다. 개인에게 있어 그 고유성을 지키고 성장해 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명제다. 그 고유성은 성인이 된다고 해서 한 순간에 인격으로 구현될 것은 아니다. 빛을 흡수하고 호흡하며 성장하는 나무의 동그란 나이테처럼, 인간에게도 나름의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 필요하다.


소년들의 성장을 돕는 것은 어른들과 기성세대들의 역할이다. 스스로 사고하고, 계획하고, 실행해 나갈 수 있는 지혜를 갖추기 위해서는 그 고유성을 인정해 줄 수 있는 어른들의 용기와 혜안이 있어야 한다.


어른들이 제시하는 길을 따라가면 진짜로 행복해질까?

박찬호가 축구를 했으면 손흥민이 될 수 있었을까?

김연아가 역도를 했다면 장미란이 될 수 있었을까?


어른들의 조바심은 과거에 그들이 이루지 못했던 자아와 만나면서 대리만족이라는 수단으로 발현된다. 개인이 가지는 고유성을 박탈하고 있는 주체는 사회와 기성세대다. 시험 문제를 푸는 능력을 키우며 성장하는 소년에게 정서는 하얗게 흩날리는 먼지가 되어 가고 있다. 시험문제의 정답을 찾는 스킬에 몰두하면서 앎과 정서의 균형이 깨지고 있는 현상이 참 안타깝다. 소년에게는 학부모에 우선하는 부모가 필요하다.


<데미안>의 싱클레어와, <수레바퀴 아래서>의 소년 한스는 100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에 살고 있다. 소년의 목표와 방향은 그들 스스로가 주도해야 한다. 아이들이 주변을 돌아보기도 전에 그 세계를 쪼아 깨뜨리는 것은 아이들의 한계를 억압할 뿐이다. 정답을 강박하는 현실에서 명답을 찾을 지혜가 필요하다. 이상과 현실의 거리만큼이나 학부모와 부모의 거리는 요원한걸까?


줄탁동시. 내부의 역량과 외부 환경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올 '줄' 예측하고, 미리 그 알을 '탁'하고 깨버리는 경솔한 행동을 피해야겠다. 적절한 조화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그리고 소년을 지켜볼 인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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