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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 Dec 25. 2023

여행은 언제나 돈의 문제가 아니고 마음의 문제다

25 day 여행은 늘 옳다.

목소리에 전자음 소리가 섞여 있다. 착륙을 알리는 기장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들려온다. 기내에서는 꼭 저렇게 웅얼거리며 말해야 할까?라는 생각에 웃음이 나온다. 이제 6시간 동안 제 기능을 하지 못한 다리를 사용할 수 있다. 땅으로 착륙하는 기체가 굉음을 내며 강력한 흔들림을 전한다. 비행기가 멈춰 섰다. 마음이 급한 사람들은 벌써 일어나 짐을 꺼내려고 분주하다. 한국사람이다. 서두르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순서대로 나가야 하니 1,2분만 더 참아주면 좋겠다.


비행을 마친 비행기가 내뿜는 안도의 한숨이 후각을 자극한다. 만 리터 이상을 태웠을 비행기 특유의 항공유 냄새와 섞인 낯선 나라의 습한 기운이다. 6시간 비행에 고단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이국 땅을 밟는다. 낯선 이국인을 반기는 공항 직원의 웃음에 화답하듯 최대한 비슷하게 표정을 지어 보인다.


"여행은 언제나 돈의 문제가 아니고 용기의 문제다."  <연금술사>를 쓴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가 말했다. 마흔을 넘기니 이제 익숙함이 많아진다. 새로움을 경원시하는 것은 아닌데 아무래도 반복되는 일상이 잦아지기 때문이다. 생각이 닫히는 것이 싫어 책을 읽고 공부하지만, 일상 자체가 반복적이다. 


여행을 좋아한다. 새로운 환경과 자극이 좋다. 낯선 땅의 하늘이 좋고, 그들의 삶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즐겁다. 여행은 늘 옳다.


하늘을 좋아한다.

열 살이 안 됐을 무렵만 해도 서울의 하늘은 볼만했다. 때때로 하늘색_파란색과 흰색을 조합한 밝고 맑은 색을 볼 수 있었다. 지금과 같은 파란색과 회색의 조합이 아니었다. 구름 한 점이 없던 맑은 하늘은 그 오후도 참 좋았다. 노란색과 붉은 색인 섞인 하늘을 보는 것이 좋았다. 


이제는 잘 볼 수 없는 하늘인데 이곳에서는 그런 이쁜 하늘이 일상이다. 맑고 밝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크게 한숨을 들이켜본다. 깨끗한 하늘이 참 좋다.


삶과 일상

굳이 따지자면 라오스는 한국의 3,40년 이전 수준이다. 고속도로가 놓이고, 고속기차가 생기고, 수도 비엔티엔에 처음 복합쇼핑몰이 오픈한다. 종종 고급 세단이 보이기도 하지만, 수도에서 한 시간 거리에 사는 아이들의 발엔 신발이 없다. 맨발로 걷는 아이들이 많다. 


아직 소녀티가 물씬 나는 아이들이지만 늦은 시간 야시장에서 그들은 여행자를 상대로 옷과 음식을 판매하기도 한다. 선택과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을 그들의 삶이 안타깝다고 생각되다가도 아내 고개를 흔든다. 그들의 삶 자체를 존중해야 한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웃음을 존중한다. 환하게 웃는 그들에게 진심을 담아 웃음으로 화답한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이내 동화되어 함께 웃는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

가급적... 한국 사람들이 많지 않은 곳으로 여행지를 정한다. 나에게 너무 익숙한 한국인의 부지런함과 단체성, 억양을 이곳에서까지 함께 하고 싶지는 않다. 결혼식 뷔페 같은 분위기로 조식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 단체 여행객의 왁자지껄 대화하는 소리로 아침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 


공황장애를 겪게 만들었던 사람들의 한국어가 귀에 박히는 것이 부담스럽다. 못 알아듣는 현지어나 영어가 좋다. 여행지와 와서 하루를 이틀처럼 쪼개 써야 한다는 필사적인 부지런함 보다는 여유의 사치를 부리고 싶다. 부지런은 한국에서도 충분하다. 부지런을 떨면서까지 낯선 이국을 즐기고 싶지는 않다.


'킹'을 만났다. 아내와 친구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 중인 태국인이다. 라오스는 물가가 저렴해서 자주 온다고 했다. 패러글라이딩 파일럿 자격이 있어 주로 관광객을 대상으로 일을 하고, 일거리가 없는 날에는 기타를 메고 여기저기를 누빈다고 했다. 


'유이폭포'라는 곳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폭포 밑 아름드리 큰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제이슨 므라즈의 <I'm yours>를 부르는 그가 참 멋있어 보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었는데, 이 노래 사실 은근히 어렵다. 흥얼거리다가 가사를 아는 후렴 부분만 목소리를 조금 크게 내어 함께했다. 킹은 멋있었다. 잘하는 노래는 아니었지만 이곳에서는 그가 제이슨 므라즈였다. 


그리고 이틀 후 늦은 저녁. 숙소 근처 야시장에서 그와 재회했다. 먼저 인사를 건네는 그에게 웃음으로 화답했다. 마치 어릴 때 헤어졌던 죽마고우를 만난 반가움이다. 킹은 작은 동전으로 아이에게 마술을 보여주고, 큰 아이와는 sns를 교환했다. 신기해하며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아이도, 마술의 성공에 어깨가 으쓱한 킹도, 동양인들의 장난스러운 모습을 보며 재미있어하는 서양인들까지. 모두 한 마음으로 웃는다. 이 순간이 즐겁다. 부지런하지 않아도, 목표를 달성하지 않아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 않아도 삶은 그 자체로 유의미하고 강력하다. 충분히 아름답다. 


간디는 "위대한 여행은 지구 열 바퀴를 도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번이라도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여행이다."라고 말했다.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몸이지만 나는 여전히 사춘기다. 늘 여행을 통해 조금 더 성장한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이미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 너무 쌓으려는 것보다 조금은 덜어내며 사는 것도 참 좋겠다 싶다. 노는 게 너무 좋다.



키가 조금은 더 컸으면 좋겠는데 성장판이 닫힌 지는 25년은 족히 넘었을 거다. 어려서 음식 투정을 한 대가니 어쩔 수 없다. 다만 마음의 성장판은 아직 열려있어 다행이다. 나이가 들었어도 염치가 없는 어른들이 부지기수다. 나는 이쁘고 염치있게 늙고 싶다. 세월과 경험, 그리고 여유가 적당히 섞인 얼굴을 가졌으면 좋겠다. 앞으로 더 많이 웃어서 이쁜 주름도 갖고 싶다. 화나 보이는 무표정이 아닌 환해 보이는 유표정을 가지고 싶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더 많이 다니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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