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day 웃어른을 공경하라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다 보면 사람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산책길이나 보도에는 보행자 길과 자전거 도로가 구분되어 있어요. 러닝을 할 수 있는 도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사실 러닝이나 자전거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구분선은 크게 의미가 없어요. 자전거도로로 걷기도 하고, 보행자 도로로 자전거를 타기도 합니다. 위험하긴 하지만 서로 조심하면서 각자의 시간을 즐기지요. 산책이든, 러닝이든, 자전거를 타던지 말입니다.
운동을 할 때 가끔 마주하는 사람들을 보면 조금 특이한 공통점이 있어요. 그런데 그냥 넘기던 그 공통점들이 새삼스럽게 궁금합니다. 생각해 보면 어르신은 선뜻 먼저 길을 내어주시지 않아서요. 어르신이 자전거도로를 걷고 있는 보행자 상태일 때도 있고, 제가 러닝 중일 때는 보행자 상태에서 오가며 보도에서 마주하기도 합니다. 산의 좁은 길에서 만나는 경우도 있구요. 언제든.. 길을 내어주는 쪽은 늘 제 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래요. 사실 한두 걸음 정도만 양보하고 길을 내어드리면 되는 것이라 제 입장에서 큰 불편함은 없습니다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조금씩 궁금해지더라구요.
양보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린 것일까? 아니면 서로 양보를 해주다가 부딪혔던 경험이 있으니, 일관된 방향을 유지하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연륜이 쌓일수록 세상의 기준이 점차적으로 스스로에게 옮겨지는 걸까? 아니면 강요하는 공경일까?
순수한 호기심으로써 참 궁금합니다.
얼마 전 비행기를 탈 일이 있었습니다. 탑승 대기 중에 시끌 버쩍한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두 편의 큰 무리가 나눠져 있어요. 한편은 중년을 조금 넘은 남자들 위주의 관광객이고, 또 다른 편은 저의 어머님 정도의 연세가 되시는 시니어 연령의 단체 관광객입니다. 어림 봐도 열 명이 넘는 단체 관광객이네요.
사실은 몇 번의 불편한 기억이 있어, 비행기 좌석에서 그 분들과 조금 떨어지기를 바랐습니다. 탑승이 시작되어 자리에 앉고 보니, 바로 뒷 좌석을 시작으로 어머님 또래의 승객분들이 자리하셨어요. 늦은 밤 시간 비행이라 조금은 마음을 놓았는데, 제 짐작이 조금 틀렸습니다. 제가 앉은 좌석을 쳐가며 박장대소를 하고, 박자를 맞춰가며 6시간을 쉬지 않고 담소를 나누시더라구요. 소음에 질식할 거 같은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새벽 비행이었거든요. 근처의 다른 승객들도 힘들었는지 몇 번 신호를 보냈지만, 전혀 개의치 않으시더군요. 열한 살 둘째 아이가 제게 물어봅니다.
“아빠. 할머니들은 왜 저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음.. 아마 잘 안 들리시니까 더 크게 말씀하시게 되나 봐. 아빠도 사실 잘 모르겠어. 너네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렇지 않으시잖아.”
“아 진짜 아빠가 뭐라고 말 좀 해봐.”
집으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다름을 존중하자. 모두가 같을 수 없다. 는 생각을 되새기고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좀 편안해지기 위해 노력해요. 스트레스를 받아봐야 저만 손해지요. 수화물을 부치고 탑승을 기다립니다.
이번 여행이 조금 특이하네요. 이번에는 술 파티입니다. 술을 참 좋아하는 저조차도 눈살을 찌푸려요. 탑승 수속을 기다리는 시간인데, 조금씩 소음이 커집니다. 모데라토에서 크레센도로 바뀌어요. 갈수록 강해집니다. 아뿔싸. 비엔티엔 공항 탑승 대기실에서 소주를 판매하는군요. 탑승을 기다리던 아저씨들이 삼삼오오 모여 의자에 앉아 술을 마십니다. 눈에 익숙한 초록 소주병과 면세점에서 샀을 법한 위스키가 탑승구 앞 대기실 좌석 밑에 서너 병씩 돌아다닙니다.
“아빠. 아빠도 저렇게 술 마시고 다녀?”
“아니야. 아빤 공항에서 마시진 않지. 공항은 비행기 타는 곳이잖아. 술은 식당이나 술집 가서 마시지. 아마 나 분들도 여행 마지막이 아쉬워서 그러신가 봐.”
처음 보는 광경이었습니다. 어림잡아도 스무 명이 넘는 분들의 얼굴이 모두 빨갛게 달아올라있었어요. 술의 힘입니다. 기분이 업 되면서 목소리도 커질 수밖에요. 탑승하는 승객들에게 농담을 던지고 승무원에게 비행기 속도를 올려달라는 주문도 잊지 않습니다.
탑승 전 입국심사에 긴 줄에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젊은이들에 비해 허리와 다리가 좋지 않으니 조금 더 힘이 들 수 있지만, 아이들 앞에서 새치기하는 모습은 썩 유쾌하지 않아요.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고생하셨을 선배님들에게 우리 아이들이 잘못된 선입견을 갖지 않고, 공경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
친구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염치없는 행동들이 나이를 기준으로 설명되는 것응 아니라는 결론이에요. 소수의 행동으로 전체를 판단해서도 안 되겠죠.
러닝크루라는 이름으로 도로를 점령하고 뛰면서 보행인들에게 불편을 주는 젊은 세대들도 있습니다. 젊다고 새치기를 안 하나요? 기내나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들 역시 다양한 세대들이에요. 층간소음을 유발하는 사람들이 일부 나이에 국한된 것도 아닙니다. 노키즈 존도 있지요.
다만 이제 마흔 중반이 된 저는 늘 염치라는 단어를 생각해요. 제 스스로에게만 떳떳할 것이 아니라 보편적 타당한 사회의 기준으로 타인에게도 떳떳하여 부끄럽거나 체면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려 합니다. 시간이 지나 체력이 약해지고, 근 손실이 생기더라도 염치는 놓지 않으려구요. 사실은 20년 정도가 더 지났을 때 꽃 중년이 되고 싶은 욕심도 가지고 있답니다.
크리스마스 월요일. 선물 같은 하얀 눈으로 덮인 공원에서 썰매를 타고 아이와 함께 눈장난을 칩니다. 마침 지나가시는 어르신 한 분이 그 모습이 좋아 보였나 봐요. 이쁘다며 아이와 저에게 조그만 초콜릿을 두 개씩 쥐어주셨습니다.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고맙다고 웃으며 인사드려요. 입에서 녹는 달콤함이 마음까지 전해지니 그 맛이 더 좋았습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어른을 만나면 웃으며 인사를 하고, 아파트 경비 관리 어르신을 만날 때에는 큰 소리로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드립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보내는 순수한 웃음과 배려만큼, 아이들은 윗 세대 어른들을 공경해야겠지요. 작은 인사와 기본적인 염치를 시작으로 세대 간의 소통이 시작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