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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 Jan 01. 2024

가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

2024년 안녕. 어서 와 반갑다 얘.

<새로> 1979~2023

이름을 적고 그 옆에 생의 시작과 마침의 시기를 적어본다.


모두에게 생일이 있다. 태어난 날을 기념하고 축하하며 행복을 기원한다. 누구에게나 단 하루. 스스로의 탄생을 축하하는 기념일을 가지고 있다. 태어난 것을 축하하는.


모두는 죽는다. 그날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운이 좋게도 모든 꿈을 실현시킨 순간일 수도 있고, 아니면 목표한 고지를 목전에 둔 순간일 수도 있다.


인간은 그래서 기본적으로 행복하지 못하다. 언제 죽을지 알고 있다면, 삶을 조금 덜어내거나 내려놓을 수도 있을 테다. 며칠 후 생을 마감할 것을 알고 있는데, 굳이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주변에게 조금 양보하고 배려해 줄 수도 있을 거다. 회사에 충성했다는 표식으로 받는 승진급에 조금 둔하게 반응할 수도 있을 거고, 12월 31일을 아쉬워하기보다는 벅찬 감동으로 흘려보낼 수도 있을 거다. 누가 뭐라고 나를 자꾸 흔들어도 우선해야 할 내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거다.


평생을 타인의 시선과 기준 속에서 살았다. 회사가 제시한 기준값에서 잘했을 때 칭찬을 받았고, 부족했을 때 위로를 받았다. 최연소 승진과, 전국  평가 1위를 받아봤다. 지점장으로 근무하며 전국 최하위권도 해봤다. 나는 같은 사람인데 어느 때는 S 등급이었고, 또 어떤 때는 C 등급이었다. 조직이 나를 평가했다. 그 평가에 따라 나의 어깨도 들썩였다. 바보 같았다.


살아온 날만큼 더 살 수 있다면 나이 아흔이다. 지금껏 얻었던 행운처럼 앞으로도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무난하게 살아간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니, 술만 조금 줄이면 괜찮을 거야라고 자위하고 살아가면 될까?


남의 시선과 기준에 평가당하는 삶 속에서 상대적인 행복값은 모호하다. 언제까지 남의 시선을 의식할 것인가. 유독 힘든 2023년이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이후로 물리적 어른으로 살았던 지금껏 가장 힘든 한 해였다. 빈약한 마음으로 감내해야 했던 책임감과 의무감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자존감과 질식할 만큼의 열등감으로 회사를 다녀야 했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최근 몇 년의 대가가 찾아왔다고 반성하고 후회했다. 자책했다.


그리고 성장했다.


여행지에서 만난 인도 여성분이 있었다. 세계 곳곳을 여행 중인 20대 여성이었다. 그녀는 두 달 전 가을 한국에 있었다고 했다. 그 여행 기간에 인천에서 부산까지 가는 자전거 종주도 해냈다고 했다. 크게 놀라는 내 반응에 사실은 전기자전거를 이용한 종주였다며 찡긋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조금 샘이 났다. 내 두 다리에만 의지한 채 악전고투하면 종주를 했던 기억이 떠올라서는 아니었다. 한국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몇 경험이 없을 그 황홀한 체험을 이국의 젊은 여성이 해냈다는 사실에서 오는 단순한 시샘이었다. 다음 여행지가 어디냐고 물었는데, 아직 정하진 못했다고 했다. 어딘가 또 다른 이국땅에 있을 거라고만 덧붙였다.


이제는 전환점이 필요하다. 성장을 위한 변곡점이 아닌, 나의 시선과 기준 안에서 하루를 살아갈 여유를 만들어 나가려고 한다. 남의 시선만 의식하다가 죽기엔 삶이 너무 아깝다. 내가 너무 불쌍하다. 해야만 하고,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다.


이제 나에게 가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고통받지 않겠다. 더 이상 남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겠다. 나에게 가치 있는 것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


<새로> 19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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