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뜨려야 할 것

쓰임을 되찾는 일

by 김오늘

자신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은 타인을 구원하는 것이다.

아니, 타인을 구원하려 애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카잔차키스, 『그레코에게 보내는 보고서』


비 내리는 월요일 밤. 우연히 이 문장을 접했을 때 수년전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데미안』첫 구절이 떠올랐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이 구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구원(救援). 넓게는 '고(苦)·위기·결핍의 상태에서 벗어나 자유·완전성·연결의 상태로 이행하는 것'.

어쩌면 구원은 거창한 행위가 아니라 쓰임새를 되찾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다못해 볼펜 하나도 꼭 들어맞는 쓰임새가 있지 않은가.

볼펜이 만년필 행세를 하거나 연필의 부드러움을 흉내낸다면 볼펜의 큰 오사용일터다.


하물며 인간이랴. 이미 태어난 이상 내 꼭 맞는 쓸모가 있을텐데, 그 쓸모를 손에 잡히듯 명확히 하고 그대로 살아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깔끔하면서도 우아할까.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그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먼저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비가와서 그런가. 데미안 주인공 싱클레어의 이 말이 진부하면서도 진부하지 않게 들려오는 밤.


습관적인 나의 목소리조차 내 진짜 쓰임새를 가리는 알껍질일 수 있다는 사실.

비가 그치면 나는 무엇을 깨뜨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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