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을 계수하는 밤

죽음을 기억하면 삶이 선명해진다

by 김오늘

"우리가 지금 이렇게 만나서 수다 떨어도, 집에 돌아가는 길에 죽을지도 모르는 게 인생이야."

내 친구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말이다.


어느날 밤 성경 시편 90편의 한 구절이 내 생각을 바꿔놓은 게 계기였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지혜로운 마음을 얻는 비밀이 바로 '날을 계수하는 것'에 있다는 사실이

메멘토 모리나 카르페 디엠 같은 익숙한 격언들과는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어리석었던 때는,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모든 걸 통제하려 했을 때였다.

상황을 꿰뚫고, 결과를 예측하고, 모든 일이 내 계획대로 진행돼야 한다고 믿었던 시간들.

하지만 그때마다 현실은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예상치 못한 변수들,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 앞에서 결국 마주하게 되는 내 한계.


그런데 죽음을 떠올리면 달라진다. 예전에는 이 단어가 어둠과 절망으로만 다가왔지만, 이제는 오히려 해방감을 준다. 무거운 것들, 얽매였던 것들, 알고 보면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것들이 제거되면서 소중한 것만 남게 된다.


지난주 늦은 밤, 마감에 쫓겨 야근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일이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이 기사가 그렇게 중요할까?'

그 순간 숨이 막히던 느낌이 사라지고 오히려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정말 중요한 것—독자에게 의미 있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었으니까.


죽음을 기억하면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이 순간을 정말 잘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 솟아오른다.

갑자기 펜을 들고 메모하고 싶고, "사랑한다", "감사하다"는 말이 미치도록 하고 싶어진다.


얼마 전 엄마와 저녁을 먹다가도 그랬다. 평소라면 "요즘 어때?" 정도로 넘어갔을 대화에서, 문득 '이런 시간이 언제까지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자 더 많이 듣고 더 다정하게 얘기하게 되었다. 엄마의 손을 잡고 "고마워 엄마"라 말하는 용기도 생겼다.


밤이 되면 더 선명해진다. 어둠 속에서 불필요한 것들이 사라지고, 정말 중요한 것만 남는다.

그래서 나는 밤마다 묻는다. '오늘 하루, 나는 얼마나 나답게 살았을까?'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더 치열하게, 더 진실하게, 더 사랑으로 살겠다는 다짐이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무한한 의미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가장 아름다운 숙제라 생각해본다.


오늘도 나는 죽음을 기억한다. 그리하여 더욱 생생한 내일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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