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거금 5만원

서투르면 뭐 어때

by 김오늘

갑자기 2019년 11월 21일 목요일 저녁이 떠오른다. 글쓰기 강의로 유명한 스타강사의 ‘글쓰기 비법’ 일일 특강에 참여했던 그 하루 말이다.


한 주 앞서 개설한 블로그에 좀 더 양질의 글을 올리고 싶어서였다. 글 쓰는 걸 좋아만 했지 성인이 되고 나서 객관적인 평가를 받은 적이 없기에, 나의 부족한 스킬이든 스타일이든 고집하지 말고 한 번쯤은 특강을 듣는 것도 필요하지 싶었다.


특강 하루 전날, 때마침 비었다던 마지막 한 자리(이럴 땐 꼭 마지막 한 자리가 비어있다)를 거금 5만원을 주고 차지한 뒤 전화를 걸어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러니까 커리큘럼이 포스터에 나와있는 거 맞죠?

1부는 문장구성법과 글 잘 쓰는 비법, 2부는 다양한 예문과 사례"

"네, 그리고 강사님의 책도 드려요"

"(그 책은 안 땡기지만) 네, 알겠습니다"


21일 저녁 7시가 되었다. 책상 위에는 강사의 신간이 놓여 있었다.

강사는 들어오자마자 출석을 불렀다. 그런데 내 이름이 없다!


"이름 안 불리신 분?"

"저요!"

"나가주세요"(다짜고짜)

"......"

"농담이고요, 그런데 왜 이름이 명단에 없지?"

"(분한 마음에) 저 정말 나가려고 했는데...착오가 있었겠죠? 돈은 입금했거든요"

"네 잘오셨어요"


정말? 정말로 내가 잘 온 걸까? 내 돈 거금 5만원을 주고도 도강하는 듯한 찜찜함을 안은 채 강의가 시작됐다. 그런데 이게 웬일. 비법과 예문은 어디 갔는지 강사는 온통 자기 자랑뿐이었다.


"한국을 넘어 뉴욕에서도 곧 클래스를 연다"는 것과 포항에서 기차 타고 오신 분이 "지방에서도 강의해주세요" 하자, "지금 뉴욕 가는데 지방이 무슨 말이에요, 저는 지방에는 안 갑니다..." 그리고 자신을 통해 책을 출판한 사람이 수백은 되며, 굴지의 기업가와 유명인사도 찾아와...


알겠구요, 도대체 그 비법과 예문은 어디 있냐구요.

강의 시작하기 전 대뜸 나에게 "오늘 모이신 분들 모두를 대상으로 카톡방을 만들라"고 하실 만큼 의욕 충만하셨던 멋지게 차려입으신 한 신사분도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뭐지 싶으셨는지


"아니 그래서 오늘은 그 비법을 안 알려주는 겁니까?"

"그 비법은 강의를 등록하시면 신세계를 경험하실 만큼 다 알려드리는 거고..."


'울며 노려보기'로 1부는 들었으나 2부 때는 결국 참지 못하고 중간에 나왔다. 포스터에 명시된 1부와 2부는 무시됐으나 포스터에 나오지 않고도 신성시되는 3부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강사의 글쓰기 특강을 기존 600만원에서 30% 할인된 가격으로 등록할 수 있는 시간.


2부 중간에 나오는 길에, 뒤통수로부터 들려왔다.

"할인된 가격이므로 오늘 등록해야만 하는 거고, 8명 소수 정예여서 이미 자리가 많이 없습니다..."


그놈의 자리가 또 그 정도밖에 안 남았구만.


혼자 터벅터벅 버스 정류장을 향해 가는데 손에 강사의 책이 들려있었다. 그 와중에 챙길 건 다 챙겨왔네.

목차만 언뜻 보아도 40대 남성이자 가장인 사람들을 겨냥한 책이었는데, 30대 여성인 나는 결국 이 책을 5만원 주고 산 꼴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생각했다.(꼭 이럴 땐 찬바람이 불더라)


비법을 찾아 헤맸지만 정작 배운 건, '서투르면 뭐 어때, 그게 나인걸'.


에잇 몰라. 내 글은 그냥 내가 알아서 쓸게요. 그게 진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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