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멋져

커리어우먼에 대한 고찰

by 김오늘

다른 사람은 모르는, 나만 아는 나의 모습. 아니, 나도 잘 몰랐던 나의 모습이 갑자기 튀어나올 때는 당혹스럽다. 그 모습이 멋지지 않을 땐 더욱.


"뭘 그리 아는 척, 잘난 척을 못해서 난리냐고"

"이 시간을 그냥 흘러보내도 안 죽어. 괜찮아"


오늘 딱 그랬다. 부서 전체 회의 때, 나와는 상관없는 민망한 분위기. 선배라는 타이틀 때문에 죄인인 양 앉아 있기 싫어 상황을 파악한 척했다. 소규모 회의에선 어쩌다 반응이 좋았던 아이디어를 굳이 내 입으로 다시 끄집어내며 감 좋은 척했다. 1등으로 출근했고 퇴근시간이 지나 당당히 나가도 됐지만, 늦게 남아 있는 후배를 보니 나가기 뭣해서 바쁜 척했다.


안 멋져. 이 나이에도 안 멋져.


중학교 2학년 때 지금 내 나이가 됐을 무렵의 나를 상상한 적이 있다. 얼마나 멋진 커리어우먼이었는데.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시선이 집중되고, 칼같이 퇴근하면서도 누구 하나 뭐라 안 하고, 후배에게 먼저 "힘들면 말해"라고 건네는 여유로운 사람. 그런데 실제 나는 하루에도 '척'을 세 번씩 하는 그냥 우먼이었다.


내가 보는 나의 모습이 멋지지 않을 때는 얼마나 외로운지. 나도 내 편이 되지 않으니 얼마나 외롭겠는가.

이 외로움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 서로 간도 빼줄 수 있는 누군가가 옆에 있어도 그 외로움만큼은 어쩔 수 없다.

이건 나만이 할 수 있다. 나와 나의 신의로. 내가 나에게 부디 그래주기를 바라는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믿음,

그렇게 살아내는 하루하루만이 그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집 앞 신호등을 건너는데, 얼핏 봐도 자신 몸무게의 1.5배는 되는 짐을 지며 한걸음 한걸음을 매우 힘겹게 내딛고 있는 사람이 내 곁을 천천히 지나갔다.


순간 그는 온몸으로 부딪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척' 따위는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없는 듯이.


나를 극복해간다는 건, 성장해간다는 건

덧씌운 '척'에서 날것의 '생'으로 나아간다는 것.


내가 중학교 때 그렇게 바랐던 커리어우먼은 어쩌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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