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켈러

일상을 처음 보듯

by 김오늘

스마트폰을 치우고 고요하게 있고 싶을 땐 헬렌 켈러가 쓴 에세이를 떠올린다.


초등학생 때 읽었던 <헬렌 켈러>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와 함께 지금도 나에게 영감을 주지만, 유독 헬렌 켈러의 문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목소리가 내 안에서 더 뚜렷해지는 듯 하다.


10대 시절 나에게 헬렌 켈러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몇 안되는 여성 주인공 중 한명이었다. 사명감이 타오르던 20대에는 설리번 선생님을 더 좋아했더랬다. 시간의 소중함을 절감해서일까, 30대가 되자 하루를 대하는 '어른' 헬렌 켈러의 조언이 잔잔하게 다시금 생각났다. 위인도 장애를 가진 여성도 아닌, 성인이 된 한 인간으로서의 목소리.



"내일 내가 눈먼 자가 될 것처럼 눈을 사용하라.

내일 내가 귀가 멀어질 것처럼 음성의 음악을, 새의 노래를, 관현악의 장대한 선율을 들어라.

내일 촉각이 마비될 것처럼 만지고 싶은 모든 것을 만져라.

내일 후각과 미각을 영영 잃게 될 것처럼 꽃의 향기를 맡고 음식을 음미하라. 모든 감각을 최대한 활용하라."

-헬렌 켈러,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처음 이 문장들을 읽었을 때 무언가에 맞은 듯했다. 한글자 한글자가 너무 아까워 책을 덮고 조심스레 다시 펴서 천천히 읽어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서는 혼자, 시각을 최대한 활용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장님이라는 결론을 (감히) 내렸다.

물리적으로 장님이라 할지라도 자신만의 시각을 최대치로 이용할 줄 안다면 장님이 아닌 것이다.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내일 갑자기 장님이 될 사람처럼 하루를 살고 싶다.

내일 갑자기 장님이 될 사람이라면 현재 주어진 시간, 재능, 물질, 마음, 관계, 눈, 코, 입 등을 나는 어떻게 사용하게 될까.


이건 단지 감상적인 게 아니다.


사실 나는, 우리 모두는 정말로 '내일 갑자기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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