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초심자=새로움
"언제나 초심자 같은 마음가짐으로 매 순간 새롭고 신선하게 인식할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한 경지를 맛본다." - 조지프 골드스타인
이 문장을 처음 만난 건 2020년 4월이었다. 내 친구가 차장님으로 불리던 그때, 나는 '수습' 직원이었다.
단단히 각오한 시작이었다. 말 그대로 수습이니 뭐 더 할 말이 있겠는가. 그리고 그 누구도 수습에겐 큰 걸 기대하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놈의 못된 자아는 마치 내가 내 친구만큼 차장급은 되는 줄 알았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거절감에 대한 두려움은 '수습 주제에도' 조금도 사그러들지 않았다.
그날은 유독 누구에겐지도 무엇 때문인지도 잘 모르면서, 짜증이 났다. 심지어 억울하기까지 했다.
전화기를 들어서 신세한탄을 해볼까. 아니, 내가 왜 신세한탄을 하지? 내 선택이었잖아. 몰라, 그래도 오늘은 마구 말하고 싶어. 그런데 무슨 말을 하지.
에잇, 말이든 방구든 찰떡같이 알아들을 사람은 어떻게든 알아듣겠지.
한껏 친구에게 주절주절하고 나서야 깨달았다(인정 안 될 땐 그렇게도 안 되더니만, 꼭 이런 타이밍엔 급속도로 되더라...)
나는 아주 복이 터진 사람이라는 것을.
늦은 시작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수습 단어가 떼어지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시켜만 달라고 한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발 디딜 곳이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알아차려야 할 것은 '누구에게 짜증이 나는가, 무엇 때문에 억울한가'가 아니라—
수백 개의 계단을 지나고, 수백 장의 페이지가 채워져,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다는 것. 드디어 도착했다는 것.
그때의 깨달음은 지금도 유효하다.
내년 이맘때, 후년 이맘때, 그때의 자리가 어디일런지 당장은 알 수 없어도 오늘 잘 서 있어야 그때에도 잘 서 있을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러나 '매일매일' 알아야겠다.
그리고 알아차려야겠다. '뭐든 열심히! 무엇보다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라던 나의 첫 마음을.
언제나 초심자 같은 마음가짐으로, 매 순간 새롭고 신선하게 인식할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한 경지를 맛본다고 했던가.
2020년에도 수습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인생 수습 중이다.
상관없다. 까짓거 죽을 때까지 새로움을 정기구독 하지 모.
갑자기 마음이 싱그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