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함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20대 초반의 솔직한 고백
나는 늘 스스로를 설명하려 애써왔다.
그 설명은 시험지 옆에 쌓인 노트 더미 속에도,
밤새 써 내려간 글 속에도,
혼잣말처럼 흘러나온 질문 속에도 숨어 있었다.
얼마 전, 병원에서 나는 F32.2, F42.0.
즉, ‘중증 우울증’과 ‘강박사고’라는 진단을 들었다.
반년 가까이 약을 먹으며 살아가고 있고,
그 이름들은 사실 오래전부터 내 삶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40만 원이 넘는 종합심리검사 결과지는 나를 또 다른 방식으로 설명했다.
숫자로는 평균보다 높았지만,
그 안에는 예민한 감각과 쉽게 흐트러지는 집중력이 함께 담겨 있었다.
HSP, ADHD라는 이름이 덧붙었지만,
이런 단어들이 나를 온전히 말해주지는 못했다.
다만 흩어져 있던 기억과 행동들이 조금씩 맞물리며,
“왜 나는 늘 모순적인가”라는 질문에 작은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을 뿐이다.
나는 이해하려는 사람이었다.
모두를 이해하려 하였지만,
정작 가장 근처에 있던 사람조차 이해하지 못하였고,
그래서 결국 누구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실패한 건 나였고,
그 탓을 스스로에게 돌리며 끝없는 자책의 회로 속에 갇혔다.
“네가 부족해서야.”
그 말이 내 안에서 반복되며, 나는 점점 더 작아졌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심했다.
SNS 속에서 더 멋져 보이려 애쓰고,
화려하게 포장된 모습으로 라면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겉모습과 내면의 괴리가 커질수록,
오히려 더 깊은 자책의 늪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아주 작은 전환점들이 내게 다가왔다.
어떤 한 문장, 누군가의 짧은 말, 오래 잊었던 기억 하나가 불쑥 떠올라 나를 붙잡아주었다.
완전히 나은 건 아니지만,
다시 살아낼 수 있다는 감각을 조금씩 되찾았다.
나는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앞으로도 내 삶은 모순으로 가득할 거라는 걸.
어제의 나를 용서하지 못하다가도,
오늘의 나는 또다시 글을 쓰며 살아가려 할 것이다.
흉터와 흔적이 남더라도,
그것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실 자체가 나의 기록이 된다.
그래서 이 글은 단순한 고백이 아니다.
이것은 결핍의 기록이다.
부족해서 멈춘 게 아니라,
부족함을 껴안으며 겨우 버텨온,
평범할지도 모르는, 한 대학생의 흔적이다.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듯 흔들리면서도,
결국 이 삶을 끌어안고 가겠다는 다짐.
누군가는 이 시간을 그저 사춘기라 부를지 모르지만,
나는 알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처음으로 나를 위해,
나로서 살아가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잘 안다.
이런 글은 오직 20대 초반, 아직 자존심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는 나이기에 쓸 수 있다는 것을.
결핍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고백하기란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이제,
비판과 공감 모두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 같다.
나는 불완전하다.
그리고 이제는 그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기로 했다.
그건 회피보다 훨씬 어렵지만,
그래서 가장 솔직한 선택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고백한다.
나는 모순투성이여서,
어떤 날은 죽을 만큼 감정을 쏟아내고,
또 어떤 날은 아무렇지 않게 웃는다.
그러나 그것은 가식이 아니다.
마치 계절이 비바람과 햇살을 번갈아 보여주듯,
내 안의 솔직함도 극단을 오가며 다른 얼굴로 드러날 뿐이다.
그 변화무쌍함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결국 이 기록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닿아,
불완전함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작은 증거가 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