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점검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볼까' 싶은 일도 많았습니다.
1. 강원도 B 군
살면서 이곳을 갈 일이 있을까 싶었던 지역으로 점검을 갔습니다. 유명한 리조트와 놀이시설이 하나 있는 지역이었는데 그 사업체를 중심으로 점검할 계획이었습니다. 이곳 역시 역시나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직원들만이 돌아다니는듯했습니다.
점검했던 다른 지역과 달리, 여기는 도청에서도 담당자가 나와계셔서 조금 의아했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너무 부담스럽게 존대를 하셔서 부담스러웠습니다. 업체 담당자분이 방역 현황을 설명해 주겠다고 하여 안내에 따라서 어떤 방으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너무 놀랐는데, 무슨 대기업 이사회처럼 넓은 회의실에 20명 정도의 직원이 일어나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가장 높으신 것같이 보이셨던 분이 계셨는데, 사장님인지 아닌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오시느라 고생하셨다'라며 자리에 가장 중간에 앉으라고 하셨습니다.
문전 박대하던 사장님들만 만나다가 이런 대우를 받으니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당황하지 않고 익숙한 척 앉아서, 최대한의 위엄을 가지고 사장님 같아 보이는 분과 몇 마디 이야기를 잠시 나눴습니다. 그 후 방역 책임자의 프레젠테이션을 몇십 분간 들었습니다. 바보처럼 보일까 봐 좀 부담스러웠지만, 방역 체크리스트를 보며 전문적인 척 코스프레를 하며 방역 관련하여 이것저것 물어봤습니다.
그 후에 또 현장을 보여주겠다며 시설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는데, 회의에 참석했던 20명이 학익진을 펼치며 제 뒤를 따라오길래 잠시 재벌 회장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이때 약간 공무원 뽕이 살짝 올라왔던 것 같습니다. 괜히 별것도 아닌 부분인데 '저건 뭐냐 이건 왜 이렇게 했냐' 물어보기도 하기도 했네요.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셨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가면 뭔가 그분들이 어이없어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성대한 배웅을 받으며 점검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렇게 점검을 마친 후, 한 군데를 더 갔어야 해서 조그마한 사업장 하나를 또 방문했습니다. 여기서는 역시나 사장님은 저를 보는 듯 마는듯하셨고, 바쁘니까 다 봤으면 가라길래 지적할 것도 없고 해서 나왔습니다. 역시나 공무원의 뽕은 한순간이었습니다.
2. 경기도 A 시
경기도에 군사 접경 지역 중 한곳으로 간 적이 있습니다. 대중교통도 없어서 차로만 4~5시간에 걸쳐서 출장을 갔습니다.
출장 전에 지자체 분과 통화를 하고 갔었는데, 뭔가 말투와 목소리가 익숙하다 했더니 몇 달 전에 지자체 지원 사업 때문에 회의에서 잠깐 뵈었던 분이셨습니다. 그 당시 인상에 강렬하게 남았던 게, 진심을 다해서 지자체 홍보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첫인사부터 명함을 주시면서 "ㅇㅇ의 도시! A 시!"라고 외치셔서 깜짝 놀랐었거든요.
이번에도 역시나, 식사를 같이 하면서 우리 A 시가 '미스터 트롯 누가 태어난 도시'고, '이런 아이템을 가지고 보조금 지원 사업에 참가할 생각인데 어떠냐', '우리 지역 관광지 어디어디가 좋다 나중에 꼭 오시라' 등등 지역에 대한 사랑이 넘치셨습니다. 이 정도로 열정적인 공무원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튼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하며 괜히 반가웠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점검 지역으로 이동했는데, 접경 지역이라 그런지 38선을 넘나들며, 여러 대의 탱크와 마주치면서 이동했습니다. 이번 점검은 대부분 넓은 공터가 있는 유원지를 점검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점검하는 곳마다 넓디넓은 공간에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누가 봐도 코로나 청정지역이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을 위한 안내문과 스티커만 붙어있을 뿐이었습니다. 사람과 거리를 좁히고 싶어도 좁힐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냥 '이런 것들이 잘 붙어있구나'만 쓱 보고 다녔습니다. 간간이 등산하고 내려오시던 분들만 계셨습니다.
돌아다니면서 가장 어이없었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 당시 방역 강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시행된 '방역 일자리'라는 사업이 있었습니다. 그 사업으로 채용된 두 분이, 사람도 없는 그 넓은 공터 중간에서 멀뚱하게 마스크를 쓰고 앉아있었습니다. 그분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4명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무도 없는 공터에서 코로나 방역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 있는 두 명과, 방역을 잘 하고 있는지 점검한다고 이곳까지 출장 온 저와 지자체 담당자... 어디서부터 잘못된 아이러니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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