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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nobby Nov 21. 2024

공노비와 코로나(3)

공노비의 애처로운 크리스마스

공무원과 코로나 마지막 편입니다. 점검 중에 있었던, 가장 애처로운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1. 강원도 ㅇㅇ군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또다시 강원도 쪽으로 점검을 나섰습니다. 야외에 있는 유원지를 점검해야 했는데, 평일 낮에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또 사람 없을 것 같은데...' 하면서 4시간 운전을 하여 점검지에 도착했습니다. 


지자체 담당 주무관님을 만나 같이 이동을 했습니다. 지자체 분을 만날 때마다 항상 같이 한탄이 섞인 이야기가 오갔던 것 같습니다.


: ㅇㅇ시에서는 코로나 지원금 마련한다고 출장비랑 유류비를 삭감해 버렸더라고요.. 점검하러 가는데 출장비도 못 받고 기름도 본인 돈으로 내는데, 좀 너무하지 않나요..


주무관님: 어휴 거긴 좀 심하네요. 저희는 아직 그런 상황까지는 아닌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다른 건 모르겠고 주말에 좀 제대로 쉬었으면 좋겠네요.


: 얼마 전에 서울에 다녀왔는데, 입사한 지 한 달 되신 분이랑 같이 다녔거든요? 한 달 동안 2일인가 3일밖에 못 쉬었대요. 사람이 얼이 빠졌던데... "그만두는 게 맞겠죠?" 하면서 저한테 상담하더라고요..


주무관님: 에효 불쌍해라. 왜 이럴 때 들어와 가지고... 아니다 그냥 쓴 맛 빨리 보고 그만두는 것도 나쁘지 않죠.


: 아 오히려 좋죠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 점검지에 도착했습니다. 역시나 손님은 없었고 심지어 직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방역을 위한 현수막과 스티커만이 군데군데 붙어있었습니다. 이것저것 보면서 사장님이 계시는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컨테이너 박스 안에 있는 아늑한 사무실이었는데, 오랜만에 보는 난로가 신기했습니다. 사장님은 잠에서 막 깨서 저희를 맞이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인상도 좋으시고 웃으면서 맞이해 주셨는데, 조금은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사장님이 시설 여기저기를 데리고 다니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생각보다 규모가 컸고, 심지어 군데군데 큰 동물들도 많았습니다. 케이지 안에 있는 동물들도 불쌍했지만, 이 커다란 시설과 동물들을 유지하고 관리하면서 손님이 없어서 힘들어하실 사장님이 더욱 안타까워졌습니다. 


공무원이 힘들다 해도 이런 시기에 그래도 꾸역꾸역 살아갈 순 있는데, 너무 불만만 많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금 주무관님과 나눴던 대화가 부끄러워졌습니다.


사장님과 주무관님이 저를 앞서가면서 두 분이서 대화를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주무관님: 어릴 때 여기 자주 왔었는데... 예전만은 못하시죠?


사장님: 그렇죠.. 뭐 코로나도 그렇고, 이젠 사람들이 예전만큼 안 오죠..


주무관님: 그러게요.. 좀 안타깝네요.


사장님: 뭐 어쩌겠어요.. 이제 그만하고 쉬려고요.


주무관님: 아 얼마 전에 부지 내놓으셨다고 들었어요. 어느 정도 될 것 같으세요?


사장님: 맞아요. 얼마 전에 보니깐 한 300억 되겠던데


나:...? ㅋㅋ


2. 부산 ㅇㅇ구


크리스마스 시즌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크리스마스이브날, 부산으로 코로나 점검을 가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약속이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양해를 구하고 크리스마스 날로 약속을 미뤘습니다. 낮에 점검을 하면 괜찮았을 텐데, 굳이 야간에 점검을 하라고 하더군요. 자고 와야 할 것 같아서 부산에 숙소까지 예약했습니다.


이브날 부산에서 혼자 있을 생각을 하니 처량했지만, 그냥 부산 여행하는 마음으로 갔다 와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일찍 부산에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풀고,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여행 기분을 냈습니다.


저녁 9시쯤 근처 지하철역에서 지자체 담당자분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대규모 점검이었나 봅니다. 다른 부처에서도 몇 명이 오셔서 6명 정도가 팀을 이루어 점검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밤에 주로 영업을 하는 노래방이나 술집 등을 여러 군데 점검을 하며 다녔습니다. 그리고 11시를 넘어갈 때쯤, 지자체 주무관님이 조금 난감한 투로 말을 꺼냈습니다.


주무관님: 아까 민원이 들어왔는데, 최근에 방역수칙 어기고 몰래 여러 사람을 들여서 영업하고 있는 술집이 있다고 하네요.. 지금 거길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시간이 오래되어서 다들 집에 돌아가실 수 있을지...


점검팀: 아 괜찮습니다. 어차피 늦었어요^^


주무관님: 너무 죄송하네요... 일단 출발하겠습니다.


해당 술집 앞에 도착해서, 시동을 끄고 잠복근무를 하는 것처럼 대기했습니다. 지자체 주무관님이 혼자 나가서 주변을 살펴보고 오시더니 안에 사람들은 있는 것 같은데 문이 안 열리고 사장님도 전화를 안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둠 속에서 어떤 사람이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는데, 주무관님이 보시더니 '아 저분 사장님이네요'하면서 혼자 뛰어갔습니다. 다들 그 상황이 어리둥절하기도 했고 뭔가 위험할 수 있는 상황 같기도 해서 우물쭈물하다가 다들 뛰어나갔습니다. 


어두운 건물 속을 들어가는데 경찰이 된 것만 같아 무서우면서도 신기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안에서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습니다. 술집 안에는 크리스마스 풍선이 벽에 붙어져 있고, 할머니 한 분이 루돌프 뿔 머리띠를 하고 계셨고, 사장님과 다른 성인 한 분 그리고 아이 한 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애들이 보는 TV프로그램이 틀어져있었습니다.


술집 사장님: 뭔 사람이 이렇게 많이 왔어요?? 그냥 가족모임하고 있는데


지자체 주무관님: 아 죄송합니다... 여기에서 방역수칙 어기고 영업한다는 민원이 오늘 들어와서...


술집 사장님: 크리스마스라고 그냥 가족끼리 모인 거예요. 갑자기 또 4명 모이지 마라고 할까 봐 동생은 부르지도 못했어요 주사님!!


지자체 주무관님: 아 죄송해요 사장님. 민원이 들어오면 어쩔 수 없이 와 봐야 해서 왔어요.


술집 사장님: 또 저기 그 집에서 민원 넣었겠구먼, 어휴 좀 같이 살아야지 왜 저러는지


지자체 주무관님: 가족모임 하시는데요 죄송해요 저희 그만 가보겠습니다.


술집 사장님: 그래요 고생이 많으시네... 메리크리스마스 하세요


건물에서 나온 후, 다들 어이없어하면서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모두 고생했다고 메리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습니다.


지하철 막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 혼자 치맥을 하면서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 서둘러서 집에 도착했습니다. 씻고 바로 나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문자가 왔습니다.


같은 사무실에 계신 분이 코로나 확진이어서, 코로나 검사를 하라는 겁니다.^^


결국 하루 미뤘던 크리스마스 약속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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