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근무하는 중, 어느 순간부터 출퇴근을 할 때마다 옥외 현수막이나 광고판에 '잼버리'라는 단어가 눈에 계속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볼 때마다 '잼버리가 대체 뭘까?' 궁금했지만 찾아보진 않았습니다.
며칠 뒤부터 인터넷에도 '잼버리'라는 단어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회사 주변에 스카우트복을 입은 외국인들이 단체로 돌아다니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잼버리가 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며칠 뒤 '잼버리'는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는 하나의 사건이 되어갔습니다. 처음엔 잼버리 관련 뉴스를 보면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 일이 이지경까지 온 것에 대해 어처구니없어 하면서도, 담당 공무원은 지금 어떤 기분일까 상상하면서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잼버리 행사가 거의 파행 수준이 되자, 그 여파가 아무 관련도 없는 저에게까지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영어 회화가 능통한 인원들을 일주일 간 파견 보내달라'
애초에 공무원 중에 영어회화가 자연스러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기관 안에서 공무원 중에 그나마 영어를 할만한 사람이 저라고 생각했는지 사무관님이 '네가 갈래?'라고 했지만, 일주일 동안 자리를 비울 수는 없어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이 말했더니 바로 수긍하셨습니다.
고심 끝에 해외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직 분들이 파견 대상으로 지목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근로시간이 주 52시간을 넘어서 공무직은 파견을 가는 게 어려울 것 같았고, 공무직 분들께 이런 동원 형식의 일을 부탁하기 어려워서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래도 공무직분께서 흔쾌히 가시겠다고 하셨고, 근로시간 문제도 그냥 어찌저찌 해결되어 파견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끝난 줄 알았더니 며칠 뒤에는 잼버리 대원들이 전북이 아닌 서울에서 K-pop 콘서트를 관람하게 되어, 이에 대응하는 범정부 대책 회의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업무 분장 상 제가 가야 할 게 아닌데 갑자기 가라길래, 무슨 역할인지도 제대로 모른 채 기관 대표로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엄청난 규모의 회의였습니다. 회의 장소에 거의 100여 명 가까이 모였던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공무원 조직들이 다 모여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실장급 공무원이 회의를 주재했고, 경찰, 소방에서부터 각 부처 소속 공무원, 뮤뱅 담당자, 근처 시설과 주차 관리 담당자까지 모두 모였던 것 같습니다.
이틀 앞으로 다가온 K-pop 콘서트 관련 대책 회의였는데, 콘서트 하나에 '왜 이렇게 유난일까' 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계획이었습니다. 애초에 콘서트 이틀 전에 구체적으로 정해진 계획이 없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것이었고, 버스 1,500여 대를 서울 한복판에 특정 시간대에 수용해서, 4만 명이 넘는 인원들을 안전하게 콘서트장에 배치하고, 다시 당일 저녁에 1,500여 대의 버스에 4만 명을 싣고 각자의 숙소가 있는 지방으로 안내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국가별 콘서트장 관람석 배치와 입장, 퇴장 순서, 간이화장실, 무대 등 공사 순서, 안내 및 보조 배치, 잼버리 대원들 식사와 물과 선물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것들을 어떤 식으로 배부해야 하는지, 주변 교통 통제는 어떻게 할지,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버스 인솔 및 인식 방법, 잼버리 옷을 입고 몰래 들어오려는 일반인을 어떻게 구분하여 통제할지, 태풍 등 안전 대책 등등 거의 대부분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고, 이 모든 게 그 회의 장소에서 정해야 했습니다.
가장 문제였던 것은 버스를 어떻게 주차할지였습니다. 말이 1,500대이지 제대로 된 계획이 없다면, 엄청난 혼란이 초래됩니다. 실제로 회의 며칠 전에, 새만금 야영장에서 잼버리 대원들을 싣고 각 지역으로 1,500대의 버스가 출발했는데, 그 한적한 지역에서 모든 버스가 출발하는 데에만 12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합니다. 밤을 새우고 새벽 6시 넘어서 모두 끝났다고 들었습니다. 새만금에서도 그랬는데, 서울 한복판은 오죽할까요?
버스 주차 관련해서 2가지 안을 놓고 아주 심각한 토론이 이어졌고, 회의장에서 고성이 오가다가 결국 콘서트장 근처에 최대한 공간을 확보하고, 버스를 최대한 밀착 주차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참 인상 깊었던 게, 회의를 주재하는 가장 높은 공무원이 회의 후에, 주차장을 관리하시는 분과 1 대 1로 논의하면서 세부적인 주차 방안을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정말 현장 중심 행정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공무원 생활 중 처음 본 것 같습니다.
회의가 끝났고, 우리 기관에서는 주차 관련해서 지원 인력을 파견하는 것뿐이어서 큰 부담 없이 돌아갔습니다. 사무실에 복귀한 후, 과장님께 상황을 설명드리고 파견 인력을 정했어야 했습니다. 과장님이 그래도 회의 갔다 온 사람이 파견 가야 되지 않겠냐 했지만, 당시에 일이 정말 많기도 했고, 이건 가면 정말 개고생일 것 같아서 절대 안 가겠다고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과장님 말에 무조건 복종했던 2년 차 공무원과 짬먹은 7년차 공무원은 달랐습니다.
결국 남자분들 몇 분이 주차 지원인력으로 파견을 가셨고, 자정을 넘겨서 끝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행사가 원활하게 끝났는지, 일찍 파견이 끝나서 다행이었습니다. 당시에 업무 때문에 혼자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고 있었는데, 저녁을 먹으며 휴대폰으로 잼버리 콘서트를 보던 게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