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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노비와 메타버스

by freenobby

매년 기재부에서는 경제정책방향이라는 계획을 발표합니다. 내년에 어떤 부분에 예산을 투입하고 활용할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계획입니다.


2022년 경제정책방향에는 다양한 키워드들이 들어있었지만, 가장 주목받았던 것 중 하나가 '메타버스'였습니다. 그전까지 대강 '메타버스'가 무엇인지만 알고 있었는데, 경제정책방향에 메타버스가 들어간 순간부터 모든 기획 자료에 '메타버스'가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몰랐던 많은 공무원들도 '멧타뻐스, 멧타뻐스'하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발음하는 것을 보면 메타버스의 철자나 어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경제정책방향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계획하면, 기재부에서 예산을 증액해 줄 명분이 생기기 때문에, 많은 신규 사업 계획서에는 '메타버스를 활용한 디지털 전환...' 등등 보기 좋은 말로 뒤덮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동안 메타버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공무원 조직에서 갑자기 메타버스를 활용하겠다고 하는데, 이게 정말 효과가 있는 방향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물론, 메타버스와 관련된 원천기술 개발을 지원한다든지, 관련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야 당연히 필요한 것이겠지만, 공무원 조직에서 기획하고 공공기관이나 관련 업체를 통해서 메타버스 플랫폼이나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계획은 너무 허황되어 보였습니다.


메타버스 플랫폼은 이미 국내에서는 네이버가 만든 제페토, 해외에서는 로블록스라는 플랫폼이 자리를 잡은 상태였고, 콘텐츠 역시 그 플랫폼 안에서 창의적인 개인들이 활발하게 생성하고 있었습니다.


대체 누가 관공서에서 만든 플랫폼을 활발하게 활용할 것이며, 질적인 측면을 담보할 수 있는지, 굳이 메타버스를 활용해서 해야 하는 일인지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메타버스를 활용한 디지털 전환...'이라는 문구는 경제정책방향과 코로나 시국이라는 시기적인 당위성이 합쳐져서, 어떠한 의문도 이를 제지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관리하던 사업 안에서도, 기존에 사업을 운영하고 있던 보조사업자(공기업)가 메타버스를 활용하여 사업을 확장한다는 계획하에 증액하겠다는 내용을 사업계획서에 여기저기 박아 놓았습니다. 이걸 굳이 왜 해야 하는지 따져 물어보기도 했지만, 결국 보고서에 쓰기 좋은 말이라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메타버스를 활용한 사업 계획은 여러 사업에 반영되어 증액이 되었고, 이러한 추세는 다양한 기관과 지자체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역시나 결과물은 초라했습니다. 관리하고 있던 사업 안에서는 비교적 소규모 예산으로 메타버스 플랫폼을 만들었습니다. '바람의 나라' 게임만도 못한 옛날 게임 형태의 플랫폼이 만들어졌고, 그 안에서 관계자들이 네트워킹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냥 줌(zoom)으로 해도 될 일인데, 굳이 사람들이 여기서 만나서 소통해야 하는지 싶었지만, 나름 메타버스를 활용한 성과라고 하여 이벤트도 열고 캡처해 여러 성과 보고서에 집어넣었습니다. 보고서 만들기에는 좋더라고요.


그 시기와 겹쳐서 여러 지자체와 기관에서 '우리도 메타버스 만들어서 회의했다!, 메타버스를 활용해서 홍보했다!' 등등 다양한 보도자료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서울시 메타버스를 포함해서 대부분 1~2년도 못 버티고, 사용자 수가 적어 서비스를 종료하더군요. 그나마 효과가 있었을 법한 사업은,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제페토나 로블록스 안에서 홍보마케팅을 하는 사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모두가 몰랐던 것일까요? 전국적으로 메타버스 플랫폼, 콘텐츠 개발에 최소 수백억은 투입이 되었을 텐데, 이러한 결과를 아무도 예상을 못 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저 '예산 확보'라는 목표하에, 합리적인 판단은 고려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메타버스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지자체에서 개발하고 운영을 시도했던 배달 앱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만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절대 추진되지 않았을 사업이 그저 '예산 확보'라는 맹목적인 목표와 '정책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추진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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