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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노비와 예산편성(2)

정부안과 예산국회

by freenobby


5월, '우리 부처에서는 이렇게 예산을 요구합니다.'라고 하는 부처안이 기재부로 넘어가면 기재부에서 예산심의를 시작합니다.


첫 번째 관문은 기재부 담당자에게 부처안 예산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약 4~5명의 기재부 담당자가, 기준에 따라 많게는 수 천 개에 달하는 사업을 담당합니다. 담당자에게 전체적으로 한 번 설명하는 데에만 3~4일 걸렸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기재부 예산 담당자들은 1~2년 정도만 일하고 떠나기 때문에, 거의 매년 새로운 기재부 담당자가 다시 모든 사업을 익히게 됩니다. 새로운 사람에게 다시 모든 사업을 설명해야 하는 입장에서도 힘들지만, 단기간 내에 새로운 사업을 익혀야 하는 그들도 고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습니다. 담당자가 어느 정도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 심의를 할 텐데, 너무 수박 겉핥기식으로 사업을 파악하게 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았습니다.


기재부는 우리나라의 전체 예산을 관리하는 부처이기 때문에, 보통 증액이나 신규사업 건에 대해서 보수적으로 접근합니다. 불필요한 예산을 주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증액이 되거나 신규로 반영된 사업을 위주로 설명하고, 협의하게 됩니다. 사실 증액사업이나 신규사업의 경우에는 조금은 추상적으로 계획된 경우가 많은데, 이런 과정을 거쳐서 조금 더 섬세하게 사업이 다듬어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편, 기재부에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예산을 줄 테니 특정 방향의 사업을 만들어보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재부의 재정정책 방향에 맞는 사업을 증액하기 위함입니다. 조금 추진하기 어려운 사업의 경우에는 거절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다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사업은 예산반영은 쉽지만, 다음 연도 사업 추진 시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합니다.


기재부의 예산심의는 4차 심의까지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기재부 담당자들이 직접 심의하고 확정하는 게 아니라 별도의 심의위원회에서 심의를 합니다. 기재부 담당자들도 그 위원들을 설득하는 입장이 됩니다. 그렇기에 문제가 되는 사업의 경우에는 수시로 자료 요청이 들어오고, 바로바로 대응해야 했습니다. 굳이 왜 그러는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주말이나 밤늦게 자료를 요청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8월 말까지 정부안이 확정이 됩니다. 정부안에 들어가지 못한 사업의 경우에는 또다시 국회에서 반영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했었습니다.


한편, 주무관들은 정부안이 확정되는 시기에 또 신경이 바싹 서야 했습니다. 예산 시스템에 확정된 예산안을 입력해야 하는데, 확정되고 몇 시간 내에 항상 입력을 완료해야 했어서 밤늦게까지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과정이 조금 촉박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부처 담당자나 기재부 담당자의 실수로 예산 시스템에 잘못 반영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단순 실수인데도, 입력 기한이 끝나면 절대 수정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어이없는 이유로 정부안에 반영되지 못해서 국회를 또다시 설득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정부안이 확정되면 9월부터는 예산 국회 업무가 바로 이어집니다. 국회의 예산심의과정은 대체로 '예산 기초자료 요구'→'예산 설명'→'예산정책처 예산분석'→'소관 상임위원회 의결'→'예결위 의결'→'본 회의 의결' 순으로 이어집니다.


국회예산정책처, 야당, 여당 등 국회 내의 다양한 그룹에서 예산 자료를 요구합니다. 똑같은 내용을 3~4개의 각기 다른 양식에 맞춰서 모두 제작해야 하는데, 그 규모가 매우 방대해서 예산자료 작성보다 힘든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몇 년 새 그 양식이 계속 업그레이드되면서, 매우 세세한 부분까지 요구하는 양식으로 발전하여, '정말 너무한 거 아닌가...'싶을 정도였습니다. 어차피 제대로 보지도 않을 거 왜 이렇게 서로 힘들게 하는지 생각했지만, '그들도 사소한 것이라도 무언가를 지적해야 그들의 존재 이유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면서 이해를 하기도 했습니다.


예산정책처에서 먼저 정부안을 분석해서,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를 지적하는 '예산안 분석 자료'를 제작합니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각 당에서는 어떤 부분을 지적해야 하는지 자료를 만들어 각 의원실에 뿌리고, 그에 기반해서 지적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산안 분석 자료'에 부정적인 내용이 들어가지 않도록 노력해야 했습니다. 지적한 내용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설명을 하면 빼주는 경우도 있지만, 분량을 채워야 하는 건지, 담당자가 이해를 했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무시하고 지적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각 당에서는 설명이 필요한 사업 위주로 '사업 설명회'를 엽니다. 사업 설명회를 주관하는 각 당의 공무원들은 예산정책처 공무원과 달리, 당에 속해 있는 공무원들이라 조금 권위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물론 모든 분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좀 심하게 권위적인 분들은 설명회를 한다고 불러 놓고는 부처 담당자의 설명은 제대로 듣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이 예산은 삭감, 폐지'이라고 못을 박고 아무리 설명하려 해도 아예 듣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한 동료분께서 그런 태도에 조금 화가 나셨는지 목소리를 높여 항의하다가 제지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삭감이 될 것 같은 분위기에 있는 사업의 경우에는 각 의원실을 돌아다니면서 의원이나 보좌관, 비서관들에게 사업을 계속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기도 합니다. 보통 여당은 예산을 늘리거나 지키는 데에 협조해 주고, 야당은 예산을 삭감하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편, 반대로 국회에서 예산증액을 협조 요청하기도 합니다. 소위 말하는 '쪽지예산'입니다. 국회의원 본인의 선거구에 예산을 확보해줘야 하기 때문에, 각 부처에 요청해서 해당 지역에 지원할 수 있는 예산을 편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너무 뜬금없이 요청하는 예산도 많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사업도 많습니다.


이런 예산이 갑자기 반영되면, 예산 집행이 잘 되지 않습니다. 결국 결산을 할 때 문제사업으로 지적당해서 담당 공무원만 힘들어집니다. 국회에서 예산을 반영하라 해 놓고, 결산할 때는 도리어 '이런 사업을 왜 반영했냐'면서 스스로를 지적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국회의 상임위원회 심의 전날에는 이런 쪽지예산을 비롯해서 '어떤 사업은 증액 필요', '어떤 사업은 감액필요' 등등 다양한 요구가 한꺼번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런 예산 요구에 대응하는 게 정말 힘듭니다.


심의 전날 저녁부터 밤까지 수 백개씩 요구가 들어오는데, 그 예산 요구서가 메일이나 전산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각 의원실에서 종이에다가 작성해서 국회에 상주해 있는 각 부처 예산 담당자들에게 전달합니다. 그러면 예산담당자들이 그 요구서를 직접 스캔하고 어떤 국이나 과에서 요구서를 처리해야 하는지 분류해서 밤늦게 대기하고 있는 사업 담당자들에게 전달됩니다.


그러면 사업 담당자들은 몇 시간 내에 그 요구에 대해서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등 의견서를 작성해서 예산 총괄부서로 제출해야 합니다. 보통 주무관 사무관 등 실무자들이 사무실에 남아서 자료를 작성하고, 집에서 대기하고 있는 국 과장들에게 보고한 후 처리합니다. 보통 심의 전날에는 최소 저녁 10시에서 새벽 1~2시까지 일을 했던 것 같습니다. 예산을 총괄하는 부서에서는 국회에 상주하면서 밤을 새우곤 합니다.


예산 자료가 모두 정리되면 새벽에 장차관과 실국장들이 모여서 대응회의를 하고, 아침부터 장차관이 심의에 참여합니다. (일정을 좀 늦춰서 여유 있게 하면 안 되는 것인지 아직도 의문입니다.)


상임위원회 심의도 몇 차에 걸쳐서 이뤄지는데, 증액이나 감액이 결정되지 않은 사업은 보류시키고 계속해서 협상하여 결정하게 됩니다.


상임위원회 심의가 끝나면 예결위 심의가 시작됩니다. 상임위원회는 사실 그 분야에 있는 국회의원들이 예산을 증액해서 그 분야를 진흥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예산 증액이나 쪽지예산 같은 신규 사업 반영이 꽤 쉽습니다. 하지만 예결위 심의는 기재부가 동의해야 하기 때문에, 상임위에서 반영된 사업들이 예결위 심의를 통과하기 다소 힘듭니다.


예결위 심의 전날도 상임위 심의 전날과 비슷하게 진행되었던 것 같습니다. 심의 전날에, 문제 사업에 대해서 의견을 작성하는데, 보통 부처에서는 증액요구 건은 대부분 동의를 하고 감액 요구 건에는 반대를 합니다. 반대로 기재부 입장에서는 정부안에 들어있지 않았던 증액사업이나 신규 사업에 대해서는 대부분 반대 의견을 개진합니다.


이 과정에서 좀 어이가 없는 건, 기재부에서 본인들의 의견을 스스로 작성하지 않고, 우리에게 반대의견으로 된 의견서를 작성하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증액에 대해서 찬성하는 입장인데, 왜 반대의견으로 작성해서 본인들에게 내라고 하는지 좀 어이가 없었습니다.(모두가 그렇다는 게 일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특정 담당자의 기행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하튼, 이런 과정을 거쳐서 예결위에서 예산이 의결되면, 본 회의를 거쳐 다음 연도 예산안이 확정됩니다. 국회에서는 11월 말 12월 초에는 예산을 확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당과 야당이 힘싸움을 하면서 버티다가 12월 말에 이르러서야 확정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예산 작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12월이나 다음 연도 1월부터 또다시 그다음 연도 예산 확보를 위해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예산편성 업무는 무한의 굴레였습니다.


공무원이 된 후 거의 4~5년간 예산편성 업무에 관련되어 있다가, 마지막 2년은 예산편성과 무관한 업무를 했었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의미한 숫자 계산과 방대한 자료 작성에 신물이 나는 것도 있었지만 더 좋았던 것은, "이 예산 반영 안 되었으면 좋겠는데 반영해 달라고 사정해야 하는 인지부조화의 상태"를 겪지 않아서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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