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시절 사기업을 다니는 친구들과 대화할 때, 친구들이 가장 놀라 했던 것이 당직근무였습니다. 집에도 못 들어가고 평일엔 3만 원, 주말엔 5만 원 당직비를 받으면서 밤을 새운다고 하면 '야 그래도 공무원이 맘 편하잖아'라고 말하던 친구들이 '아 그건 좀 너무한데..'라고 하며 입을 꾹 닫았습니다.
공무원은 당직을 하면 물론 다음날은 휴무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이 바쁜 경우에는 집에 이틀 동안 들어가지 못하고, 당직 근무 후 바로 출근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당직 근무 후에 당직휴무를 한다는 것은 법령상 선택적인 사항이었고, 의무적으로 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당직 근무 후 바로 퇴근을 하면 눈치가 보였습니다. 실제로 2018년 첫 당직 근무 후에, 아침에 바로 퇴근하겠다고 말하니 사수 사무관님이 복도로 부르셔서 한마디 하셨습니다.
'나는 괜찮은데,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니까 최소한 뭐 하는 척하다가 점심 먹을 때쯤 퇴근해'
그래도 2020년을 넘어가니 일이 없으면 바로 퇴근하는 것도 크게 눈치 보지 않는 문화가 되기 시작했던 것 같고, 제 기억에 2022년에는 선택적이던 당직근무가 약간은 의무성이 부여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로써 당연히 야간 당직근무자가 받아야 할 권리가 보장되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일이 있으면 집에 바로 가는 것은 힘들었습니다.
야간당직근무의 횟수는 기관마다 달랐습니다. 규모가 큰 기관에 있으면 2~3달에 1회 정도 당직근무를 섰고, 작은 기관에 있을 땐, 정말 1달에 2~3회 야간당직근무를 섰습니다. 남성은 야간근무를 서고 여성은 주간근무를 서는데, 야간근무는 매일 있는 반면 주간근무는 주말에만 있기도 했고, 전반적으로 남성 직원보다는 여성 직원들이 많아, 남성들의 당직근무 횟수가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2~3달에 1회씩 할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한 달에 2~3회를 하다 보니 좀 너무하다 싶었습니다. 한 달에 3회 정도가 되자 기관에서도 안 되겠는지 희망자에 한해 여성 직원분들도 야간 당직을 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야간당직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습니다. 어쨌든 일이 없는 날에는 남들이 모두 일하는 낮에 집에서 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화나는 것은 금요일과 토요일 당직근무인 날입니다. 금요일과 토요일에 당직근무를 서면 다음 날인 토요일과 일요일에 퇴근을 하기 때문에 당직휴무 자체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게 2년 전쯤에 규정이 개정되면서 금요일과 토요일 당직근무자가 당직 이후 며칠 내에 당직휴무를 쓸 수 있도록 개정되었습니다. 정말 당연한 것이 2020년대에 들어서야 정상화가 된 것입니다.
당직근무를 서면서 가장 힘들기도 했고, 돌이켜보면 재미있었던 것이 민원 전화입니다. 세상에 정말 별의별 사람이 다 있구나 싶었습니다.
1) 기관 내 유명한 악성민원인이 있었습니다. 거의 매일 밤 당직실에 전화를 걸어서
'xx! ㅇㅇ과 과장 연결해!'
욕과 함께 생떼를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려니 하자 싶다가도, 욕과 그 짜증 섞인 목소리를 들으면 속에서 무언가가 안 일어나기가 힘듭니다. 한 마디 해주고 싶지만 이런 사람들에게 제일 약한 것이 공무원입니다.
2) 한 번은 자고 있는데 새벽 3시에 전화가 울려서 일어나 받았습니다. 민원인은 기분 나쁘게 웃더니,
민원인: '다음 주 로또 번호 좀 알려줘 ㅎㅎ'
나: 아 죄송한데 저희 그런 거 알려드리는 곳이 아니라서요.
민원인: 여기가 로또 담당하는 기관 아니야?
나: 아닙니다.. 로또 담당은 ㅇㅇ기관이니 꼭 전화를 하셔야 하면 내일 거기로 연락해 보세요..
민원인: 아 그래도 좀 숫자 좀 불러줘
나: 아 죄송합니다..
민원인: 그냥 좋아하는 숫자 좀 불러봐
나: 죄송해요 저희가 그런 기관이 아니어서요..
민원인: 아니 그냥 좋아하는 숫자 좀 불러보라니까?
나: 7 11 14 23 24 45 됐나요?
민원인: ㅎㅎㅎ 그래 고마워
3) 또 한 번은 새벽 2시쯤 전화가 울렸습니다. 민원인은 전화를 부여잡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흐느끼더라고요.
나: 선생님 말씀을 해보세요. 무슨 도움이 필요하신 건가요?
민원인: ... (흐느낌)
나: 선생님 괜찮으세요?
민원인: ...(흐느낌)
5분 동안 끊기도 그렇고 계속 붙들고 있었습니다. 무슨 큰일이 났나 싶기도 하고 새벽이라 좀 무서웠습니다. '경찰에라도 신고해야 하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 어떡하나' 했습니다.
나: 선생님 말씀을 하셔야 도와드릴 수 있어요.. 괜찮으세요?
민원인: ㅎㅎㅎㅋㅋㅋㅋㅋ
그러고는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4) 저녁 10시에 제주도에서 온 소음 민원 전화도 있었습니다.
민원인: 아니 여기 지금 제주도 ㅇㅇ에 살고 있는데, 옆에서 행사가 너무 시끄러워!
나: 아 그러시군요. 관할 지역에 연락을 하셔야 하는 게 아닐까요..?
민원인: 이 행사 너네 기관이 후원하고 있더구먼 너네가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니야??
나: 그렇군요... 그런데 이게 저희가 후원을 하는 것이지 행사를 운영하는 게 아니라서 저희가 지금 뭔가를 해드리기가 힘드네요 죄송합니다.
민원인: 아니 공무원이 책임감이 있어야지! 너네 사장 바꿔!!
나: 지금 연결하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행사 때문에 시끄러운 건 정말 죄송하지만..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네요 죄송합니다.
민원인: 아니 XX 전화 바꾸라니까!!
나: 죄송합니다.
민원인: 어유 XX 공무원들 뭐 할 수 있는 게 없어
5) 정치병 환자들도 많았습니다.
민원인: 하 대통령 진짜 왜 그럽니까??
나: 아 뭐 제가 드릴 말씀은 없을 것 같습니다.
민원인: 아니 좀 답답하지 않아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나: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이 없네요 죄송합니다.
민원인: ㅎㅎㅎ 아니 근데 연차가 어떻게 되세요?
나: 한 2~3년쯤 되었습니다.
민원인: 월급은 얼마 받아요? 너무 짜죠?
나: 아 뭐 그냥 살고 있습니다..
민원인: 아휴.. 그런 대통령 밑에서 일하면서 쥐꼬리만 한 월급 가지고 참 힘들게 살아요 예?
나:.. 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민원인: 걱정돼서 하는 말이니까 너무 기분 나쁘게 듣지 말아요~
나: 네..
6) 한 번은 새벽에 외국에서도 전화가 왔습니다.
민원인: hello?
나:? hello?
민원인: ah.. this is from 아부다비
나: (아부다비? 중동? 아랍에미리트였나?) oh yes?
민원인: (대충 이런 내용) 우리 대표단이 이틀 뒤에 방문하는데... ㅇㅇㅇ는 어떻게 하고 ㅇㅇㅇ 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나요?
나: ah.. sorry. it's night here in korea... please contact us tommorrow..
민원인: oh sorry Ok
택시비와 식비도 나오지 않는 당직비를 받아가면서, 새벽까지 감정노동을 해야 하고, 일이 많으면 이틀 동안 집에도 못 가는 불합리한 이런 처우는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 그래도 당직근무가 사라지고 있는 추세인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