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노비의 방역점검
공무원 생활의 절반을 코로나와 함께 보낸 것 같습니다.
지자체와 합동 방역점검을 하라는 지시에 따라, 많을 때는 1주일에 1번, 적을 때는 1달에 한 번 정도 점검을 다녀왔습니다. 기존에 하던 일은 일대로 하고 그 모든 일마다 코로나 대책을 세워야 했었기에 안 그래도 힘든 상황에서 자꾸 출장을 나가야 한다고 하니 일이 너무 벅찼습니다. 공무원은 사람도 아닌지, 여러 군데 돌아다니다가 코로나 걸리면 어쩌라는 건지, 그리고 매번 사무실에서 제일 만만한 저만 출장을 자주 가는 것 같아 매일 구시렁대면서 출장을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코로나는 사무실에도 점점 번져갔습니다. 확진이 되어 일을 못하거나, 재택근무하는 분들이 많이 져서 더 정신없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왜 대체 걸리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했네요.
출장이 아니라면 살면서 갈 일이 있을까 싶은 곳을 포함해서 많은 도시를 돌아다녔습니다. 화천, 인제, 춘천, 홍천, 고성, 정선, 인천, 서울(여러 개 구), 포천, 광명, 용인, 청주, 천안, 음성, 대전(여러 개 구), 세종, 안성, 이천, 부산 등등 생각나는 것만 해도 이 정도 되네요. 주로 서울, 경기권과 강원도, 충청권 쪽으로 다녔습니다. 이렇게 여러 군데를 다니면서 지자체 공무원분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1. 서울 A 구
서울이었지만, 외국인들이 많은 지역으로 출장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조금은 앳되어 보이는 여자 주무관님과 같이 노후화된 시장 쪽으로 점검을 나섰습니다. 조금 위험하고 무서운 곳이라는 소문만 들었지, 실제로 이 지역에 가본 적은 없었습니다. 시장을 돌아다니는데 약간 범죄 도시 느낌이 나면서 긴장이 되었습니다.
첫 번째 방문지부터 난관이었습니다. 연변 사투리를 쓰시는 사장님이었는데, 주무관님을 보자마자 왜 또 왔냐며 보자마자 화를 내시더군요. 주무관님이 손님분들이 마스크를 잘 안 껴고 계셔서 주의를 해달라는 식으로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듣고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XX! 여자는 빠져있어. 어린놈이 어디 와가지고 매번 XX이야!"
공무원 생활 중에 민원인에게 이렇게 날 것의 욕을 직접 들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좀 당황해서 잠깐 멍했다가 정신을 차리고, 그 사장님께 진정하시고 방역 수칙이라 어쩔 수 없는 거니 주의를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래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않으시고 계속 욕을 섞어서 말씀을 하시더군요. 주의나 경고 조치를 할 수도 있었지만, 주무관님이 그냥 잘 말씀을 드리고 나가자고 하시더라고요.
거리로 나와서 주무관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렇게 욕하는 건 정말 짜증 나긴 하는데... 너무 자주 와서 솔직히 화날 만은 하다'라며 '안 그래도 손님이 없어서 힘든데, 맨날 점검만 나오니깐 안 그렇겠어요..?' 너무 덤덤하게 말씀을 하셔서, 이런 일들이 이 분에게는 그저 일상처럼 느껴졌습니다.
사실 정말 생각해 보면 소규모 영세 업자분들 입장에서는 정말 짜증이 났을 겁니다. 실제로 의미 없는 방역점검이 너무 많았습니다. 안 그래도 소규모 업장에는 코로나 때문에 사람이 거의 없는 환경인데, 시청에서 점검하라고 해서 가고, 구청에서 점검하라고 해서 나가고, 행자부에서 자체적으로 나가라고 해서 나가고, 갑자기 또 중앙부처와 합동으로 나가라고 하고... 점검을 하는 사람도, 점검을 받는 사람도 대체 왜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점검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저 남는 건, "특이사항 없다"라는 보고서만 쌓여 갔을 겁니다.
이후 점검했던 업장에서도 사장님들은 '영업도 안 하는데 왜 또 왔냐', '낮에는 영업 안 하는데 왜 오냐', '고생이 많아요.. 그냥 보고 가세요', '무슨 손님보다 더 자주 오시냐' 등등 그냥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점검을 받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점검하는 입장에서도 매번 죄송했습니다.
점검이 끝나고 구청으로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주무관님: 대체 언제까지 이럴까요?
나: 그러게요.. 정말 고생이 많으시네요..
주무관님: 아니 정말 주말에도 매번 출근하고 점검하고, 거의 2주에 하루 꼴로 쉬는 것 같아요. 그리고 매일 쓸데없는 방역 회의는 왜 자꾸 하는 건지...
나: 여기저기 다녀보면 정말 지자체 분들이 너무 고생하시는 것 같아요. 언젠간 끝나겠죠..
2. 인천 B 구
인천도 거의 가본 적이 없던 도시였습니다. '마계 인천'이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고, 이번에는 밤에 점검을 하게 되어 조금 긴장되었습니다. 어려 보이시는 여자 주무관님이 구청에서 나오셨는데, 다행히 건장한 직원분도같이 나오셔서 다행이었습니다.
이곳도 외국인, 특히 중국인이 많은 지역이었습니다. 분위기도 범죄 도시를 연상케 했습니다. 사장님들이 대부분 연변 사투리를 쓰시더군요.
초반에 방문했던 한 업장에서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안쪽에서는 분명 이것저것 정리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계속 문들 두드리고 몇 분간 대기를 해도 꿈쩍도 하지 않더군요. 그렇다고 문을 따고 들어가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아서, 발길을 돌리는데 밖에서 어떤 분이 뭔가 모르는 척하고 들어오시려다가 당황하시고 나가시더라고요. 주무관님들이 '저거 점검 왔다는 연락받고, 확인하러 온 것 같다'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인지, 다음부터 방문했던 업장은 다 영업을 안 하고 있다든지, 아니면 아주 무난하게 그냥 점검을 받고 끝났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군데만 돌고 점검을 마치려고 했습니다. 주무관님들은 '너무 자주 가서 최근에 안 갔던 업장 찾는 게 힘들다'라며 하소연했습니다.
마지막 업장은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곳 같았습니다. 직원과 사장님이 모두 중국어로 대화하시더군요. 그냥 또 무난하게 끝날 줄 알았는데, 여기서 조금 일이 터졌습니다. 업장 안에서 음식물을 팔거나 취식을 하면 안 되는데, 손님들이 무언가를 먹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장님께 '음식물 팔면 안 된다'라고 했는데, 자신들이 판 게 아니고 자기들이 가져와서 먹는 것일 거라고 하더군요.
먹고 있는 접시를 봤는데, 토끼 모양으로 자른 사과가 있어서, 저분들이 토끼 모양으로 깎은 사과를 가져와서 먹는 거냐고 했더니, 그렇다며 시미치를 떼었습니다. '안 그래도 장사 안돼서 힘든데 왜 자꾸 이렇게 힘들게 하냐'면서 도리어 엄청 화를 내시더라고요...
그런데 냉장고를 보니 똑같은 모양으로 잘라 놓은 과일이 있어서 이건 뭐냐고 했더니, 그제야 죄송하다며 한 번만 봐달라며 사정했습니다. 그때부터, 잘 하던 한국말을 하지 않고, 어눌하게 중국어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하길래, 더 화가 나서, 그냥 과태료 처분을 했습니다.
그 손님들에게도 조치를 해야 했습니다. 한 명은 사장님과 실랑이하는 과정에서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에게 말을 걸었더니, 술에 취한 상태로 화를 내면서 본인이 '기자'라면서 큰 소리를 치더군요. 몇 분간 계속 '너희들이 뭔데 이러냐'라며 말싸움과 작은 몸싸움이 오가다가 결국 신상정보를 받아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업장을 나가며 사장님에게 인사를 했는데, 사장과 직원이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어로 욕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문을 나섰는데 계단에서 마주친 어떤 사람이 지나가면서 그러더군요.
'칼로 찔러 버릴까 보다'
아직도 그 육성이 너무 소름 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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