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폐 속 거북선의 도움으로 설립된 기업
현대건설을 우리나라의 대표 건설회사로 성장시킨 정주영 회장은 1971년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다. 그것은 울산 미포만에 세계에서 가장 큰 조선소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변의 반응은 냉담했다. 건설업만 해왔던 현대가 새로운 분야인 조선업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해 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조선소 건립을 위해서는 대규모의 투자가 꼭 필요하였는데, 조선 산업에 경험이 없는 현대가 대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결심은 확고했다. 건설업을 통해 축적한 기술력이라면 배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차관을 유치하고자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그는 조선소를 건설할 울산 미포만의 사진과 외국 조선소에서 빌린 유조선 설계도면을 들고 투자를 받기 위해 유럽 전역을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투자자들의 반응은 부정적 이었다. 그들은 현대가 조선업에 도전할 만큼의 자금력과 기술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계속된 투자 실패로 몸과 마음이 지쳐갈 즈음, 그는 우연히 영국의 선박 컨설팅 회사인 A&P 애플도어의 롱바텀 회장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다. 그것은 롱바텀 회장의 추천서가 있으면 영국의 은행으로부터 쉽게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곧장 A&P 애플도어의 롱바텀 회장에게 면담을 요청했고, 그를 만난 자리에서 투자유치를 위한 추천서를 부탁했다. 그에겐 롱바텀 회장의 추천서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러나 롱바텀 회장의 반응은 그가 이전에 만난 투자자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 또한 현대의 자금력과 기술력에 의문을 나타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대가 조선사업에 진출할 만큼의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군요."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정주영 회장은 지갑에서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어 지폐 뒷면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 앞선 1,500년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습니다. 쇄국정책으로 산업화가 늦어졌을 뿐, 그 잠재력은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 정주영 회장의 말대로 지폐 속의 거북선을 살펴보던 롱바텀 회장은 고민에 빠진 듯 했다.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겼던 그는 정주영 회장에게 악수를 청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의 조상에게 감사해야 할 겁니다." 정주영 회장의 임기응변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롱바텀 회장의 추천서를 손에 넣은 그는 곧 차관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차관을 받는 일은 험난하기만 했다. 은행이 차관을 제공하려면 수출신용보증국의 보증을 받아야 했는데, 그들은 아무리 큰 조선소를 지어도 배를 사는 사람이 없으면 소용없는 것이 아니겠냐며 그에게 배를 구매하겠다는 사람이 있어야만 차관을 제공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던 것이다. 이제 차관을 얻기 위해서는 배를 팔아야만 했다.
수출신용보증국이 제시한 조건에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짓지도 않는 조선소에서 만든 배를 구매할 사람이 있을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은 또 한번의 기적을 연출했다. 그리스의 선박왕인 오나시스의 처남 리바노스를 만나 배를 판매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계약금에 이자를 얹어주고, 배에 하자가 있으면 원금을 다 돌려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하는 등 파격적인 조건들을 내걸어 리바노스의 마음을 움직인 덕분이었다.
차관을 제공받는데 성공한 정주영 회장은 이 돈으로 현대중공업을 설립했고, 그가 세운 현대중공업은 오늘날 세계 1위의 조선소로 성장했다. 정주영 회장의 열정이 낳은 값진 결과였다.
[참고 도서]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2001), 정주영, 제삼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