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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 Apr 29. 2018

기업의 탄생 [04. 민들레영토]

카페에서 쫓겨난 경험이 만든 문화 공간

1993년 가을의 어느 날, 조용한 카페에 앉아 생각에 잠겼던 지승룡 대표는 카페에서 쫓겨나는 굴욕을 당했다. 손님이 많은 주말에 혼자 앉아 있는 건 가게에 손해라는 이유로 카페에서 쫓겨난 것이다. 그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못한 채 카페 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카페에서 쫓겨나고 보니 돈이 안 되는 손님이라고 해서 쉴 공간마저 허락되지 않는 현실이 야박하게 느껴졌다. 그때 문득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카페에서 쫓겨난 사람이 자신만은 아닐 거라는 것과 주말에 혼자 있는 손님에게도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페가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 카페를 찾아줄 거란 생각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는 카페를 창업해 보기로 했다. 자신이 직접 그러한 카페를 운영해 보겠다는 꿈을 갖게 된 것이다.

가래떡 장사와 옷장사를 통해 2천만 원의 돈을 마련한 그는 신촌의 작은 양장점을 빌려 카페를 창업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자신이 빌리고자 한 양장점이 무허가 건물이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양장점 주인으로부터 보증금과 월세의 가격을 낮출 수는 있었지만, 카페의 영업허가를 받는 것은 더욱 어려워 졌다. 무허가 건물에서는 간판을 달고 장사를 하거나 음식을 판매하는 것 모두가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가진 돈이 적어 다른 곳에 카페를 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의 실망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오랜 고민 끝에 구청의 담당 직원을 만나 회원비 형식으로 시간당 문화비를 받고, 고객이 원할 때마다 음료를 제공하는 것도 법에 저촉되는지를 문의했다. 음식판매를 못하니 문화비라는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 카페를 운영하고자 한 것이다. 그의 물음에 담당 직원은 그와 관련된 법안은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는데, 그에게는 담당 직원의 대답이 카페의 영업을 허가한다는 말처럼 들렸다. 비록 간판조차 마음대로 걸 수 없는 카페였지만, 결국 그는 구청 직원과의 오랜 실랑이 끝에 직접 음료를 판매하지 않는 조건으로 영업 허가를 받아낼 수 있었다.

민들레영토라는 이름으로 카페를 창업한 그는 카페에서 쫓겨났던 기억을 되새기며 고객 한명 한명에게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카페를 방문한 고객들에게 맛있는 음료를 제공하고자 좋은 식재료를 고집했고, 도서관에서 본 책들을 참고삼아 인테리어에도 신경을 썼다. 당시 신촌에는 무수히 많은 카페들이 밀집해 있어 간판도 없는 작은 카페가 수익을 거두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었으나 그의 카페는 고객들에게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고객들이 그의 진심을 알아봐 준 덕분이었다.

고객들의 사랑에 힘입어 그는 카페를 확장했고, 카페 안에 제과점, 서재, 스터디 룸 등을 갖춤으로써 고객들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문화비를 받는 카페에서 출발한 민들레영토가 고객들이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는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 한 것이다. 민들레영토는 지금도 문화비를 받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는데, 무허가 건물에서 출발한 과거가 없었다면 이와 같은 독특한 정책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참고 도서] 민들레영토 희망 스토리(2005), 지승룡, 김영한 저, 랜덤하우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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